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내 상황을 해석한다
#봉화에서50일
#7월29일
#Florida_Project
1.
알고 보니 일요일이네. 아무 의미 없다^^
2.
페친이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칭찬하는 포스팅을 했다. 본능적으로 "이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씩씩한 주인공 여섯 살 아이가 막바지에 울었다는 말만으로도 '이건 뭔가 있다' 싶었다.
3.
그래서 봤다. 스카이라이프에서 VOD로. 4500원 결제했다. 아이들과 같이 보고 싶었지만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무청이가 VOD 비용을 우리 엄마가 내는데, 왜 선생님이 무단으로 시청하냐고 하면서 어이 없는 표정을 지었다. 몇 년 전만 해도 무척 당황하다가→화가 나는 감정의 변화를 겪었을 것이다. 이제 그렇지 않다. 무슨 얘기냐 하면 아이들의(때론 성인 경우에도 마찬가지) 말이 발화자(發話者) 아이의 판단이나 생각이 아니라는 강한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선생과 자신이 불공평한 관계라고 생각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한쪽이 아이고, 다른 한쪽이 선생이라면 불공평이 당연하고 정상적이다. 불공정이 아니라 불공평이란 걸 강조한다. 이걸 공평한 관계로 만드는 게 좋은 선생님이고 바람직한 교육활동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다.
자신이 약자라고 생각한 아이는 선생님에게 맞설 수 있는 아이템을 최대한 이용한다. 자신이 매우 유리한 논리를 거머쥐었다는 걸 표현하려고 한다. 따라서 발화자는 생각을 말하기 보다는 자신의 스키마에 저장된 문장 카드를 뒤져서 적절하다고 판단하는 문장을 가져온다. 하긴 스키마에서 고른 문장 카드가 곧 자기 생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감정은 실제와 다르다는 말을 하는 거다.
그러니 미소를 보내며 "고맙다"고 말하면 되는 것이다. 이걸 몰라서 종종 실수한 적이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우리 엄마가 내는 돈으로 선생님 월급 받잖아요”라고 아이가 말한 것에 울컥해서 대안학교를 그만 둔 선생님을 알고 있다. 아이의 말은 아이의 감정과 관계 없는 경우가 많다. 그냥 때때로 아이들에게 져줘도 된다.
4.
자료를 뒤지니까 플로리다 프로젝트에 대한 수많은 콘텐츠가 쏟아진다. 2018년 최고의 걸작으로 뽑는 사람도 있다. 무니 역을 맡은 아역 배우 브루클린 프린스는 대단하고도 대단하다. 연기를 넘 잘해.... 순간 스치는 시크한 무표정 연기를 6살이 어떻게 저리도 잘 소화할 수 있지.... 이 영화로 아카데미 조연상을 수상한 모텔 매니저 역의 윌럼 더포(얼굴 보면 누군지 다 아는 미국 조연 전문 배우다) 또한 박수를 보내고 싶다.
5.
영화를 보면서 한 작품이 떠올랐다. 천재 감독 소리를 듣는 자비에 돌란 감독의 2014년 작품 <마미>가 그것. <마미>에서도 홀로된 엄마와 16살 아들 스티브가 같이 산다. 스티브는 ADHD 판정을 받고 병원에 있다가 퇴원해서 엄마와 단둘이 산다. 엄마는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하고, 스티브는 이웃집 아주머니와 낮에 함께 지낸다. 스티브가 사고를 치자 엄마는 스티브를 다시 병원에 입원시키지만 스티브는 간호사를 속이고 병원 밖으로 달아나는 게 마지막 장면이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도 아이들이 질주하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서는 22살 엄마와 6살 딸 무니가 사실상 홈리스로 산다. 도로변 싸구려 모텔에서 일주일 단위로 방값을 지불하며 살고 있다. 이 모텔이 디즈니랜드의 배후지역에 있다. 주변에는 고급 리조트와 레스토랑, 선물가게들이 즐비하고 대부분 건물은 밝은 파스텔톤이다. ‘매직캐슬’ 모텔에 사는 무니는 길건너 ‘퓨쳐랜드’ 모텔에 사는 7살 젠시와 절친이 된다. 젠시도 엄마가 15살에 미혼모로 낳은 아기고 역시 모텔에서 할머니와 살고 있다.
양육능력이 없고 방값을 내기 위해 성매매를 하는 엄마와 격리되는 무니가 마지막으로 젠시를 찾아가 울면서 작별을 고할 때 젠시는 무니의 손목을 잡고 대책 없이 뛰어간다. 바로 젠시가 무니의 손목을 잡는 순간부터 판타지의 시작이고 곧바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두 아이가 뛰어들어간 곳은 4인 가족이 입장하는데만 1700달러가 드는 디즈니랜드. 아이들이 디즈니랜드 안에 있는 매직캐슬로 달려가는 뒷모습만 보여주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간다.
6.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리얼리즘의 미학을 보여준다”는 평을 많이 받았다. 충분히 인정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마지막에 있다. 무니와 젠시가 손을 잡고 디즈니랜드 안으로 뛰어들어가는 장면은 아이폰6로 핸드헬드 방식으로 아이들 등 뒤에서 뛰어가면서 찍었다. 이 장면만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것이고 나머지는 35mm 필름 촬영을 했다고 한다.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리얼리즘은 마지막 2분의 판타지를 위해 존재한다. 감독은 두 아이가 질주하는 마지막 씬에 모든 것을 넣었다.
아이들은 달린다. 디즈니랜드를 찾은 수많은 인파를 헤치고 달린다. 연인이나 가족들이 대부분이다. 어떤 가족은 아빠와 엄마가 각각 아기를 안고 기념촬영을 한다. 그 옆을 앞만 보고 달려지나가는 무니와 젠시. 그런데 기념촬영하는 가족이 마치 입간판 등신사진인 것 마냥 전혀 미동도 안 한다.(아마도 사진이 맞을 것이란 개인적 판단이다)
마지막 장면과 함께 인상적인 장면이 몇 개 있다. 아이들의 불장난으로 화재가 난 비어 있는 콘도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는 무니의 곤란한 표정이 하나. 자기가 엄마의 자격이 없다고 말하며 깔깔거리는 무니 엄마 핼리의 표정이 하나. 모텔 매니저가 아들과 함께 냉장고를 옮기다가 아들이 더 이상 아버지 일을 도와주지 않겠다고 말하는 장면이 하나. 모텔 매니저가 모텔 입구를 막고 있는 홍학 떼를 천천히 밖으로 모는 장면이 하나. 그리고 가장 마음에 걸리는 장면은 자주 등장하는 헬리콥터를 향해 한 번은 손인사를 하고, 다른 때는 가운데 손가락을 세우는 욕을 하는 핼리와 무니 모녀의 모습이다.
7.
장면 하나하나에 대한 해석은 얼마든지 가능하고, 다소 다른 해석이라도 다 인정할 수 있다. 나는 헬리콥터의 의미가 가장 강렬하게 다가왔다.
더 중요한 것은 반전이라고 말할 수 있는 마지막 장면의 판타지에 대한 것이다. 거액의 입장료를 내지 않는다면 들어갈 수 없는 디즈니랜드를 두 아이는 거침없이 달려서 들어간다. 들어간 후에도 계속 달리는 아이들은 무니가 사는 모텔 이름과 같은 디즈니랜드 매직캐슬을 향한다. 여기서 화면은 멈춘다. 그래서 판타지라고 말하는 것이다. 디즈니랜드 가까이 살지만 영화 속에서 아이들은 디즈니랜드를 동경하는 장면이 없다. 관심 없는 다른 세계일 뿐이다. 그런데 울면서 작별을 고하는 무니의 손을 갑작스럽게 잡은 젠시가 무니를 끌고 달려간 곳이 디즈니랜드고 매직캐슬이다.
리얼리즘의 선상에서 생각한다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엔딩이다. 그래서 무니는 엄마와 헤어지지 않을 수 있으며 또한 친구 젠시와도 계속 함께 있을 수 있을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무모한 일이며 잘못된 판단이다. 디즈니랜드의 매직캐슬을 향해 달려가지만 결국 도로 옆의 싸구려 모텔 매직캐슬로 돌아갈 뿐이다. 사실상 홈리스인 어린 모녀에게 디즈니랜드는 아무 것도 주지 않는다.
여기서 감정이입이 되었다. 화려하고 예쁜 색깔과 치장들, 맛있는 음식들, 귀여운 인형들이 싸구려 모텔이나마 쫓겨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악다구니를 뱉어내고, 범죄도 저지르는 22살 엄마와 그의 딸 6살 무니에게 줄 수 있는 미래는 아무 것도 없다. 무니 엄마 핼리는 노동의지는 있지만 직장을 잡을 수 없다. 입술 피어싱과 전신 문신과 초록색 머리카락으로는 식당 서빙이나 단순 알바 자리도 얻을 수 없는 것. 딸과 길바닥에 내던져지지 않으려면 무엇이든 해야만 한다. 그렇지만 돈을 벌 수 있는 건 모두가 법테두리 밖이다.
8.
내가 만나는 아이들은 죄가 없지만 마치 죄를 지은 것처럼 살아간다. 사는 게 아니고 살아진다. 이 친구들에게 필요한 것은 디즈니랜드가 아니다.
진정 필요한 것은 언제나 아무렇지도 않게 곁에 있지만 아무도 보지 못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