세상의 모든 지식

유투브를 보면 필요한 지식을 다 얻을 수 있어요

by 박달나무

#봉화에서50일

#7월17일
#1대100

1.
요일을 잊었다. 하루 하루가 지나가고, 신문을 보거나 TV 시청을 하지 않으니 순간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명확하지 않다.
"음.... 일요일은 지난 것 같은데 오늘이 월이냐, 화냐.... 어쨌든 둘 중의 하난데"
이런 정도~

2.
하루 10시간을 공부해봤는가? 자는 시간, 먹는 시간, 씻는 시간, 휴식 시간 빼고 순수하게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10시간이 가능한가. 돌이켜보면 내 경우 딱 한 번 있었다. 10시간 책상에 앉아 있는 게 쉬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상상하기에 16시간 정도는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다. 아, 물론 보고서를 기한 내에 내기 위해 24시간을 넘게 연속적으로(화장실 가는 시간 빼고, 커피 타서 책상으로 돌아오는 시간 빼고) 앉아 있던 적은 있었다. 그건 다르다. (입시 스타일)공부하기 위해서는 내 경우 10시간이 맥시멈이었다. 학생 때가 아니다.
그게 퀴즈 프로그램(SBS 정부수립 60주년 기념 국토사랑퀴즈대전^^)에 나가기 위해 고등학교 한국지리 참고서를 사서 한 권을 씹어 먹는데 하루 10시간씩 이틀이 걸리더라. 읽고 썸머리하고 외우고 등등. 하마터면 그 해 수능 볼 뻔 했다^^ 그러니까 2008년 일이구나. 딱 10년 전.

3.
우리 아이들하고 하루 8시간 정도 공부하면 어떨까 싶었다. 불가능한 걸 짐작은 했지만, 그래도 한번은 8시간을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을 가져보고 나랑 헤어지게 하려고 했다. 무척 야무진 꿈이다.

4.
아이들은 3시간 공부를 열심히 하면 더 이상은 힘들어했다. 뭐 3시간 공부면 목표한 검정고시 합격에 아무런 장애가 없다. 문제는 3시간 책상에 앉아 있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 누구라도 그렇다.

5.
오늘도 2~3시간 시험공부를 수행했다. 요즘엔 나의 필살기 "노트북으로 기하도형그리기 프로그램을 이용한 사고(思考) 수학 수업"을 진행 중인데, 쉽게 쉽게 넘어가지진 않는다.(재미로 아래 문제 풀어보라. 힌트: 外角 성질을 이용하기)
아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아이의 상태를 가늠할 수 있었다. 중1 과정인데, 이게 힘들 수 있다. 해결 못해도 좌절하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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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무청이가 도통 TV 를 켜는 일이 없는데, 8시55분부터 TV 시청을 해도 되냐고 허락을 받는다.
"물론~ 가능해"
시간이 되니 거실로 나와 리모콘을 잡는다.
1:100 퀴즈 프로그램이다. 이제보니 내가 예전에 1:100 나간 적이 있다고 말했더니 증거를 보여달라고 하길래 KBS 홈피에 들어가 출연진으로 떠있는 내 사진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그것을 기억하고 1:100에 관심을 갖고 검색을 많이 했던 것이다. 그리고 처음으로 1:100을 시청하는 것. 웬일로 TV를 보냐고 징징이도 거실로 나왔다.
"1단계부터 5단계까지는 쉬운 편이야. 너도 맞춰봐라"
내가 말했다.
배우 이문식이 나와서 문제를 풀었다. 다음 중 월드컵에서 골을 넣은 선수가 아닌 선수는? 이런 문제가 나왔다. 보기로 ①손흥민 ②조현우 ③김영권 이렇게 제시됐고.....
무청이든 징징이든 알 수가 없다. 러시아월드컵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경기를 시청한 적도 없고, 사후 결과를 알려고 한 적도 없었기에.
내가 유니폼 색깔이 다른 사람은 골키퍼라고 힌트를 줬다.
"골키퍼는 골을 넣을 수 없나요?"
무청이가 물었다. 보통의 경우 골키퍼가 골을 넣는 일은 극히 드물다고 대답했다.
무청이와 징징이는 2번 조현우를 선택했고, 정답을 맞췄다고 의기양양해한다. 하지만 다음 단계부터는 힌트를 줘도 답을 맞추기 쉽지 않았다.
"헐.... 세상에 알아야 하는 게 참 많다.... 그지~"
내가 눈치를 보며 말을 던졌더니 무청이가 이렇게 받더라.
"세상 일을 다 알아야 하나요?"(뉘앙스는 "알 필요 없잖아요"가 강하다)
"물론이지. 다 알 필요는 없어. 하지만 알면 편리한 게 있는 거지. 그것조차 몰라도 상관 없지만 좀 불편할 수가 있거든."
말하면서도 구차하기 그지 없었다.
그랬더니 무청이가 명언을 남겼다.
"저는 유투브를 열심히 보면 필요한 지식을 알 것 같더라구요."

7.
요 몇일 The Horse Boy 때문에 행복했다. 부엌에 서서 책을 읽은 적은 평생 처음이다. 물이 끓어야 하는 짧은 시간에도 다음 이야기를 보고 싶어 읽게 된 것이다.
마지막 에필로그는 감동이다. 과거에 오티즘 아이를 만나면서, 이 아이가 내 아들이면 어떨까,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나는 이 아이에게 어떤 기대를 할까 자주 고민한 적이 있었다. 당시를 생각하면 아주 부끄럽다. The Horse Boy를 읽지 않았다면 아직도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밑에 있는 글은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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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텍사스로 돌아가는 길에 잠시 런던에 도착하자 거의 즉시, 로완은 강박 관념적인 행동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여러 차례에 걸친 울화가 이어졌다. 우리를 오스틴으로 태워다 줄 비행기를 기다리며 우리는 런던에서 세 번째 날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는 내 부모님의 집과 가까운 번잡한 중심도로를 걷고 있었다. 로완이 팔을 내두르며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퇴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거리에 서서 그가 팔을 내두르며 머리를 흔드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

그날 저녁, 크리스틴과 나는 로완을 데리고 부모님 집을 나서서 런던 북부의 중앙에 있는 햄스테드 히스로 갔다. 한때는 노상강도들과 매춘부들과 목동들과 사슴들의 서식지였던 그곳은 이제 보호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아직도 기적적으로 자연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었다. 나는 자연으로 데리고 가면 퇴행이 멈출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로완을 그리로 데려갔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로완이 기차 유리창 밖으로 지나가는 런던의 지붕들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면서 모든 것들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도록 해달라고 열심히 기도했다.

우리는 거대한 떡갈나무 밑을 걸었다. 로완은 나를 앞질러 뛰어갔다. 로완은 그 앞에서 뛰어가는 검정색과 흰색이 뒤섞인 까치들을 쫓아갔다. 회색 다람쥐 한 마리가 후다닥 나무로 올라가더니 가지 위에서 그를 향해 무슨 소린가를 내자 로완은 깔깔 웃었다. 갑자기 그가 크게 웃으면서 나를 향해 달려왔다.

“간지럼 태울 시간!”

로완이 다시 분명하게 말을 하는 걸 듣자 안도감이 들었다.

“작은 생쥐 간지럼, 아니면.”

그가 내 말을 자르며 말했다.

“이따 만 하게 큰 코끼리, 들소, 코뿔소, 푸른 고래 간지럼!”

큰소리로 웃으며 머리로 내 배를 들이받았다. 나는 그렇게 하면서 내가 느끼는 두려움을 쫓아버리려고 했다.

우리는 저녁이 될 때까지 산책을 하면서 새도 보고, 거대한 런던 분지 위로 해가 넘어가는 모습도 바라보았다. 자연 속으로 들어오자 그는 다시 한번 침착해졌다. 하지만 나는 이게 얼마나 오래갈 것인지 못내 궁금했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오래가는 게 아니라 영원히 그랬다. 고스테(몽골 북부 타이가 숲 속의 샤면; 로완은 울란바토르부터 고스테가 있는 곳까지 일주일을 차와 말을 타고 가서 샤먼에게 20분 동안 치료를 받고 왔다. 그 여정을 기록한 것이 The Horse Boy 책과 다큐 영화다)의 여름 캠프로부터 산을 내려온 지 일주일 후, 런던에서 있었던 그 마지막 사건이 우리가 본 마지막 장애 행동이었다. 로완의 대소변 가리기는 나빠지지 않았다. 우리가 미국에 돌아갔을 때쯤 로완은 스스로 화장실에 다녔다. 그로부터 곧, 크리스틴(로완 엄마)이나 나는 더 이상 그 문제로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 지난 3년 동안 로완의 어깨에 이무기처럼 앉아 있던 악마들인 울화와 활동 과다의 불안은 우리가 텍사스로 돌와온 지 한 달쯤 되자 완전히 그를 떠났다.

우리는 완전히 달라진 아이와 함께 돌아왔다.

크리스틴과 나는 영국을 떠나 미국으로 돌아가기 직전에, 어쩌면 영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자폐증 전문가인 사이먼 배런 코헨 박사와 상담을 하기 위해 캠브리지 대학을 찾아갔다. 나는 그가 주장하는 모든 이론에 동의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그는 자폐증의 확산이 다수의 학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환경오염의 결과가 아니라 자폐증이라고 진단하는 경우가 늘어나서 생긴 결과라고 생각했다. 크리스틴은 심리학 교수의 특성을 발휘하여, 만약 진단이 늘어나서 그런 것이라면 전에 자폐적이라고 생각되었을지 모르는 다른 형태의 정신 상태에 대한 진단이 감소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따졌다. 그들은 서로 의견이 달랐다. 하지만 배런 코헨 박사가 말한 것 중에 남는 것이 있었다.

“자폐증이 치료할 필요가 있는 것이냐에 대한 논란이 앞으로 점점 많아질지 모릅니다. 어쩌면 그것은 개성의 한 유형에 더 가까울지 모르니까요.”

돌아오자 로완의 학력 상태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졌다. 그는 다섯 살인데 일곱 살 수준의 책을 읽고 있었다. 석 달이 지나자 그는 여덟 살 수준의 책을 읽었고 밤에는 책을 읽다가 혼자 자기 시작했다.

나는 로완이 투무와 나누었던 것 같은 관계가 일회적인 것이 아닐지 걱정했다. 하지만 미국에 돌아온 지 일주일이 지나지 않았을 때, 한 친구가 우리와 같이 말을 타려고 그녀의 어린 의붓아들 개빈을 데리고 왔다. 로완과 개빈은 금세 친구가 되었다. 몇 주 후, 이웃 아이들 중 절반이 말을 타려고 몰려왔다. 몽골에서 돌아온 지 몇 달 후, 로완이 여섯 번째 생일을 맞았을 때쯤에는 친구들이 너무 많아져 떠들썩한 아이들을 위한 정식 생일파티-그의 첫 생일파티였다-를 해줘야 했다. 그들은 모두 자기들이 로완의 친구라고 생각했다. 거기 모인 아이 중 한 아이만이 자폐 증상을 갖고 있었다. 로완의 생활은 이제 여느 아이와 똑같아졌다.

내가 걱정하는 또 다른 문제는 말을 타는 것이었다. 우리가 베치를 같이 타는 황금기도 몇 년에 지나지 않고, 로완의 몸이 너무 커져 더 이상 편안하게 나와 말을 탈 수 없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내 안에 오랫동안 도사리고 있었다. 여섯 살이 될 때쯤, 그의 몸은 그 정도로 커져 있었다.

우리가 처음에 집에 오자 베치는 늘 그랬던 것처럼 고분고분하게 로완을 맞았다. 우리는 전에 그랬듯이, 우리 집 주변에 있는 들과 초원과 피칸 나무 숲에서 말을 같이 탔다. 하지만 돌아온 지 몇 주 후부터 나는 마지막 몇 백 미터를 남기고 먼저 말에서 내려 헛간으로 통하는 문을 열어주고 말에 타지 않기 시작했다. 대신 나는 고삐를 쥐지 않고 베치에게 로완을 태운 채 내 옆에서 걸으라고 손가락으로 신호를 보내고 걸어갔다.

로완은 처음에는 그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계속 고집을 부렸다.

“아빠, 타!”

“뭐라고? 뭐라고?”

나는 늙고 미친 영국 대령의 목소리를 흉내 내어 안 들리는 척하면서 장난을 쳤다. 그리고 말 위에 앉아 있는 그에게 간지럼을 태웠다. 로완은 깔깔거렸다. 베치는 내 아들과 나 사이에서 귀를 앞뒤로 쫑긋거리면서 천천히 걸어갔다. 헛간에 돌아왔을 때, 내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고삐를 잡아당기고 ‘워’라고 말해봐.”

로완이 놀라서 그렇게 했다.

“워.”

베치가 걸음을 뚝 멈췄다.

다음 날 우리는 그 연습을 되풀이했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에 왼쪽으로 몸을 피하며 말했다.

“아빠 쪽으로 고삐를 당겨라!”

로완은 당황한 것 같았다.

내가 다시 말했다.

“아빠 쪽으로 고삐를 당겨라!”

로완이 그렇게 하자 베치는 양처럼 순하게 나를 행해 돌아섰다.

다음 날, 우리는 두 가지를 다시 연습했다. 나는 이번에는 다른 쪽으로 방향을 돌리는 것도 주문했다.

그렇게 나는 날마다 5분 이내에서 로완이 혼자 말을 타도록 했다. 시간을 그렇게 제한한 것은 그가 싫증 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한 달쯤 되자 로완은 자신 있게 베치를 세우고 방향을 바꿀 정도가 되었다. 나는 점점 더 거리를 많이 뒀다.

어느 날 베치가 풀을 뜯으려고 고개를 숙일 때 내가 소리쳤다.

“고삐를 당기고 발을 차봐!”

로완이 내 말대로 했다. 말이 순순히 따랐다. 때마침 테리 아저씨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로완이 혼자서 말을 타네요! 로완, 가엾은 베치를 언제쯤 평화롭게 놔둘 거니?”

그날 저녁 늦게, 나는 맥주를 마시면서 스태퍼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해줬다. 그가 건배를 하면서 말했다.

“루퍼트, 내 생각에 얼마 안 있으면 당신은 불평할 게 아무것도 없겠어요.”

나는 내 이웃이자 친구인 친절한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가 만약 그의 말과 땅에 접근하는 걸 허락해주지 않았다면 내 아들은 결코 이렇게 멀리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었다.

이때쯤 나는 다른 말을 구입했다. 클루라는 이름의 텍사스 경주마였다. 베치에게 가해지는 부담도 좀 덜어주고(그 말도 아이들을 잘 대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한편으로는 다시 승마를 하기 위해서 구입한 것이었다. 뛰어오를 수 있는 말을 갖고 싶었다. 시간이 허락하면 자폐증이나 아이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혼자서 말을 타보고 싶었다. 내가 처음에 클루를 타보지 않겠냐고 제안하자, 로완은 클루를 타지 않으려 했다. 그는 베치한테 헌신적이었다. 하지만 1~2주가 지나자 그도 새 말을 타기 시작했다. 매일 조금씩 더 그랬다. 크리스틴이나 내가 옆에서 산책을 하는 동안 로완은 새 말을 탔다.

나는 로완을 위한 치료의 일부로서만 말을 타던 것에서 이제는 벗어나 있었다. 나는 전혀 새로운 방향을 찾아냈다. 나는 고등학교에서 조마(調馬)를 전문으로 가르치던 조마사를 찾아냈다. 조마는 가장 복잡한 형태의 곡마술인데, 말이 사람을 태우고 춤을 추도록 훈련을 시키는 기술이었다. 나는 승마술 중 최고의 비법에 해당하는 그 기술을 늘 갈망해왔지만 마음 한 편으로는 늘 내 능력이 충분치 않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몽골에서의 경험이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갖도록 해줬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유야 어쨌든 나는 불안감을 밀어내고 훈련을 시작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는 가장 어려운 형식의 승마-예술 형식으로서의 승마-를 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경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잘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더 깊고 더 복잡한 형태의 승마에 몰두하면서, 내 안에 있는 호스 보이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새해의 첫날, 로완은 한 번에 두 시간 정도까지 혼자서 말을 탔다. 내가 문을 열어줄 때 말을 멈추고 말머리를 돌릴 줄도 알았고, 말이 풀을 뜯어먹으려고 할 때는 몰아칠 줄도 알았다. 또 내가 로완을 위해 들판에 원뿔 표시로 만들어놓은 구불구불한 길로 말을 몰고 가기도 했다. 그는 유목민들이 예상했던 것처럼 말을 타고 있었다.

크리스틴과 나는 낭만적인 삶을 되찾았다. 로완의 삶이 안정되면서 베이비시터들을 고용할 수 있었고, 우리는 밖에 나가 진짜 데이트를 즐기며 저녁시간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레스토랑에 가서 나의 아름다운 아내와 마주 앉아서 그녀의 짙은 갈색 눈-그녀의 눈은 검은색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짙었다. 그리고 그녀의 눈 가운데에서는 작은 불빛들이 춤을 췄다-을 들여다보는 것은 그 자체로 계시였다. 그렇게 해본 지가 너무 오래였다.

새로움에 우리 두 사람은 놀라고 있었다. 그녀가 저녁을 먹으며 말했다.

“루, 우리가 순록 부족한테서 돌아왔을 때, 내가 화를 내고 아프고 우울해했던 거 기억해? 잘 모르겠지만, 우리가 샤먼한테 가서 치료해달라고 했었잖아. 나도 치료가 된 것 같아. 그때 부정적인 모든 것, 부정적으로 살았던 모든 세월이 나한테서 빠져나가고 있었던 것 같아. 그런 것을 부수고 정리하느라고 내가 그랬던 것 같아. 이제는 새로운 창조적 에너지가 내 안에서 솟아오르는 기분이야.”

그녀는 그 달부터 자기연민 행위에 관한 책을 집필하기 시작했고, 몇 달 후 에이전트와 출판사를 찾아냈다. 나는 그녀가 그렇게 만족스러워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우리에 관해서 말하자면, 우리는 모든 부부들이 그러한 것처럼 아직도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로완의 회복은 우리에게 다음에 뭘 할 것인지를 돌아볼 여유를 줬다. 더 이상 우리는 로완과 그의 자폐증만을 생각할 필요가 없어졌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갖게 되었다. 로완의 회복이 가져다준 선물 중 하나 이리라.

로완은 아직도 자폐적이다. 그의 본질과 많은 재능들이 모두 그것과 연관이 있다. 그를 괴롭혔던 끔찍한 장애들, 즉 육체적. 정신적 자제력의 결여, 신경학적인 폭발, 불안함과 활동 과다 등은 고쳐졌다. 하지만 그는 완치된 게 아니었다. 나도 그가 그렇게 되는 걸 원치 않는다. 자폐증을 떼어낸다는 의미인 그 말은 아주 잘못된 것처럼 보인다. 정상적인 신경계를 가진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것처럼, 그도 양쪽에 발을 딛고 두 개의 세계 사이에서 헤엄칠 수는 없는 걸까?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한 발은 자신의 모국어와 문화에, 다른 발은 서구에 딛고, 두 개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라. 그것은 풍요로운 위치다. 자신의 세계의 마법을 유지하면서도 우리의 세계에서 수영하는 데 필요한 기술들을 로완이 계속 배울 수 있을까? 실현할 수 있는 꿈이라고 믿는다.

몽골에서 돌아온 후, 나는 자폐증이 있는 아이들을 위한 승마 프로그램을 시작할 부지를 구입하기 위한 비용을 모금했다. 커다란 피칸 나무, 느릅나무, 뽕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워 텍사스에서 가장 더운 날에도 산들바람이 부는, 15 에이커(약 1만 8천 평)에 달하는 눈부신 땅이다. 허물어져가는 낡은 농가 한 채가 그곳에 서 있다. 아이들이 놀고 말을 타고 배우고 행복해할 수 있는 곳이다. 농가가 서 있는 도로의 이름이 “새 길(New Trails)”인 것도 어쩌면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나는 뒷베란다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홍관조 한 마리가 내 주변에서 노래를 한다. 텍사스의 봄비가 함석지붕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숲에서는 새로운 연두색 잎들이 돋아나고 인부들이 옛 농가의 리모델링 작업을 마무리하고 있다. 말들과 다른 동물들을 구입하고 직원들을 채용했다. 여러분이 이 책을 구입해 생기는 수익의 일부가 말을 이용한 치료에 들어가는 비용을 댈 수 없는 가족들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될 것이다.

동시에 나는 이메일을 보내고 아프리카에 전화를 걸고 또 받고 있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고스테가 우리에게 얘기했던 것처럼, 이번 여름에 로완을 칼라하리 사막으로 데려가려고 준비하고 있다. 나는 아직도 보츠와나 입국을 금지당하고 있기 때문에, 로완의 샤먼 아버지인 베사가 처음으로 보츠와나 밖으로 나와 이웃나라인 나미비아에서 리틀 베사를 만나게 될 것이다. 거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 어떠한 치료를 받을까?

로완이 내가 앉아서 글을 쓰고 있는, 방충망이 달린 베란다 문 앞에 막 나타났다. 그는 친구들을 보고 싶어 한다. 아델리나, 개빈, 아너, 아리엘라, 애니, 베시가 그의 친구들이다(그들 중 아무도 자폐증을 갖고 있지 않다). 우리는 보통 토요일 오후에 그들을 만나 베치, 클루, 타즈, 찬고라는 이름의 늙은 검정말을 같이 탄다.

나는 로완에게 방금 이렇게 얘기했다.

“비 때문에 취소해야겠다. 하지만 며칠 후엔 볼 수 있을 거야.”

“지금 보고 싶어요!”

나는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고 말한다.

“로완, 너는 칭얼대다가......”

나는 여기에서 단순히 타이르는 것보다는 우스꽝스러운 말을 하려고 머리를 굴린다.

“칭얼대다가 네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누군가랑 36년 동안 돼지기름 통 속에 거꾸로 앉아 있고 싶은 거니?”

이렇게 말하자 그가 깔깔 웃는다. 그는 장난을 이해하고 나를 재촉한다.

“아니면.....?”

“아니면 착하고 조용하게 있다가 다음번에 친구들을 만나 달나라에 가서 자전거를 타고 싶니?”

로완이 깔깔깔 웃는다. 로완은 동물원 기차놀이를 하려고 가버린다. 하지만 금세 돌아온다.

“아빠.!”

나는 고개를 든다. 로완이 얼굴에 짓궂은 웃음을 띠고 방충망 안쪽을 들여다보고 있다.

“달나라에 가서 자전거를 타고 싶어요!”

같은 해 4월이었다. 어느 날 밤, 우리는 말을 타러 갔다. 나는 걷고 로완은 베치의 넓은 갈색 등에 똑바로 앉아 있었다. 나는 보조를 맞추지 않고 뒤에서 따라갔다.

마구간에서 나올 때 내가 말했다.

“헤이, 로완. 아빠가 문을 열어줄 테니 고삐를 잡아당겨 베치를 세워.”

로완은 시키는 대로 내 뒤로 말을 몰고 와, 내가 몸을 구부려 사슬을 다시 묶을 수 있게 했다.

“이제는 말을 타고 가라. ‘베치 가자’라고 말하고 배를 차라.”

로완이 베치의 옆구리를 차며 말했다.

“베치, 가자.”

베치가 완만한 속도로 뛰어갔다. 나의 아들은 균형을 잡고 앉아 있었다. 나한테서 멀어지며. 자유롭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