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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규 Jan 29. 2019

7문7답

『괜찮아 ADHD』 출간에 붙여

『괜찮아 ADHD』 저자 박준규는 1988년부터 서울과 강원도에서 20년 동안 초등교사로 일했고, 학교 밖으로 나와 대안교육을 실천하면서 10년 동안 ADHD 아이들을 만났다. 소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들’로 불리는 어린이•청소년들을 일부러 만난 것이 아니라 학교 밖에서 자유로운 활동을 진행하는 대안학교를 하겠다고 선언하니까 대부분 ADHD로 약물치료를 받거나 적어도 병원에서 상담을 받은 경험이 있는 아이들이 찾아왔다고 한다. 박준규가 공교육 교사 시절 ADHD에 대해 기본 지식을 알고 있었고, 초등 2학년 여자 어린이를 1년 동안 중곡동 소재 국립정신병원 소아청소년과에 데리고 다닌 경험도 있었지만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새롭게 공부하고 부대끼면서 몸으로 아이들을 이해하고 교사가 아닌 파트너로서 거듭나는 과정은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짜릿함을 주었다고 말한다. 2013년부터는 초등학교 어린이들과 주중 기숙 형태로 함께 살았다. 박준규는 먹이고 씻기고 여행하고 공부하고 함께 노는 밀도 높은 5년의 시간이 『괜찮아 ADHD』를 탄생시킨 밑거름이었다고 말한다. 그에게 궁금한 것 7가지를 물었다.     


1.  Q : ADHD는 질병의 이름인가요? 한국에는 환자가 몇 명 있습니까?   

 =A : 이제는 널리 알려졌는데, ADHD는 주의력이 부족하고 행동이 부산한 Disorder를 말합니다. 낱말의 앞글자를 따서 만든 용어입니다. 흔히 주의력 결핍(Attention Deficit) 과잉행동(Hyperactivity) 장애(Disorder)라고 소개합니다. 일본에서는 Hyperactivity를 과잉행동이라고 하지 않고 다동성(多動性) 이라고 번역합니다. 

 문제는 Disorder에 대한 견해가 서로 다릅니다. 장애로 번역을 하기도 하지만, 장애가 아닌 질병 또는 질환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장애가 아닌 질병이기 때문에 치료가 가능하다는 주장입니다. 발달장애는 장애 특성을 벗어날 수 없지만 질병인 ADHD는 적절한 치료를 통해 ADHD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철저히 정신의학계의 입장입니다.

 정신과 3대 질환이 조울증(양극성 장애), 조현병(과거 정신분열이라고 표현), 망상증(자기가 놓인 상황을 착각하는 경우)인데, 제 개인적으로 만난 수백 명의 학교 밖 어린이•청소년 중 단 한 명만 망상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조울도 있고 조현도 있었지만 진정한 정신과적 환자로 보이지 않았지요. ADHD는 정신의학계에서 새로운 질환으로 말하고 있지만 의학계에서도 증후군처럼 현상으로 설명하지 명확하게 밝혀낸 것이 없습니다. 메틸페니데이트(각성제)를 먹이면 왜 행동이 가라앉는지 알 수 없는 것이죠. 수많은 약물 부작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말입니다.

 의학계에서 말하는 ADHD에 해당하는 어린이•청소년은 초중고 학생 중 4~5% 정도로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만 일선 교사의 입장에서는 15~20%를 주장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서울시교육청 발표로 ADHD 및 유사 ADHD 학생을 합쳐 전체의 16%라고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교사의 수업을 방해한다고 생각하면 유사 ADHD로 밀어붙이는 경향성의 영향이라고 생각돼요. “우리 반 아이들 절반이 ADHD야” 이렇게 말하는 교사를 많이 봅니다.

 하지만 저는 다르게 판단합니다. ADHD는 어린이•청소년의 특별한 대응양식을 말한다고 봅니다. 일부 어린이•청소년의 삶의 문법으로 파악하는 게 올바릅니다. 일 년 내내 사방이 눈으로 덮인 세상에서 사는 에스키모 사람들에게 눈(snow)을 표현하는 수십 가지 낱말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에스키모 사람들의 자연환경과 그들의 삶을 분리해서 말할 수 없는 것처럼 ADHD로 불리는 어린이•청소년의 외형적 표현 문법을 그들이 처한 환경과 무관하게 해당 아이들의 고유한 특성으로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ADHD 용어를 편의상 사용하고 있지만, ADHD를 질병으로도 장애로도 보지 않습니다. 또한 개인의 캐릭터도 아닙니다. 상황에 따라 구사하는 문장이 다르듯이 자기 환경에 조응하는 문법이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문법은 말의 체계인 것이지 말 자체를 부르는 것은 아니니까요.     


2.  Q : ADHD가 질병이 아니라면 어린이•청소년 ADHD나 성인 ADHD 특성을 보이는 원인이 무엇인가요?     


 =A : 어린이•청소년과 성인의 ADHD는 구별할 필요가 있지만 공통점은 불안한 상태에 놓였다고 본인이 판단하는 것입니다. 어린이•청소년 ADHD를 말하자면 불안한 상태에 대한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 필요한 말꾸러미를 가지고 있지 못하는 것이 독특한 행동양식을 만듭니다. 한마디로 말의 몰락입니다. ADHD 아이들은 언어의 몰락과정을 겪습니다. 일부는 처음부터 언어가 형성되지 못할 수 있는데, 그런 경우는 자폐 스펙트럼(ASD)으로 봐야합니다. ADHD로 불리는 아이들은 미약하나마 언어세계를 구축했지만 랭귀지 파트너를 잃어버리고 관계의 세계가 소멸되면서 구축된 말이 몰락한 것입니다. 도와달라고 말할 상대가 없고, 뒤늦게 파트너가 생겨도 이미 구사할 말꾸러미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말로써 도움 요청을 하지 못할 때 집단의 규칙을 깨면서 생활의 맥락을 잃어버린 것을 우리는 ADHD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3.  Q : 저자는 ADHD 어린이들과 왜 함께 생활했습니까?    

 =A : 몰락한 말의 세계를 다시 구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말의 복원은 일상의 복원입니다. 말이 몰락이 일상의 파괴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일상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면 파트너와 일상을 함께 할 수밖에 없습니다. 파트너는 바로 저, 어른 보호자를 말하는 것이고 교사라고 표현해도 됩니다. 다만 학교의 교사와 구분하고 싶습니다. 학교는 학교이기 때문에 아이들과 교사가 일상의 생활을 같이 할 수 없으니까요. 

국어 시간에 말하기와 듣기, 읽기, 쓰기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파트너와 평등하게 대화하는 것이 일상의 복원이며 말의 재구축입니다. 평등하다는 것은 평가의 세계 너머에 있는 세계에 서식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사나 부모가 평가하는 환경에서는 절대 일상의 복원은 불가능합니다.     


4.  Q : ADHD 어린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A : 일상의 복원과 말의 재구축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그건 몸을 쓰는 것과 밀접합니다. 행위가 없이 언어를 사용한 대화는 불가능합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행위가 있고, 사후에 행위에 대한 묘사를 위해 언어를 동원하는 것입니다. 행위가 없으면 언어도 필요 없으며 행위 없이 대화하는 것은 겉보기에 대화 같이 보이지만 허깨비에 불과한 것입니다.

어린이 경우 몸을 쓰는 가장 기초적인 일은 걷기입니다. 걷기는 걷기 위한 근육의 움직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걸음으로써 환경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환경이 변하기 때문에 반드시 사후적 묘사로써 언어를 사용합니다. 즉 대화를 하게 됩니다. 결국 ADHD라고 불리는 사람은 대화가 가장 필요합니다. 교사로서 제 역할은 바로 대화 파트너가 되는 일이었습니다. 대화를 위해 산에도 가고 자전거도 타고 스키도 타고 말도 타고 하면서 몸을 움직인 것입니다.     


5.  Q : ADHD 어린이 부모가 꼭 알아야 하는 사항이 무엇인가요?   
  

 =A : 내 아이에게 내 의지가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을 꼭 알아야 합니다. 내 의지는 내 삶이 자아낸 콘텐츠입니다. 부모가 만든 콘텐츠, 교사가 만든 콘텐츠는 부모 또는 교사의 고유성입니다. 그런데 콘텐츠가 아이에게 전달되지 않습니다. 아이는 스스로 콘텐츠를 만들 뿐입니다. “옜다, 받아라” 말하며 주면 아이는 받아서 의식의 창고에 쟁겨놓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줄 수 있는 것은 정서입니다. 좋은 정서를 주는 것은 중요합니다. 당연히 부모의 정서가 안정돼야 하겠지요. 다른 말로 하면 부모의 마음 상태는 아이에게 전달됩니다. 그리고 아이의 정서에 결정적 영향을 미칩니다. 참으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기에 부모도 몸을 쓰는 일상이 필요합니다. 대화하면서 말의 세계를 잘 만들어야 합니다. 반드시 대화의 짝은 평등해야 합니다. 불평등한 상황에 놓이면 빨리 그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이 우선입니다.  

   

6.  Q : ADHD 어린이를 돌보는 교사들이 고통을 호소하는데,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요?     

 =A : 현실적으로 가장 큰 문제입니다. 학교 교사들의 고통은 실제 고통이고 교직을 떠나게 만들고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많은 교사들의 자세를 바꿔버린다는 것입니다. 고통스럽기 때문에 일단 피하려는 것은 당연한 본능이니까요. 

ADHD에 대한 오해를 풀고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어느 정도는 연습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제게 지난 10년은 연습과 노력의 시간이었습니다. 연습은 당연히 거푸 실패하게 됩니다. 그래도 연습이라서 실패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다시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일선 교사들이 ADHD 어린이•청소년을 만나는 상황을 대사 없는 즉흥극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상황은 내가 만든 게 아니고 연출자가 세팅한 것이기에 즉흥극 안의 배우들은 책임에서 자유롭습니다. 내가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상대방 배우의 대사가 결정됩니다. 반대로 상대 배우가 어떤 대사를 말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내 대사를 결정하게 됩니다. 그렇게 펼쳐지는 즉흥극 속의 상황은 서로 물고 물려서 원인과 결과를 구별할 수 없습니다. 

ADHD라고 불리는 아이들을 만나는 것은 원인과 결과를 구별할 수 없는 세계, 즉 내가 원인이기도 하고 결과이기도 한 세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런 인정을 바탕으로 비로소 ADHD라고 불리는 아이들과 대화가 가능합니다. 특정인에게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겉보기에 대화처럼 보여도 결국 일방적인 지시와 원망만 될 뿐입니다. 그래서 공부와 연습이 필요합니다.     


7.  Q : ADHD 해결을 위해 정책적인 배려가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그렇다면 어떤 정책이 필요한가요?    
 

 =A : 위에서 말한 교사 훈련은 필요하지만 공교육 시스템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흔히 교사연수라고 하는 재교육활동을 통해서는 교사의 공부와 연습은 어렵습니다. 제도권이 아닌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살피고 겪을 수 있도록 과감한 연수정책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학교가 어려움을 겪는데 학교 시스템 안에서 해법을 찾는 것은 아이러니입니다. 학교 밖의 에너지와 새로운 공기를 가져올 수 있을까 고민하기 바랍니다. 

그나마 시도 교육청의 수장들이 가능성을 가진 분들로 바뀌어서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과감한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교사들이 직접 아이들과 장거리 걷기 여행을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마치 프랑스의 쇠이유(Seuil; ‘문턱’이란 뜻)협회의 걷기 프로그램처럼 말입니다. 

똑같은 이유로 부모교육에 대한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합니다. 부모교육을 법제화해서 근무 시간으로 인정해주고, 예산 지원도 이루어져야 진정한 부모교육이 가능할 것입니다. 정부는 지원해주되 간섭하지 않고 민간에서 이루어지도록 통 큰 결단도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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