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번째날

Treetops Adventure (2019.4.15)

by 박달나무

1.


날짜가 바뀌고 새로운 주가 시작됐으며 한국을 떠나온 지 보름 가까이 된 시점이지만 오늘이 4월15일인 것이 강렬하다. 5년이 되었다. 4.16이라 부르지만 내게는 4.15로 기억될 수밖에 없는 날. 2014년 4월15일 나는 어린 목숨 7명을 데리고 제주도항에 도착했다.

화요일이었다. 전날 오하마나호를 타고 저녁 7시에 출발하여 밤새도록 바다를 헤치고 예정 시간인 아침 7시에 닿았다. 오하마나호에는 수학여행 학생은 많지 않았다. 월요일 인천항에서 제주로 떠나는 수학여행 일정은 곤란한 일이 많기 때문에 화요일 출발을 선호한다. 일반인 관광객들이 많았고, 수백 명은 돼 보이는 자전거 단체 여행객이 있었다.

나도 화요일 출항하는 세월호를 예약했다가 쉽게 갈 수 있는 제주가 아니기에 하루 더 여유롭게 일정을 짜느라 (숙소는 모두 텐트) 월요일 오하마나호로 옮긴 것이다. 금요일 떠나서 토요일 아침 인천항으로 돌아오는 복편은 세월호를 예약했다.

우리의 항해는 매우 순조로웠다. 바다는 호수같이 고요했다. 출항 시 안개는 전혀 없었다. 선실에 앉거나 누웠을 때 흔들림을 느낄 수 없었다. 거대한 여객선의 엔진 진동만 약간 느껴질 뿐이었다. 다음 날도 똑같은 날씨였다. 제주 여행 일정을 위해 수시로 날씨를 확인했었다. 세월호가 출항 당시 안개로 출발을 늦추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2시간 늦게 출발했어도 아침 8시 반에 병풍도를 지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사고 소식을 듣는 순간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고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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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쩔 수 없이 수없이 되뇌게 된다. 만약 처음 계획대로 세월호에 탑승했었다면 어찌 됐겠는가. 갑판에 나와서 구조를 기다리는 학생들에게도 다시 선실로 들어가 대기하라고 했단다. 과연 그런 안내를 거부했을까. 혼자가 아니라 어린 목숨 7명을 데리고 있는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구명조끼를 입히고 바다로 집어던졌을까. 어려웠을 것이다. 미친 듯이 날뛰며 아이를 살리겠다고 했겠지만 내 가족이 유족이 됐을 것이 분명하다.

세월호 학살에 대해 할 말이 참으로 많지만 오늘 만큼은 내가 달리는 트랙이 운명의 힘에 의해 각도가 변한 것만 언급한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고 나니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사라졌다. 그러나 어린 아이를 책임지고 있는 상황이라면 다른 얘기다.


3.


2014년 4월은 초등단계 대안교육공간을 시작한 지 반 년 지난 상태였다. 초등 아이들을 만나는 건 중등 아이들을 만나는 것과 질적으로 다른 성격이다. 더구나 함께 먹고 자는 과정이라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세월호 학살을 시공적으로 미세하게 피하면서 아이들 교육에 더욱 미쳐버렸다. 아무리 잘한다고 칭찬을 들어도, 반대로 최악으로 굴러떨어져도 모두 이승에서 벌어지는 살아있는 상태가 아니겠는가. 두려움이 사라졌다. 정확히 표현하면 어떤 상황에 맞닥뜨려도 걱정하지 않게 되었다. 여기 태즈매니아에 와서 처음 겪는 일이 많지만 걱정하지 않고 하나하나 돌파하는 것도 세월호 학살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교육문제로 고생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현재의 나는 대단한 행운아가 분명하다. 내게 온 행운을 스스로 불행으로 만드는 것도 죄짓는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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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엠파이어호텔에 오늘 아침 떠나야 한다. 처음 호텔을 잡을 때 오늘쯤이면 새집에 입주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입주와 관련 어느 하나 결정된 것이 없다. 오전 11시에 Westbury의 이층집을 보기로 약속했다. 이제는 가능한 집이라면 일단 계약해야 할 판이다. 두 명 이하라면 구할 집이 있지만 한 가족이 생활할 만한 집은 렌트로 내놓은 집이 거의 없다고 한다.

마지막 호텔 조식을 최대한 차려 먹으려고 했다. 나만 포식하고 아이들은 딸기잼 많이 바른 빵 한 조각이면 식사 끝이다. 짐을 부지런히 싸고 아이들 채근해서 Westbury로 향했다. 델로라인에서 천천히 가면 20분이 걸리는 거리다. 큰 도시 론세스턴도 30분 안에 갈 수 있고, 일주일에 2번 방문하는 도노반파크도 더 가까워지기 때문에 나쁜 위치는 아니다.

하지만 도로변에 있는 집이라 24시간 자동차 소음을 들어야 하는 것이 가장 마음에 걸린다. 직접 집을 확인하니 전체 바닥 카페트를 새로 깔았고, 벽 페인트 작업을 새로 했다. 페인트 냄새가 진동한다. 집 구조는 아주 좋다. 월세도 지난주 본 집보다 저렴하다. 아래층에 2개, 윗층에 2개 모두 4개의 방이 적당한 크기라 마음에 든다. 다만 가구와 부엌살림이 전혀 없기 때문에 침대며 테이블과 의자며..... 머리가 아프다. 아예 태즈매니아에서 여행업을 해야할까? 호주 대안교육 프로그램을 가동해야 하나. 내 여생은 호주에서? 순간 별 생각이 다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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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다시 지난주 봤던 집은 어떻게 됐는지 부동산에 갔다. 담당 직원이 긴 통화를 하는데 집주인과 얘기하는 것 같다. 지난 금요일 확정(되든 안 되든) 메일을 주겠다고 했지만, 이미 지나갔다. 부동산 직원은 주인이 오늘 오후 1시까지는 결정을 알려주겠다고 하니, 바로 이메일로 알려주겠다고 한다. 내 전화번호를 주니까 자신은 국제전화번호로는 통화하지 않겠고 이메일만 주겠다고 한다. 한국의 부동산 직원과 크게 다른 태도다. 다만 호주 부동산 운영자나 직원은 대부분 나이 든 여성이라는 게 한국과 비슷하다. 지금이 11시40분. 그래 기다려보지 뭐.....

아이들은 여기 음식의 향과 맛이 낯설다는 이유로 대부분 거부하고 있다. 그나마 자신들 입에 맞는 집을 찾았는데, 하나는 우리가 머물던 호텔의 소고기 스테이크이고, 다른 하나가 서브웨이다. 이제 자기들 스스로 주문하고 결제하고 척척이다. 다만 빵을 고르고, 치킨 한 조각과 가늘게 채 썬 치즈 한 움큼을 넣은 다음엔 아무것도 넣지 않는다. 서브웨이의 화려한 속 채우기 채소들을 모두 외면한다. 그리고 콜라와 초코우유를 각자 하나를 골라 들고는 세상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며 먹는다.

“그래, 만족도가 중요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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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80Km 떨어진 론세스턴 근처의 관광 명소를 찾아갔다. 이메일로 입주 관련 OK를 받는다해도 오늘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오후 활동에 들어간 것. ‘Treetops 어드벤처’라는 업체인데, 깊은 숲속에 있고 체험 후 만족도가 높은 액티비티를 진행하는 곳이다. 염두에 둔 짚라인은 예약이 다 차서 다음 주 월요일로 예약하고, 트리 어드벤처를 등록하고 아이들과 같이 해봤다. 현지 초등학생들이 많았다. 아름드리 나무와 나무 사이를 건너갈 수 있는 여러 장치들을 했고, 안전장치를 착용하고 구간을 통과하는 활동이다.

향긋한 나무 냄새가 진하고, 아슬아슬한 마음이 들 만큼 높은 나무 위에서 진행하는 것이라 재밌다. 저절로 운동도 되고.... 둘 다 짜증 섞인 표정으로 우리를 왜 데리고 왔냐고 불만을 터트리던 녀석들이 한 바퀴 돌더니 두 번째는 신났다. 내가 알기로 한국에는 없는 시설이다. 처음과 끝의 극과 극 사진이 아이들 상태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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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이메일은 오지 않았다.

숙소는 엠파이어 호텔 근처의 새로운 에어비앤비 집을 2박으로 예약해놓았다. 시설이 완벽하다. 아이들이 이 집에서 평생 살자고 한다. 내가 알기로 아이들 집이 한국에서 평균 훨씬 이상이다. 구조가 신기하고, 꽃으로 둘러싸인 단층집, 새 지저귀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환경이 아이들도 좋은가 보다.

“왜 안 좋겠니. 당연히 좋겠지. 오늘의 기억을 잊지 말거라.”

나는 집 안에서 신발을 신는 게 영 불편하다. 맨발로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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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깜깜한 시간에 델로라인으로 돌아와서 마트에서 간단한 쇼핑을 했다. 스테이크 고기 중에서 저렴한 놈으로 430g을 샀다. 숙소에 와서 냄비밥을 하고 스테이크를 구웠다. (여기는 전부 전기렌지를 쓴다) 고기를 정확히 반으로 나누고, 맨밥을 줬는데.....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지금까지 먹은 음식 중에서 최고로 맛있는, 선생님 사랑해요, 선생님은 최고의 셰프예요 등이 쏟아진다. 웃기기도 하고 약간 불쌍하기도 하고 하지만 잘 먹으니 진정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