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번째날

세계자연유산 크레이들마운틴 국립공원 트레킹(2019.4.13)

by 박달나무

#세계자연유산_크레이들마운틴국립공원

#태즈매니아일순위관광지

#도브호수

#끝내주는날씨


욕을 한다, 아이들이. 그러나 당황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안심이 된다. 아이들의 욕을 도덕적 문제로 가져가면 안된다. 내가 말하는 것은 초등학생의 경우다.


아이들은 욕이 금기인 줄 알기에 욕을 하는 법이다. 금기의 선을 넘는 희열이 있고, 금기를 넘나들면서 자기를 방어하겠다는 '계산'도 있다. 뜻을 모르고 하는 경우는 있다. 아이들이 '합창년'이란 말을 하길래 처음엔 알아듣지 못했다. 분위기 상 욕의 느낌이 있어서 물었다.


"합창년이라니, 그게 뭔 말이냐?"

"잘 모르겠어요. 교실에서 아이들이 흔히 쓰는 말이에요."

'수박 씨발라 시베리아허스키 눈깔에 처박아버릴라'와 같은 말이라는 걸 알았다. (아이들은 수박씨발라.... 이렇게 말하며 엄청 즐거워 한다. 합법적인 수사를 동원하지만 사실상 심한 욕을 하는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다) 말하고자 하는 비난의 내용은 '창녀(년)'에 있지만 합창을 앞세워 욕을 가리는 효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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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나(졸라)'는 '무척', '아주'와 같은 부사어라고 생각한다.(부사어란 용어를 아는 건 아니지만) 어원이 욕에 근거한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다. 이어지는 용언을 매우 강조하는 최상급 표현으로 '센 척'을 위해 대중화된 표현이다.


처음엔 내 앞에서 욕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니 욕도 한다. 보호자이자 인솔자인 나와 자신들 관계에서 장벽을 치우고 있다는 증거다.


먼저 시하가 정보를 제공한다.


“선생님, 교실에서 욕하지 않으면 왕따예요. 그래서 남자애들은 모두 욕을 해요. 저도 어쩔 수 없이 욕을 하고 있어요.”


이제 태수도 스스럼 없이 얘기한다.


“저도 욕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가장 욕을 잘하는 아이가 됐어요.”


시하와 태수가 욕하는 동기와 목적은 다르다. 그렇지만 교실에서 욕을 구사하는 메카니즘은 같다. 시하는 헤게모니를 뺏기지 않기 위해 욕을 하고, 태수는 자기방어를 위해 욕을 한다. 시하는 유희의 성격이 크고 태수는 절규에 가깝다. 어쨌든 누구나 센 척을 위해 욕을 하는 것이다.


전 세계 어디든 경쟁이 격화된 지역에서 욕도 진화한다. 특정 신체 부위를 언급하며 조롱하는 것은 기본이고, 해치겠다는 공격을 넘어 종국엔 죽이겠다는 협박이 되면 욕의 금메달감이 된다. 영화 <황산벌>에서 욕 배틀로 시비를 거는 신라군이 “눈깔의 먹물을 쪽 뽑아삘라”라고 했지만 어마무시한 보성, 벌교 욕 특공대에게 박살나서 귀를 막고 퇴각하는 모습이 현재 어린 친구들의 모습이다.(교실의 일반적이 모습은 아니다. 욕에 대한 아이들의 감수성이 매우 낮다는 말을 한 것)


욕을 미화할 생각이 전혀 없다. 특히 욕의 기본 구조는 여성의 몸에 대한 조롱에 있기 때문에 욕을 구사하는 것이 남성의 여성에 대한 폭력성을 지니고 있다. 절대로 용인할 수 없다. 그러나 마음의 상처를 입은 아이가 구사하는 욕을 부도덕의 증거라며 몰아붙이면 곤란하다. 더구나 욕의 개념이나 구조에 대한 아무런 지식이 없는 아이가 욕을 했다고 깜짝 놀라 비난의 사인을 보내면 어른으로서 오해가 큰 것이다.


아이가 욕을 하는 건 욕이 해서는 안 되는 ‘나쁜 것’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욕이 복어의 내장이나, 먹을 수 없는 버섯의 독성, 고슴도치의 바늘 피부와 같다. 즉 자기를 지키려는 의도지만 상대방은 나에게 왜 무기를 들고 있냐고, 평화를 해치는 나쁜 놈이라고 공격하는 꼴과 같다. 복어의 내장이나 버섯의 독, 고슴도치 바늘은 사냥의 무기가 아니다. 나를 잡아먹지 말라는 강력한 경고의 성격이다. 욕은 그만큼 불안한 상태에 있다는 증거다. 거의 그렇다고 보면 된다.


아침에 한 시간 반 차로 이동해야 한다니까 중얼중얼 떠들며 불만을 뱉는다. 중얼중얼이 과감하게 소리가 커지고 자기들끼리 재밌는 욕을 소개하거나, 심지어 자신이 창조한 욕이라며 자랑도 한다. 그렇게 분위기가 나쁘지 않게 크레이들마운틴 국립공원 안내센터에 도착했다. 태즈매니아가 자랑하는 장소고,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에 자랑하듯 올린 경험담과 사진이 넘치는 곳이다. 백미는 도브호수 주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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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정보를 알지 못한 채 안내센터 주차장에 차를 대고 무턱대고 걸었다. 셔틀버스 운전사가 사람이 걷는 길은 따로 있다고 알려주길래 중간에 도로 출발점으로 가서 워킹코스를 찾아 걷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그런 것도 모르고 가냐고 가볍게 핀잔한다. 3시간을 꼬박 걸었는데 단 한 명의 사람도 만나지 않았다. 알고 보니 우리가 걸은 길은 인기가 없는 코스다. 그렇지만 정말 마음에 드는 트레킹을 했다. 드넓은 초원을 걷다가 습기 가득한 숲을 지나서 천길 낭떠러지 계곡 위를 건너가고, 아기자기한 폭포도 만나면서 3시간 만에 종점에 도착하니 출발했던 장소로 돌아왔다.


그제서야 안내센터에 들어가 이것저것 물어보고, 블로그 검색을 통해 셔틀버스를 타고 도브호수까지 갈 수 있으며,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도브호수로 이동해서 다시 등산로를 걷는다는 걸 알았다. 우리도 셔틀버스 티켓을 끊었다. 아이 2, 어른 1명이면 33달러인데, 60달러를 내면 차량 한 대 기준 8명이 8주 동안 호주의 모든 국립공원에 입장할 수 있는 티켓을 준다. 자주 올 생각으로 60달러를 냈다. 셔틀버스로 7.5km를 올라 도브 호수에 도착했다. 여러 봉우리가 호수를 둘러싸고 빙 서있는데 가장 높고 유독 돋보이는 봉우리가 크레이들 산이다. 날씨가 워낙 좋아 봉우리가 가까이 보인다. 호수물은 과거 빙하가 녹은 것이라 순수하고 바닥이 왕모래라서 투명성 100퍼센트다. 누구나 격찬하는 이유가 있었다.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될 만하다 싶다. 국립공원 전체에 쓰레기는커녕 먼지 하나 없다. 야생 웜뱃이 느릿느릿 걸어다니기도 한다. 도마뱀은 너무 흔하고.


3시간 트레킹하며 그토록 입이 댓 발 나왔던 녀석들이 스스로 환호를 지른다. 사진 찍는 것조차 싫다고 골을 부리던 아이들이 빨리 사진 찍어달라고 난리 부린다. 아, 다행이다. 위대한 자연을 보고 마음이 동한다는 건 아이들이 건강하다는 신호니까. 다음에 또 오자고 조를 정도다. 도브호수는 셔틀버스로 이동하니까 걷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도브호수는 진짜 등산의 시발점이다. 가까운 시일에 다시 방문해서 입이 댓 발이 되도록 걸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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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아이들은 결국 좋아할 것을 확신한다. 호수에서 카누를 타는 커플이 있었다. 아이들도 카누를 타겠다고 성화다. 가이드가 자신의 카누를 타면서 함께 움직이더라. 가이드에게 물었더니, 12살 이상 탈 수 있다고 한다. 우리 아이들은 10살(만 나이)이라고 했더니,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구명조끼를 입으면 가능하다고 대답한다. 아이들이 알아듣고 좋아라 한다. 날이 갈수록 차가워지니 카누를 타려면 오래 미룰 수 없겠다. 도브호수에서 카누를 타는 아이들..... 나의 4학년을 떠올리면 다 기억난다. 우리 아이들도 하루하루 모두 평생을 갈 기억이다. 이런 행운을 다른 이와 나눌 수 있는 사람으로 커 주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