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 스펙트럼 장애 진단이 가파르게 늘어난다
1.
재작년 9월에 내게 왔다가 보름을 채우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간 초등4학년 남자 아이가 떠오른다. 현재는 6학년 나이지만 아마도 학교에 다니지 못할 것이다.
2.
진수(가명)는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엄마와 형이랑 같이 살았다. 원래 집은 서울이었고, 아빠는 직장 때문에 여전히 서울에 살고 있었다. 진수 때문에 엄마가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으로 멀리 이사 간 것이다.
3.
진수의 한 살 위 형은 선생님과 주변에서 칭찬을 많이 받는다고 했다. 외모가 진수보다 잘 생기고 덩치는 왜소해서 마치 못난 동생이 잘난 형을 시샘하는 줄 오해 받는다고 했다.
진수는 학습력도 떨어지고, 매사에 의욕이 없다. 움직이지 않으니 살이 많이 쪘다. 살이 찌니 더 움직이지 않으려고 했다. 진수를 데리고 산에 두 번 갔는데, 두 번 모두 인솔하기 곤란했다.
4.
진수는 화를 잘 냈다. 누가 가까이만 와도 자기를 방해했다고 하면서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용문산에 가느라 새벽에 움직여서 용문면에 아침 7시에 도착했다. 아침에도 여는 김밥집에서 식사를 하려고 들어갔다. 자리에 앉아 주문도 채 하지 못한 때에 진수가 휴지통과 물컵을 힘껏 던지는 바람에 인솔교사와 김밥집 아주머니 모두 얼음이 됐다.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휴지통 속 사각티슈가 빠지면서 가게 안에 휴지가 여기저기 너풀거렸다. 옆에 앉은 친구가 자기를 밀어서 화가 났다는 거다.
5.
진수가 결정적으로 내 곁을 떠난 건 노트북을 집어던졌기 때문이다. 자기가 노트북 보는 것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옆 아이에게 노트북을 집어던졌다. 액정이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깨졌다.
진수엄마에게 25만원 수리비를 받았고, 그냥 넘어갔지만 아이는 집으로 가겠다고 울면서 떼를 쓰는 바람에 엄마도 포기하고는 시골집으로 데리고 갔다. 노트북이 깨지는 날 내 목소리가 아주 커졌고, 진수는 힘들어했다.
6.
이제 다시 복기를 해보니 다른 평가가 가능하다. 진수가 예민한 성격인데 형과 자꾸 비교되면서 열등감이 학교를 거부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했었다. 물건을 집어던지고 소리를 지르며 난동을 부리는 건 그런 행동이 원하는 걸 얻는 성공경험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봤다. 아이가 편안한 마음일 때는 서로 대화가 가능하고 잡다한 지식도 꽤 갖추고 있었다.
지적발달에 문제가 없으며 곤란한 행동도 늘 있는 건 아니었다. 따라서 나는 진수를 충분히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노트북 파손에 대해 언성을 높여 꾸중한 것은 내 감정이 전달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넌 잘못한 것이고 내가 널 꾸중하는 건 당연한 것이니, 지금의 패널티가 내일의 올바른 널 견인할 거야'-이런 생각이었다.
7.
그게 아니었다. 이제 생각해보니. 너무 아쉽다. 그렇게 야단치지 말았어야 했다. 왜냐하면 진수는 자폐 스펙트럼에 해당하는 아이였다.
진수가 두 주일도 채우지 않았기 때문에 놓친 것이 많았다. 눈도 잘 마주치지 못했다. (낯설어서, 처음이니까 그런 줄 알았다) 소리를 넘 쉽게 자주 질렀다. (이기적이고 폭력적 성향이 있다고 봤다) 특정한 행동에서는 나이에 비해 많이 어린 경우였다. (아이들의 열등감은 심리적으로 성장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진수의 모든 행위는 전략적 판단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진수도 어쩌지 못하는 경우였을 것이다. 노트북을 집어던진 것은, 이처럼 과격하게 행동하면 나를 건들지 못할 것이란 판단에서 나온 무모한 결과가 아니다. 뇌가 시키는대로 행동하고 사후에 어쩔 줄 모르며 당황하는 악순환이 계속된 것이다.
8.
드문 예였던 진수의 행동이 많은 아이들에서 보인다. ADHD와 또 다른 케이스다. 자폐 스펙트럼 중 한 가지 패턴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예일대 팀이 2011년 경기도 일산의 55000명을 직접 면담한 결과가 2.63%다. 100명 중 2~3명이 자폐 증상이 있다는 것인데, 미국의 1% 통계보다 너무 높다. 미국도 1990년 이전에는 0.05% 였던 것이 20년 동안 1%로 급증한 것이다.
9.
진수의 경우 교사와 부모의 합의가 가장 중요하다.(병원 진단을 받으려면 많은 시간과 돈이 든다. 병원의 진단은 뒤로 미뤄도 된다) 자폐아라면 치료법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회복불가능한 엄청난 장애로 받아들인다. 부모는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10.
부모와 합의가 된다면 주변 사람과 가까운 또래 친구들에게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래도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아이의 공격적 행동을 응징해서는 안 된다.
11.
"자폐는 고쳐지지 않는다" 이 말은 올바르지 않다. 치료를 통해 자폐증이 전혀 없는 상태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만약에 주변 모든 사람들이 능숙하게 수화(手話)를 했을 때 청각장애인이 장애인이라 불릴 일이 아니라는 말을 떠올린다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것이다.
장애는 신체적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불공정한 관계에서 약자에게 붙여지는 이름일 뿐이다.
12.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폐 스펙트럼 어린이청소년이 무척 많다. 과거에는 말하지 못하고, 대소변 가리기 어렵고, 눈맞춤이 불가능하고, 의사소통이 곤란하고, 맥락없는 소리만 반복하는 지적 장애를 동반한 장애 형태만 자폐로 봤지만 현재는 스펙트럼이란 용어를 들여오면서 좀더 광범위하게 진단하는 건 맞다. 한편으로 단지 진단 폭이 넓어진 것 뿐만 아니라 자폐 증상이 확산된 것도 분명하다. (화학물질에 의한 환경오염이 가장 의심스럽다)
핵심은 아이의 이성적 판단에 의한 행위가 아니라는 데 있다. 따라서 해결 방법도 아이에게 언어를 사용해서 교사나 부모의 의사를 전달하는(큰 소리로 야단치는 것) 건 불가능하다.
13.
다르게 접근해야 하는 문제다. 현장교사의 가장 큰 애로사항이 바로 자폐 스펙트럼의 확산에 있다. 징벌이나 설득으로 아이가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14.
스웨덴이 1997년 법을 개정하면서 전국의 모든 특수학교와 특수학급을 폐지했다는 건 아직 우리에겐 판타지다. 그래도 가야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