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번째날

호주의 상현달은 모양이 반대였다(2019.4.12)

by 박달나무

#집이말썽
#언제입주하나
#가자크레이들마운틴

집이 중요하다. 누울 수 있는 공간만 있다고 집이라 할 수 없다. 집에서 하는 활동도 매우 중요한데, 활동을 위해 적절한 크기와 구분, 인테리어 디자인과 가구 배치가 필요하다. 따뜻한 물도 나와야 하고 특히 부엌이 중요하다.
지금 우리는 호텔에 머물고 있다. 얻으려는 집주인이 OK 사인을 주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거절의 표현도 하지 않았다. 여권, 비자증명서, 계좌잔고증명서, 전화번호, 현 거주지 증명서를 제출하고 소정 양식에도 내용을 기입하고 사인까지 했는데, 집주인이 금요일까지 연락할 것이라고 했지만 아무 소식이 없다. 부동산 업자는 다음 주에도 기다려달라고 하지만 느낌이 쎄하다. 뭔가 잘못된 것이다. 백인이 아닌 외국 관광객이라 집을 빌려줄 수 없다면 그렇다고 말하면 되는데.....
호텔은 잠을 잘 수 있지만 실내활동이 불가능하다. 음식을 해먹을 수도 없다. 집이 곧 복지의 1순위라는 걸 절감한다. 또 다시 주말이기 때문에 급하게 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좀 멀리도 가보고, 전화로도 알아보고 했는데, 아 글쎄 렌트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달린다는 것이다. 집 구하기 쉽지 않단다. 만만한 놈을 점 찍었는데, 월요일 오전 11시에 현장에서 업자와 미팅하고 계약서를 쓰기로 했다. 오늘 혼자 찾아가 보니까 큰 길가에 있다는 것 빼고는 마음에 든다. 창문에 코를 붙이고 들여다보니 도배와 페인트 작업을 최근에 했나보더라. 뒷정리가 좀 덜 된 듯 보인다.


세 군데 월요일에 알아보기로 약속해놓고 호텔로 들어왔다. 이 호텔은 델로라인에서 유서 깊은 호텔인가 보다.(엠파이어 호텔) 특히 호텔 레스토랑은 델로라인을 언급할 때 늘 뒤따르는 명소로 소개된다. 식탁수도 많지 않다. 여기서 저녁을 두 번 먹었고, 유기농 히말라야 커피라고 해서 한 잔 시켜 마신 적이 있다. 아이들 성화에 스테이크를 먹었는데, 맛이 좋다. 아이들이 먹어보더니 졸라서 다음 날 저녁에도 스테이크를 먹었다. 1인분에 300g이라 아이 혼자서 못 먹는다. 1인분을 둘이 나눠 먹으면 딱 좋은 양이다. 나는 아이들이 절대 입에 안 대는 야채를 먹는다.
마켓에서 스테이크용 고급 소고기 300g은 1만원이면 사겠더라. 적당히 익혀서 스테이크 소스 뿌리면 아이들은 잘 먹을 것이다. 그러니 부엌이 필요하다. 계속 바깥 음식 사먹으면 주머니 빵꾸날 각이다.
저녁에 또 스테이크를 먹겠다고 했지만, 이미 호텔 레스토랑은 금요일 저녁의 열기로 빈 자리가 없었다. 옳다구나 싶어서 밖으로 나가 조금 걸었다. 주변에 Subway가 있다. 아이들도 동의해서 저녁은 간단하게 서브웨이로 해결했다. 빵에 치킨 한 조각을 넣고 잘게 토막 낸 치즈를 선택하고는 더 이상 아무 것도 넣지 못하게 한다. 토마토와 상추 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아이들의 편식은 문제가 되지만 짧은 시간에 해결하려다보면 역효과와 부작용이 생긴다. 편식을 고치기 위해서라도 안정된 집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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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집 아이들이 편식하고 육고기에 집착하는 것은 집이 제 역할을 못하기 때문일 수 있다. 가난할수록 바깥 음식을 사먹고 끼니를 해결한다. 그래봤자 편의점 음식이 대부분이다. 도노반파크의 Jo 선생은 우리 아이들 편식 습관을 보고는 정크푸드를 먹는 아이들 경향이 정신 건강을 해치는 결과를 낳는 것이라고 말했다. 예전부터 일리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나에게 오는 아이들은 반드시 편식이 심했고, 심지어 (믿어지지 않겠지만) 초등2학년이 되기까지 한번도 쌀밥을 먹은 적이 없던 아이도 있었다. 편식이 개선되면 아이도 크게 좋아졌다. 적어도 편식이 고쳐졌는데 언행이 달라지지 않은 경우는 없었다. 또한 많은 경우 내게 온 아이들은 짠 음식을 선호했다. 심지어 (믿어지지 않겠지만) 어떤 녀석은 몰래 라면 스프를 한 입에 털어넣은 적도 종종 있었다. 소금을 그냥 먹거나 간장을 물처럼 마시기도 한다. (간장의 경우 소주잔 한 잔 정도를 마셔버린다) 깜짝 놀라며 이유를 물으면 맛있어서 먹었다고 말한다. 통계를 낸 것은 아니지만 집착이 심한 경우 짜게 먹으려고 하는 경향성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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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빨래방을 이용해보니, 빨래방 게시판에 각종 소식지들이 어지럽게 붙어있었다. 빨래방 게시판을 이용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광고를 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러다가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우리 아이들이 장기적으로 이 마을에 살아도 학교를 다니지 않기 때문에 현지 친구를 사귈 기회를 갖기 어렵다. 호주까지 왔는데 영어 실력이 늘어서 돌아오기를 기대하는 부모도 있을 것이기에 랭귀지 파트너 역할의 친구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또래 아이를 만나기 거의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무료 수학수업(과외)을 우리 아이들과 사는 집으로 불러서 진행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 것이다.
예전에 강남 한티역 근처 학원의 부탁을 받고 만든 포스터에 글자만 바꿔서 만들어 봤다. 한겨레신문 문화센터에서도 수업을 진행했고, 여기저기 특강으로 많이 했던 컴퓨터를 이용한 기하도형수업이다. 유클리트 기하학을 컴퓨터에서 작도하도록 하고 증명하는 수업이다.
이 또한 집이 해결돼야 시도할 수 있겠다.
내일은 평안한 마음으로 태즈매니아의 핵존심, 가봐야할 곳 1순위 크레이들 마운틴 트레킹을 다녀와야겠다. 여기는 확실히 가을로 접어들었다. 노랗게 단풍든 나무가 있길래 차 세우고 사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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