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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달나무 Jul 25. 2017

Procrastination과 ADHD

<산만한 아이가 왜 과잉행동을 하게 될까>에 대한 고민 보고서

  Procrastination을 들어보셨나요? [프로크래스터네이션] 정도로 발음하면 됩니다. "미루는 습관" "질질 끄는 버릇" 정도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미루기 병"으로 일종의 병명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물론 병원에서 정식으로 진단하는 병명은 아닙니다.

  누구나 아래 사진처럼 "시험공부의 7단계"를 경험해보고 낭패를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Procrastination의 대표적 예입니다.

  Procrastination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임상심리학자 윌리엄 너스는 "인류의 90%는 미루는 습관 때문에 난처한 일을 겪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미 5명 중 1명은 Procrastination에 빠져있다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늘 Procrastination를 겪는 아이가 있다고 상상하면 어떤 모습일까요? 

  위 그림처럼 해야 할 일을 계속 다음 날로 미루다가 막바지에 가까스로 수행하거나 아니면 결국 과업을 펑크 내는 악순환이 계속될 것입니다. 많은 어른들이, 특히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일수록 데드라인을 코 앞에 두고서 밤을 새워 과업을 완수(주로 원고 작성)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발 더 나아가 미루고 또 미루다가 결국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고 상상해 봅시다. 그런 낭패가 일상이 돼버린 사람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하게 될까요. Procrastination이 심한 사람에게는 대부분 비난과 퇴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신이 즐기지 않는 일이 숙제처럼 배당되면 비난과 질책, 조직으로부터 퇴출과 배제가 두려워 마감 시간을 넘기지 않고 과업을 수행하는 법이지만 만약 마감시간마저 넘겨버리면 대개 과업 미수행에 대한 적절한 이유를 만들게 됩니다. 핑계를 만든다는 겁니다. 그리고 자기 정당성을 굳건하게 하기 위해 핑계는 핑계의 차원을 넘어 확실하고 합리적인 '사실'로 자리 잡아야 합니다.

  만약 늦잠으로 지각을 했는데 어제도 지각을 해서 질책을 받았다면 오늘은 적절한 핑계를 댑니다. 자기가 탄 버스가 3중 추돌 사고를 내는 바람에 허리를 다쳤고, 병원에 가서 X-레이를 찍고 오느라고 늦었다고 거짓말을 만들지도 모르겠습니다. 핑계가 거듭되면 거짓말로 진화되기 마련입니다. 이때 거짓말이 들통난다면 솔직하게 말했을 때보다 더 큰 피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질책을 피하기 위해 도박을 하는 겁니다. 환자로서 위로를 받을 것인가, 지각한 주제에 거짓말까지 한 것으로 가중처벌받을 것인가.

  당연히 거짓말을 지어낸 사람은 도박에서 이기길 간절히 바랍니다. 자신이 이길 수 있는 확률을 확실히 높이기 위해 취할 수 있는 행동이 자기기만(self-deception)입니다. 상대방을 속이기 위해 자신을 먼저 속입니다. 실제로 허리가 아파서 쩔쩔매는 것입니다. 거짓으로 아픈 것이 아니라 진짜로 아파야 교사나 관리자가 교통사고에 대해 의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러니까 자기기만을 통해 상대방 기만 확률을 높입니다. 이제 지각한 사람은 실제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믿습니다. 상대방 기만이 더 큰 질책을 불러오지 않으려면 내 행동과 진술이 거짓말이 아니어야 하는 것이고, 자기기만을 통해 거짓말 한 사실을 마음에서 지웁니다. (참고;로버트 트리버스, 우리는 왜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을까, 살림, 2013) 

  결론을 말하자면 ADHD란 병은 없습니다. 그런데 ADHD 소리를 듣는 아이들의 공통된 특징이 Procrastination과 자기기만입니다. 일반명사인 Procrastination이 병의 이름으로 둔갑을 하고 미국 질병관리협회에 의해 ADHD로 명명된 것입니다. 주목할 점은 ADHD 판정을 받은 아이들은 거짓말과 자기기만 경계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거짓말은 거짓말한 아이가 거짓말한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것이고, 자기기만은 거짓말했다는 것을 잊은 것입니다. 가짜를 진짜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ADHD 아이들은 거짓말과 자기기만 경계에 서서 이쪽저쪽을 필요에 따라 쉽게 넘나 듭니다. 기본적으로 거짓말을 알고 있지만 자기가 불리한 상황에서는 재빨리 자기기만으로 넘어갑니다. 자기기만 상태로 가면 양심 가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이는 비난받을 자기 행동에 대해 당당하게 뻔뻔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역으로 ADHD 누명을 쓴 아이들은 자기 행동의 잘못을 잘 알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제 '왜 산만한가'를 묻지 말고 '왜 자기 과업을 계속 미루는 것일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Procrastination이 산만함을 낳고 산만함이 자기기만의 형태로 과잉행동을 불러일으킵니다. 스스로 환자 코스프레(코스튬 플레이; 만화 캐릭터의 복장을 입고 해당 캐릭터의 역할놀이를 하는 것)의 결과로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과장된 행동을 보입니다. 정신과적 병을 지닌 사람으로서 역할을 보여주기 위해 과장된 행동을 하게 되며 자기기만을 통해 롤플레이를 숨기고 행동과 자기 정체성을 일치시킨다는 얘기입니다. 

  과자봉지를 교실바닥에 함부로 버리는 일이나 자기 물건을 개인 사물함에 정리하지 못하고 아무 데나 내팽개쳐서 결국 잃어버리는 일을 Procrastination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미루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해야 할 일을 방기(放棄)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미루었다고 생각하고, 미룬 것을 수행하기 전에 부모나 교사가 지적했다고 생각합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결국 자신이 과업을 수행했을 텐데 그새 못 참고 잔소리를 해대는 어른이 문제라는 입장입니다. 

  미세한 자극에 반응하고 한 가지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도 Procrastination의 모습입니다. 산만해서 일을 미루는 것이 아니라 미루는 습관 때문에 산만하게 보입니다.

  그런데 ADHD로 불리는 아이들은 마감시간 직전에 과업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마감시간을 넘기고 추가시간을 흘려보내고도 과업을 수행하지 못합니다. 본인도 이런 결과를 잘 알고 있습니다. 어른들이 조금 기다려준다고 해도 자신이 책임지고 과업을 수행하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변명거리를 만들고 변명이 핑계가 되고 결국 거짓말로 탄로 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자기기만을 동원합니다. 아이가 누구에게도 인정받을 수 없는 과장된 행동을 함으로써 스스로를 환자로 만듭니다. "난 이런 캐릭터입니다. 어쩔 수 없는 놈이죠. 그러니 날 이해하시구려"

  그럼 아이들이 왜 Procrastination(미루기 습관)을 보이는 것일까?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과업수행 결과에 대해 평가받고 가혹한 책임추궁을 반복적으로 경험했다면 과업수행을 미루게 됩니다. 미루는 것이 습관이 되면 병인양 심각해지지만 당사자인 아이들은 감각이 무뎌지게 됩니다. 비난이 당연한 상태가 되면 속된 말로 "배 째" 상태에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맘대로 행동하는 단계로 넘어갑니다. 주변을 다 힘들 게 하지만 가장 힘든 것은 당사자인 ADHD 판정을 받은 아이입니다.

  가장 먼저 그들이 서열 평가를 받고 그 결과가 칭찬과 비난으로 귀결되지 않는 환경에 놓여야 합니다. 그리고 아이가 의심하지 않고 충분히 새로운 환경에 젖어들도록 시간이 필요합니다.

  살아 있는 최고의 진화생물학자라는 로버트 트리버스는 기만과 자기기만이 생존과 번식을 위한 생명체의 진화 방향이라고 설명하면서 부모가 자식에게 자기기만의 전략을 쓰도록 유도하거나 심지어 강요하기도 한다는 주장을 합니다. 트리버스 주장의 정당성을 따지기 전에 가설 차원에서 검토할만한 개념입니다. 아이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자기기만을 권장하지 않았을까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연히 부모 또한 자신의 행위가 평가받고 점수로 결과를 보여주는 환경에 놓이지 않아야 합니다. 아이가 안쓰러운 만큼 부모도 똑같이 안쓰러운 세상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지혜가 함께 하지 않으면 풀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2014.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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