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타는 동물이 아니라 소통을 위한 매개체라는 인식(2019.4.11)
드디어 이길라(EAGALA) 프로그램 시작이다. 기대도 되고 긴장도 된다. 과연 어떤 전문가 선생님이 나타날지 궁금하기도... 여자 선생님이란 건만 알고 있다.
아이들은 목장에 간다는 걸 알고 있기에 아침부터 기대감을 나타낸다. 이갈라를 알 리가 없고, 아이들은 목장의 강아지 두 마리와 놀 생각으로 기분이 좋은 것이다.
최대한 서둘러 9시 전에 도착했다. 이갈라 전문가 Maddie 선생님은 벌써 도착해서 Jo와 얘기를 많이 나눈 눈치다. 만나서 인사를 나눠보니 Maddie 선생님이 더 긴장하고 있더라.
암튼 이갈라 프로그램은 막이 올랐다. 내가 우리는 일 년 동안 매주 이갈라에 참여할 것이니 처음부터 서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파파고 도움을 받아서 말했다. Maddie가 가볍게 웃으며 동의했다.
Jo는 삼성 태블릿을 준비해서 운동장에서 타이핑을 하고 한국어로 번역해서 내게 보여줬다. 먼저 아이들이 다섯 마리 말들에게 모두 인사를 하고 말들의 오늘 상태가 어떤지 살펴보라는 미션을 주었다. 그리고 말들이 어떤 상태냐고 묻고 아이들의 대답을 기다렸다. 먼저 시하가 말했다. “말들이 졸린가봐요.”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다시 물었더니 시하도 다시 대답했다. “왜냐면 눈을 껌뻑거려요.” 이번에는 태수에게 물었다. 태수가 평소에 내 물음은 거의 생까는 일이 많아서 대답을 할 것인가 궁금하고 긴장이 됐다.
하지만 서슴치 않고 멋지게 대답했다. 신기했다. 그럴 아이가 아닌데....^^ “말들이 힘든가봐요.” 왜냐고 물었다. “왜냐면 움직이지 않고 머리가 무거운지 자꾸 땅으로 내리고 있어요. 풀을 뜯어 먹지 않는데 말예요.” 아니 저렇게 길게 대답을 잘 하다니..... 저런 아이가 아닌데^^
Maddie는 고맙다고 말하고, 다음 미션으로 말을 한 마리 반드시 사용하고 운동장에 있는 어떤 물건을 동원해도 좋으니 정사각형을 만들어보라고 한다. 한참을 우왕좌왕 하더니 점프용 통나무를 ㄷ자로 놓고 나머지 한 변에 말을 세웠다. 말이 서 있는 곳에 통나무를 ㄷ자로 배치했다는 게 맞는 설명이다. 하지만 태블릿 번역이 잘못된 것이었다. 정사각형을 만들고 그 안에 말 한 마리가 들어가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오해한 것이다.
내가 다시 옮길 필요 없이 시하가 곧바로 영어를 알아들었다. 역시 움직이지 않는 말 주변으로 통나무를 ㅁ자 배치를 했다. 그러니 미션 성공한 셈. 다시 말 한 마리를 더 정사각형 안에 넣어보라고 한다. 말이 말을 들을 리 없다. 태수는 과감하게 말 등에 올라가려고 했다. 한 달 동안 승마 훈련을 한 덕분(탓?)이다. 말 등에 타면 자신이 말을 조정해서 움직이도록 할 수 있다고 생각했나 보더라. 하지만 키 작은 어린이가 안장 없는 말 등에 올라타는 건 불가능하다.
Maddie는 말 얼굴 덮개와 견인줄을 주면서 이걸로 말을 끌어서 네모 안에 넣으라고 말했다. 이번에도 시하는 곧바로 알아들었다. 문제는 태수가 영어를 알아듣지 못한다는 걸 굳이 확인하고 넘어간다는 것이다. “넌 영알못이잖아” 이런 식이다. 영알못은 ‘영어를 알아 듣지 못한다’를 줄여서 말한 것. 눈치 100단인 태수가 그 말이 자신을 업신여기는 말이라는 걸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수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넘어간다. 그런 아이가 아닌데^^
아이들은 말머리에 덮개끈을 씌우지 못했다. 내가 잔소리를 하려니까 Jo가 막아섰다. 아무 말 하지 말고 아이들이 하는 것을 지켜보기만 하자고 한다. 아이들 스스로 구상하고 실천하도록 말이다. 이갈라의 핵심은 창의성과 독창성이 있다고 하면서 말이다.
결국 아이들이 얼굴덮개를 씌우지 못한 상태로 10시 20분이 됐다. 다음 이갈라 참가자가 있어서 서둘러 수업을 마쳤다. 그런데 아이들이 먼저 말한다. “왜 벌써 끝나요. 30분 정도 지난 것 같은데....” “벌써 1시간하고도 20분이 지났어, 얘들아.” 아이들이 깜짝 놀란다.
수업을 마치면서 감상을 물었다. 시하는 학교수업보다 훨씬 재밌었다고 말했다. 관용적 표현같았다. 하지만 표정이 밝고 억지로 표현한 것이 아니라는 걸 느낌으로 알 수 있다. 태수는 좀 놀라운 얘기를 했다. “아빠와 하는 공부는 지옥이거든요. 이런 수업은 재밌어요.” 놀랍다는 건 내용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빠와 함께한 경험을 부정적으로 표현한 적이 없었던 태수가 지옥이란 표현을 쓰면서 말한 것은 마음이 열렸다는 걸 증명하기 때문이다. 첫날부터 이갈라 프로그램에 적응하고 있다. 나로선 의외였다. 몇 주 지나야 적응할 것이란 예상은 빗나갔다. 기분 좋게도.
Jo가 어제 몰크릭의 야생동물공원에 다녀왔냐고 물었다. 그리고는 멀지 않은 곳에 태즈매니아 동물원이 있다고 말해준다. 그래서 35km 떨어진 Tasmania Zoo에 갔다. 아이들은 어제 가본 와일드라이프 파크가 더 좋다고 하며, 여기는 재미없다고 말한다. 태수가 어제 생각만 하면서 울타리 안에 있는 캥거루를 쫓아 뛰었다.(여기는 캥거루만 있는 울타리가 있다. 캥거루 울타리는 누구나 출입이 자유롭다) 어제는 자연스럽고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현장학습 중학생들을 인솔한 선생님으로 보이는 분이 큰 소리로 태수가 뛰지 않도록 지적했다.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한 태수가 다시 캥거루를 쫓아 뛰려고 하니까 다시 한번 큰소리 제지가 있었다. 그걸 시하가 해석해서 한국말로 지적질을 한 것이다.
태수는 엄청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시하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제지한 선생님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했다. 악어가 갑자기 나타나 자신에게 잔소리한 사람을 잡아먹었으면 좋겠다는 둥, 저런 인간은 왜 태어났냐는 둥, 불쾌감을 여과 없이 내뱉는다. 원래 태수는 자신을 놀린 사람에게 공격적을 말하거나 행동하는데, 시하를 공격하지 않고 화살을 현지인에게 돌린 것이다. 그만큼 태수가 시하와 관계를 깨뜨리지 않으려 한다. 상당히 의미 있는 변화다.
숙소로 일찍 돌아왔다. 빨래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구글링을 해보니 가까운 곳에 빨래방이 있다. 빨래가 끝나길 기다리는 중년 아주머니가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설명에 따라 마켓에 가서 세제와 빨래 린스를 사고, 은행에 들러(은행원이 한 명이다) 1달러 동전 20개를 바꿨다. 세탁기는 4달러, 건조기는 1달러를 넣으면 3분 돌아간다. 5달러를 넣으라는 조언을 들었지만 4달러만 넣었다. 결국 건조 상태를 보고 1달러 더 넣었다. 빨래가 좀 많아도 10달러면 해결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세탁기를 사느니 매번 빨래방에 와서 빨아서 가는 게 합리적이다. 40분이면 세탁과 건조가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