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아 로완의 아주 특별한 경험에 대하여
#7월16일
#Autism
#Horse_Boy
#자폐스펙트럼
1.
지난 6월29일 서울 경희대에 급히 다녀와서 봉화 일기를 쓴 이후로 두 주만에 /봉화에서 50일/ 시리즈를 다시 쓴다.
경희대는 <숲은 생각한다> 북콘서트에 참석하기 위해 다녀온 것이다. 그때 받은 감동이 지난 두 주일을 채웠다. 인간중심주의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전방위적으로 생각하게 된 것. 다분히 귀납적이다. 일상에서 퍼올려지는 느낌이 깔대기에 떨어지는 액체처럼 종국에 '인간중심주의의 극복'으로 수렴된다.
2.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 수십 년의 의문점들.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이 따로따로는 성립하는데 함께 하면 서로의 모순 때문에 가까이 할 수 없는 것처럼, 아이들의 어려움을 한 사람 한 사람은 해결 가능한 것 같지만 전체적인 아이들의 어려움을 설명하는 통일장 이론은 성립이 안 된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가. 유전적 결함? 환경오염물질? 아비투스의 변화? 디지털 문명의 진격? 경쟁구조의 피로? 계급 사다리의 파괴? 감정의 등가교환에 대한 맹신? 과연 무엇이 20세기 말과 21세기 초반의 한국 어린이청소년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가-여기서 늘 머뭇거린다.
3.
머뭇거림은 숙명이고 평생 해결될 수 없지만, 최근 새로운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보니 시야가 넓어지는 느낌이다. 동시에 스스로 충격을 먹었다. 바로 자폐스펙트럼장애(ASD)에 대한 새로운 통계 때문이다. 미국이 1% ASD 유병률로 보는데, 2011년 경기도 일산의 55000명을 상대로 한 직접 설문조사결과에 따르면 2.64%라는 것이다. 그런데 서구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1990년 이후 자폐증 아동이 급격하게 늘고 있다는 통계다.
4.
과거에 만났거나 현재 만나는 아이들을 하나 하나 떠올렸다. 분명한 자폐증 아이가 몇 있었지만 대부분은 틱장애, ADHD, 과잉행동 없는 ADD, 우울증, 망상증 및 지적발달장애 중 하나였다.
최근에 자폐증은 자폐스펙트럼장애로 명명하나보더라. '스펙트럼'을 사용할 때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증상이 너무 다양하다, 또 하나는 이 증상에 대해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5.
다양한 스펙트럼이라면 내가 만났던 30명 안팎의 아이들 대부분(아닌 경우는 분명히 있다) ASD로 볼 수 있다는 결론이다. 난 ADHD를 발달장애(PDD; Pervasive Developmental Disorder 전반적 발달장애)로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ADHD라고 진단 받은 아이들은 ASD(자폐 스펙트럼)로 볼 수도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복잡한 얘기는 건너 뛰고, ASD라면 솔루션에 대한 고민도 달라져야 한다. 급격한 ASD의 증가는 단지 진단기준의 변화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실제 자폐 성향의 아이들이 주변에 급격하게 많아졌다(고 생각된다)
6.
<숲은 생각한다>의 쉬운 이해가 <The Horse Boy>다. 자신의 아들이 ASD 진단을 받자 승마와 중앙아시아 샤먼을 통해 증상을 크게 호전시킨 작가 루퍼트 아이잭슨의 다큐멘터리 기록이다. 김철 선생님 덕분에 알게됐는데 읽으면서 가슴이 벌렁벌렁 뛰는 경험을 했다.
이런 대목이 있다.
//
치료시간이 끝나자 나는 머리를 식힐 겸 로완을 데리고 산보를 나갔다. 낯익은 오솔길을 따라 종종걸음을 치는 그의 뒤에서 나는 어슬렁어슬렁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로완이 예기치 않게 전에 가본 적이 없는 왼쪽으로 방향을 틀고 나무 사이로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놀라서 그를 쫓았다. 로완은 숲을 벗어나 우리의 땅과 이웃인 스태퍼드의 목초지의 분기점인, 터부룩한 풀들이 난 좁다란 지대로 달려갔다. 로완은 내가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달려갔다.
로완은 철조망을 통과해 다른 쪽에서 풀을 뜯고 있던 다섯 마리의 말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그러더니 킥킥 웃으면서 땅 위에 벌렁 누워버렸다. 그것도 우두머리 암말 바로 앞에서. 베치라고 불리는 커다란 단거리 경주마였다. 나는 얼어붙었다. 로완이든 나든 상관없이 갑작스럽게 조금만 움직여도 말이 놀라서 로완이 발굽에 짓이겨질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나는 이 암말을 알았다. 그 말은 탈 때는 조용했지만 다른 말들에 대해서는 심술궂기로 유명했다. 그 말은 의문의 여지가 없이 다른 말들의 두목이었다. 성가시게 구는 사람한테는 발굽을 사용하고 풋내기 기수는 바로 헛간으로 보내버리는 짓을 주저하지 않을 유형의 말이었다.
그 말은 숨을 내쉬면서 다른 네 마리의 말들처럼 꼼짝하지 않았다. 자기 발치에서 꼼지락거리고 있는 이 낯선 작은 인간의 등장에 놀라야 할지 말아야 할지 확신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때 그 말이 꼬물거리고 있는 로완의 부드러운 몸 위로 머리를 낮췄다. 로완은 말발굽에 너무 가까이, 너무 위험하게 노출된 상태였다. 말이 고개를 낮추고 그를 핥았다. 말 나름의 복종의 표현이었다.
나는 말이 놀라지 않도록 서서히 접근해 가면서 내가 놀라운 것을 목격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이 자기 앞의 땅에 누워 있는 아이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말을 훈련시켜봤지만 그러한 일은 본 적이 없었다. 나의 아들은 말과 직접적인 끈이 닿아 있는 것이었다.
눈물이 나왔다. 그 습한 6월의 어느 날, 그러려고 한 게 아니었음에도 소리 없이 눈물이 흘렀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서였다.
“저 아이에게는 #말의유전자가 있구나, 하지만 저 아이는 자폐아다. 나는 그것을 저 아이와 함께 나눌 수 없겠구나. 저 아이에게 말을 타는 방법을 가르쳐줄 수도 없고, 이 기쁨을 나눌 수도 없겠구나.”
부모가 얼마나 틀릴 수 있는지 생각하면 놀라울 뿐이다.
(중략)
그의 강박관념, 정서적인 무절제와 대소변을 못 가리는 버릇(세 살이 된 그는 그의 부모, 외할머니와 친할머니, 때로는 전문가들이 최선을 다했음에도 아직 완전히 대소변을 가리지 못했다)은 더 나빠진 게 아니라면 전과 마찬가지로 나쁜 상태였다. 그런데 내가 집에 오기를 기다리면서 그가 매일 입에 담았던 하나의 단어가 있었다. “말(horse)"이라는 단어였다.
그래서 나는 그날 저녁, 9월을 향해 가는 빛 속으로 로완을 데리고 나갔다. 다시 한 번 숲에서 산책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곧장 나무들 사이를 지나 스태퍼드의 방목장으로 향했다. 로완은 울타리를 통과하자마자 그 구렁말, 말들의 대장인 베치를 향해 곧장 뛰어갔다. 6주 전에 그랬던 것처럼, 내가 미처 제지하기도 전에 그는 말의 발굽 앞에 몸을 던졌다.
다시 한 번 기적이 일어났다. 말이 고개를 숙였다. 자발적인 경의에서였다. 말은 전처럼 내 자폐아 아들한테 자진해서 복종하며 그를 핥았다.
말이 그를 향해 코를 킁킁거리자 로완이 좋아했다.
//
7.
앗! 이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당시에 김철 선생님도 드문 경우라고 말했지만 말(horse) 문외한인 나는 그냥 지나쳤던 일이다.
그런데 The Horse Boy 에 다시 아래 대목이 등장한다.
이역만리 몽골 초원에서 처음 만난 말이 자폐아 로완에게 하는 행동이다. 이쯤되니 등줄기에서 전류가 흐른다.
//
블랙키는 귀를 앞으로 흔들면서 로완을 향해 코를 킁킁거렸다. 로완이 씩 웃으며, 고개를 이상한 각도로 돌리고 말을 향해 코를 내밀었다. 그러자 또 한번, 같은 일이 일어났다. 말이 고개를 숙이며 혀로 핥고 뭔가를 씹는 입 모양을 했다. #자발적인_복종의_표현이었다. 로완이 그 말과 같이 있으면 적어도 안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블랙키를 안아주면서 뽀뽀해주고 싶지 않니?”
그러자 로완이 시키는 대로 했다. 블랙키가 아랫입술을 늘어뜨리고 기분이 좋은 듯 눈을 반쯤 감았다. 로완이 쪼그리고 앉아 말굽 뒤쪽의 텁수룩한 털과 발목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
The Horse Boy에서 묘사하는 장면을 내가 분명히 보고 촬영도 했었다. 예사로운 장면이 아니었다.
https://youtu.be/TaUHFBlO8Yw
8.
나는 50 중반의 나이에 임용고시를 치고, 가을에 현직교사로 발령을 받을 예정이다. (좀 민망한 말이지만) 나는 교단에 설 만한 자질을 가지고 있다. 타고난 능력이 아니라 30년을 아이들과 만나온 경험 때문이다. 말 그대로 선전수전 다 겪었다.
그런데 말이다. 최근 내 정신세계에 닥친 일련의 신호들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로 나를 부르고 있다는 강력한 느낌을 준다.
9.
루퍼트 아이잭슨을 한국에 불러야겠다. <호스 보이>를 출판한 국내 출판사는 망해서 없어졌다. 번역자인 전북대 교수님께 물어보니 자신은 아무런 정보가 없단다.
아이잭슨이 제작한 The Horse Boy 다큐멘터리가 2009년 부산영화제에서 상영한 적이 있다는 걸 알았다. 93분 짜리 영화를 보니 책과 다른 감동을 준다.
우선 관심 있는 사람들과 함께 다큐 영화 The Horse Boy 감상 및 토크쇼를 열어야겠다. 의기투합한 사람들과 함께 아이잭슨을 초청하려고 한다.
10.
함께 고민할 사람을 만나고 싶다. 물론 김철 선생님과 긴밀하게 의논하고 있다. 오티즘협회와 상의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