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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규 Sep 06. 2018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콘돔에 우수개로 "그렇게아버지가된다"고 이름 붙였다는 전설이 있지만서도

지난 주말 충격적인 소식에 망연자실하다가 한의사가 맥주보다는 막걸리가 체질상 좋다는 조언이 생각나서 집 앞 마트에서 막걸리 각 다른 놈으로 8병을 샀다.(배혜정도 있고, 지평막걸리도, 배상문주가 것도 있고 등등)


집에 아무도 없어서 혼자 막걸리를 따라 마시다가, 불현듯 떠올라 고래에다 감독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ipTV에서 찾아 봤다. 


아이고.... 아이는 6살인데(일본은 언제나 만 나이를 사용) 산부인과에서 아이가 바뀌었다는 스토리다. 


"이런 거였어..... 뒤는 안 봐도 다 알겠네"


15분 쯤 봤을 때 딸 아이가 오고, 곧이어 아이 엄마도 들어오고 해서 TV는 끄고 막걸리와 전어회로 저녁 대신 파티를 열었다. 한 병 두 병 마시다가 결국 8병을 다 마셨다. 피곤한 아이 엄마는 소파에서 잠들었고, 대학생 딸냄 내 사정 위로하다가 둘이 같이 울고.... 아이고 참 별일이었다. 


다음날 정좌를 하고 <그렇게 아버지....>의 뒷부분을 집중해서 봤다. 요즘 막걸리 많이 진화했구나 싶다. 머리가 안 아프니까 말이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얼마 전 <어느 가족>을 감명 깊게 봤기 때문에 고래에다 감독 필모에 나오길래 제목에 끌려 본 것. 일본어 원제나 영문 제목은 결이 많이 다르다. 영화 수입업자들이 고심을 해서 한국 관객에게 어필하려고 지은 제목이 <그렇게....>가 되었다.


마지막 엔딩크레딧을 보니 역시 원작도 고래에다 감독의 오리지널 시나리오다. 나로선 10배 쯤 희석한 막걸리 맛이다. 너무 싱겁다. <어느 가족>이 상대적으로 꽤 짭짤했던 탓인가.


그래도 하나 건졌다.


두 집이 있다. 아빠 류세이, 아들 케이타. 아빠 유다이, 아들 료타. 료타는 밑으로 동생이 둘 더 있다. 케이타는 외동. 


한국 형편으로 말하자면 류세이는 GS건설 다니면서 송파 자이아파트에 살고 렉서스를 타고 다니는 회사 소속 건축가이다. 언제나 바뻐서 가족과 캠핑 한번 가본 적 없다.


유다이는 가평 현리에서 전기용품 판매와 가전수리를 겸하는 일을 한다. 낡은 경량 승합차를 끌고 다니고, 겨우 먹고 사는 형편이다. 아이가 셋이다. 언제나 아이들과 함께 지내고 스킨십을 하고 같이 놀아준다. 연날리기를 하거나 총싸움을 하면서 기꺼이 장렬히 죽어준다.


그런데 두 집의 아이 케이타와 료타가 산부인과에서 바뀌었다는 것. 고심 끝에 아이를 바꾸지만..... 겉으로 보이는 스토리는 한국 일일 드라마 수준이다. 하지만 고래에다 감독이 여러 장치를 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로 신선하지 않다. 거의 다음 장면을 예상한 대로 영화는 흘러갔다.


내가 건진 건 두 집의 결정적 차이를 확인한 것이다. 고래에다 감독의 의도인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모르고 시나리오를 썼을 것이란 짐작이다. 두 집은 극명한 차이가 있다. 아빠의 가방끈 길이, 사는 곳, 경제 형편, 구사하는 말투, 부부의 평등성 등에서 모두 다르다. 일부러 격차를 두고 설계를 한 것이다.


시골에 살던 료타가 밝은 성격이지만 도쿄 고급 아파트에 살던 케이타가 우울해 보이는 건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내 생각이자 영화에서 건진 유일한 장치)


도시 아버지 류세이는 삶터와 일터가 다르다. 승용차를 타고 한참을 가야 직장이 있다. 가족은 아빠의 직장에 가볼 수 없다. 반면 시골 아버지 유다이는 삶터와 일터가 하나다. 가족은 언제나 아빠의 일터에서 아빠가 하는 일을 볼 수 있다.


산업사회가 되면서 사는 곳과 일하는 곳이 분리되는 변화를 불러왔다. 도시란 삶터와 일터를 분리하면서 만들어졌다. 토지 사유화의 자본주의가 일등공신이다.


아이들 입장에서 본다면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간 부모가 저녁이 돼서야 집으로 돌아오고, 귀가한 부모와 잠자리 들기 전까지만 함께 사는 상황이 아주 나쁜 환경이 된 것이다. 그런 파행적인 도시적 삶이 정착되면서 어린이청소년의 발달장애와 정신과적 문제도 급속히 커진 것이다.


고래에다 감독의 영화 <바다마을 다이어리>를 봤을 때 기분이 좋았다.(그냥 그 정도) <어느 가족; 원제는 "몰래 훔쳐서 먹고 사는 가족">는 상 받을 만 했다. 그러고 보니 고래에다 감독은 혈연 중심의 가족관계가 수명을 다했다고 보고, 가족을 다르게 표현하고 싶은가 보다.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고래에다 감독의 고민이 계속 이어지고 좋은 영화를 만들기 바라고 응원한다.(나도 영화 만들고 싶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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