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라스데레이

스페인까미노데산티아고 서른두번째날

by 박달나무

#스페인까미노데산티아고


#서른두번째날(2019.11.21)


1.


아이들이나 어른이나 한달이 넘으니 피로가 누적된 느낌이 강하다. (내가 더 그렇다) 하지만 반대로 배낭을 메고 걷는 행위에 대해서 적응이 되면서 힘들지 않게 진행한다. 이게 무슨 상황이냐.... 힘들지 않지만 피곤하다? 분명 배낭이 갈수록 무겁지 않지만, 또한 갈수록 목과 어깨의 통증이 심해진다.


당장의 과업이 힘든지 여부도 살펴야하지만 진행과정에서 쌓이는 피로에 대해 적절히 진단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피로사회’라고 하지 않던가. 반성 없이 달려온 결과 사회 전체가 피로한 결과를 맞았다. 피로의 방치는 파탄 뿐이다.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


결국 팔라스데레이 큰 타운에 왔다. 팔라스데레이 오기 수km 전부터 묵을 알베르게를 찾았지만 모두 비시즌 영업중단상태였다. 3일을 20~26km, 총 70km를 걸었다. 우리 아이들이 대견하다. 힘들다고 칭얼대는 법이 없다. 하지만 지친 기색이 이제서야 보인다. 시하가 처음으로 그만 걷고 싶다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도 잘 걷는다. 발이 말썽인 적도 없다. 태호는 아직 확실한 아빠 효과로 인해 어려움 없이 잘 걷는다.


점점 목표점 산티아고가 다가오고, 지표석에 표시되는 남은 거리가 100 이하에서 90, 80, 70으로 줄어드니 걷는 게 힘들지 않다고 대답한다. 목표라는 게 좌절도 주지만 힘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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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제 퀸틴 블레이크를 꺼냈으니, 오늘은 퀸틴 브레이크의 영원한 파트너 로알드 달이 떠오른다. 로알드 달(Roald Dahl)은 좋아하는 동화작가다. 살아있다면 104살이다.(1990년에 사망) <찰리와 초콜렛 공장> <마틸다> 등 수많은 작품이 한국에도 번역돼 있지만 <조지, 마법의 약을 만들다>가 내게 있어 베스트 of 베스트 작품이다.


그런데 로알드 달의 할아버지는 1820년 생이고, 아버지는 1863년 생이다. 내 기억으로 프로이트가 1853년 생, 슈타이너가 1861년 생이다. 내게 많은 영향과 영감을 준 작가가 100년 전에 태어났고, 그의 아버지는 슈타이너와 동시대 사람이라는 것은 시사점이 있다.


로알드 달 작품에 나는 여전히 열광하고 있고, 여전히 프로이트는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슈타이너가 창시한 발도로프 학교도 전 세계에서 뿌리를 튼튼히 내리고 있다. 서양의 100년 전, 150년 전이 복사열 마냥 매개체도 없이 21세기 한국사회에 전달되고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다른 측면도 있다. 로알드 달 아버지는 고향인 노르웨이를 떠나 웨일즈에서 사업 성공으로 큰 부자가 됐지만 1920년 폐렴으로 사망했다. 별다른 치료도 해보지 못하고 죽었다. 아버지 죽기 한 달 전 로알드 달의 누나는 일곱 살에 맹장염으로 죽었다. 페니실린이 발명된 2차세계대전 이후라면 죽지 않을 병이었다. 로알드 달의 아버지 사업이 번창한 것은 증기선과 관련 있다. 당시에 내연기관을 쓰는 선박은 없었다. 모두 석탄을 태워서 물을 끓이는 증기기관만 사용하는 선박이었다.


어떤 이의 삶은 그 이가 살았던 시대의 환경과 한 몸이다. 디젤엔진을 쓰는 선박이 주종이라면 로알드 달의 아버지가 큰 부자가 아닐 수 있었다. 항생제가 있었다면 로알드 달이 네 살 때 아버지를 여의는 일이 없었을 것이고, 로알드 달이 천재적 스토리텔러로 성장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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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알드 달이 내게 미치는 영향은 현재형이지만 로알드 달을 구성하는 역사적 환경과 나를 구성하는 역사적 환경은 매우 다르다. 이런 간극은 큰 혼란을 준다.


과거와 현재가 혼재되면서 야기하는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나에게 전달되는 정보를 잘 구분하는 것이 인문학 공부의 핵심이다. 이는 마치 만선으로 돌아온 어부가 가장 먼저 그물코를 정리하는 것과 똑같다. 다음 출어를 보장하는 것은 그물코의 정리에 달렸기 때문이다.


슈타이너는 당대의 천재였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시대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슈타이너의 광범위한 연구는 대단한 업적이다. 하지만 슈타이너의 말씀과 주장을 100년이 지난 현재 그대로 가져온다는 건 지혜롭지 않은 것이다. 18세기에 태어나 19세기 중반 세상을 뜬 헤겔의 사상을 이해하는 건 중요한 공부이겠지만, 헤겔의 주장을 21세기에 그대로 드러내는 건 어리석다.


즉석에서 나만의 창작 이모티콘이나 아바타 이미지를 제작해서 유통하고, 지구 어디에서나 얼굴보면서 통화할 수 있는 21세기 문명환경을 고려하고, 그에 따라 달라진 언어소통을 하는 지금바로여기의 사람들을 관찰하지 못하고 있다. 어린이청소년에 대한 것은 더욱 더 비현실적이다. 비고츠키의 표현을 빌자면 우리는 '역사적인 아이'를 내다버리고 '영원한 아이'만 마주하고 있다. '영원한 아이'는 만들어진 개념일 뿐이다.


서구의 개념에 우리의 현실을 구기고 잘라내서 억지로 꿰맞추는 게 한국의 지식인이고 학자다. 우리 사회의 불통은 여기서 비롯된다. 천 개의 고원에 천 번 침을 뱉고 싶은 심정이다. (들뢰즈는 아무 문제 없다. 들뢰즈를 가지고 들어온 일부 한국의 철학자 이름표를 단 사람들에게 유감이다)

아동문학이 성인문학의 아류이며, 성인문학에서 성공하지 못한 작가가 아동문학작가의 길을 간다는 편견이 여전하다. 어린이청소년의 문제는 바로 내일 당면 문제인데도 나이 어린 사람에 대한 고민 조차 우선순위에서 뒤로 미루는 것이 당연한 분위기는 어이없는 일이다. 더 중요한 문제인데도 어린이청소년에 대한 서구의 전달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서양이야말로 어린 아이를 완전한 사람의 존재로 본 역사가 짧다.


3.


갈리시아 지방에는 오레오(HÓRREO) 이름의 독특한 구조물이 있다. 거의 대부분 집에 하나씩 있다. 신기한 것은 크기가 거의 같다. 마치 정해진 규격을 약속한 것 처럼. 그러나 하단의 모양이나 지붕의 장식은 조금씩 다르다.


옥수수, 감자, 콩 등 양식을 보관하는 창고인데, 바람이 잘 통하고 쥐의 접근을 막으려고 고안한 것이라 하더라. 집집마다 있으니 서로 다른 특징을 비교하면서 걷는 게 재밌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양식 보관을 어디다 했는지 잘 모르겠다. 반성되는 지점이다. (그냥 ‘광’이라 불리는 창고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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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유준석, 박현주, 외 24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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