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Post Script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by 박달나무

#봉화에서50일
#7월31일
#판타지와리얼리즘

1.
7월29일 일기에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후기를 썼다. 원래 하고 싶은 말을 빼먹었다.

2.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마지막 2분을 제외하고는 리얼리즘 영화로서 무리하지 않은 연출력과 신인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인 작품이다.
대부분 작가들이 알고 있듯이 리얼리즘이라는 지각(地殼)은 판타지라는 멘틀 위에 놓였다. 유동성 있는 멘틀이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지각은 균열을 내며 지진이 일어난다. 지각 위에 또다른 껍질로서 사는 인간은 지진에 무방비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3.
반대로 멘틀은 지각이 덮어주지 않으면 존재 불가능하다. 지각이 없다면 멘틀의 맨 위는 식어버리면서 딱딱한 땅덩어리로 변할 것이다. 멘틀과 지각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이다.

4.
리얼리즘과 판타지도 마찬가지다. 판타지 없이 리얼리즘이 탄생하지 않는다. 리얼리즘 없이 판타지도 존재 불가능하다.

5.
사람은 리얼리즘과 판타지를 왔다갔다 하면서 성장하고 삶을 영위한다. 그것을 가장 잘 보여준 작가 중 한 사람이 미하엘 엔데 일 것이다. 엔데의 <모모>나 <끝없는 이야기>는 인간이 판타지와 리얼리즘을 크로스하면서 결국 리얼 세계를 얼마나 풍부하게 하는지 말하고 있다.

6.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슬픈 판타지를 마지막 2분에 담았다. 디즈니랜드를 내달리는 장면은 판타지이지만 잠시 후 다시 리얼 세계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걸 두 아이도 알고 관객도 알고 있다.
원래 리얼 세계에서 판타지로 들어가는 것은 리얼 세계의 모순을 해결해서 주체의 성장을 이루는 효과를 낳지만, 무니와 젠시의 디즈니랜드 매직캐슬을 향해 질주한 결과는 도로 홈리스들이 모여 사는 싸구려 모텔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아무런 모순 해결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주체인 무니나 젠시 어린 아이의 성장도 기대할 수 없다.
그래서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슬픈 동화가 된 것이다.

7.
같이 생활하는 징징이와 무청이의 문제는 같지만, 방향성은 정반대다.
징징이는 리얼리즘에서 판타지로 넘어가는 가교를 잃어버렸다. 반면 무청이는 판타지에서 리얼 세계로 들어오는 사다리를 마련하지 못했다.
둘 사이(리얼과 판타지)를 편안하게 왕복하는 것이 행복한 삶을 꾸리는 중요 지표다. 어느 한 세계에 머무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비현실적이다.
징징이는 판타지를 적대시하고, 무청이는 현실을 외면한다. 혹시 두 세계를 횡단했다고 해도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무니와 젠시처럼 아무런 진보가 없다. 변증법적 발전을 통한 모순해결을 기대할 수 없었던 거다.
두 세계(리얼과 판타지)를 들락날락하는 것은 자연스런 인간문화이지만, 우리 아이들처럼 한 세계에 머무는 경우에 문제가 된다.

8.
교사와 교육과정의 목표 및 핵심은 두 세계를 이어주는 다리를 건설하는 것이다. 그림동화부터 역사, 자연과학, 수학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리 건설에 꼭 필요한 재료들이다. 천체물리학도 리얼이면서 충분히 판타지이고, 수학도 그러하며, 확실한 판타지 작품일지라도 동시에 리얼리즘을 품고 있다.

9.
분과학으로서 문학, 예술, 역사, 자연과학, 수학도 중요하지만 평소의 대화가 현실과 판타지를 아우르며 함께 가느냐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어떻게 현실을 강조하는 말이 판타지를 품을 것인지, 왜 판타지를 언급하며 동시에 리얼리즘에 발을 굳건히 붙이고 있어야 하는지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

10.
그런 점에서 징징이와 무청이를 짧게 만나고 헤어지면서 자부심도 있으면서 아쉬움도 크다. 그것 또한 삶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