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위기(2019.4.16)
1.
예상했던 결과다. 말은 안 하는데, 관광비자로 들어온 사람에게 집을 주지 않으려는 의도가 보인다. 또한 이곳이 시골스럽지만 한국의 분당 정자동 같은 성격이 있다. 땅값이 비싸고, 경제적 여유가 있는 노인층이 모여 살며, 백인 외 인종을 거의 본 적이 없다. 태즈매니아에서 델로라인을 거론하면 모두 "아름답고 멋진 곳"일고 하던데, 이유가 있었다.
델로라인을 고집하지 말고 다른 지역으로 옮길 필요가 있다. 하지만 도노반파크에 등록을 했기 때문에 아주 멀리 갈 수는 없다. 에어비앤비 집주인은 차라리 대도시가 임대 공급도 많고 임대료도 저렴할 거라고 조언한다. 론세스턴이나 데본포트를 말하는 것이다. 난 시골로 들어가면 더 저렴한 줄 알았는데, 그 반대였다.
2.
하루종일 집 구하느라 돌아다녔다. 에어비앤비 숙소가 안정적이라 아이들은 흔쾌히 집에 있겠다고 했고, 실제로 만족스럽게 집에 있었다. 아이패드로 실컷 유툽 시청이나 게임을 즐겼을 것이다. 아침은 진라면으로, 점심은 쌀밥에 베이컨구이로, 저녁은 쌀밥에 치킨까스로 차려주니 어제에 이어 입이 귀에 걸린다. 무조건 다 맛있다고 호들갑이다.
"역시 숙소가 달라지니 제대로 사람답게 먹는구만"
애늙은이 소리 들은 만한 말을 한다. 갑자기 헤겔이 했다는 말이 떠오른다. "아이들의 교실은 집처럼 편안해야 한다." 페스탈로치도 아니고 헤겔이 왜 이런 말을 했을까(참고로 페스탈로치가 헤겔보다 24살 형이다)
이제까지 거론된 집들은 모두 얻을 수 없게 됐다. 핑계를 대지만 내게 임대 주고 싶은 않은 모양이다. 이런저런 수소문 끝에 결국 내일 연락 받기로 한 집을 하나 남겨놓은 상태다. 그것 마저 얻지 못하면 매우 곤란해진다. 호텔이나 에어비앤비로 생활할 수 없다.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고, 특히 호텔은 잠자기 용도 말고는 활용도가 전혀 없다. 집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 에어비앤비는 하루 9~10만원은 줘야 하니까 비용도 크지만, 이 지역의 에어비앤비는 거의 빈 날이 없다.
3.
어제 나무타기 모험놀이를 한 후유증이 나타난다. 와이어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용을 쓴 탓이다. 안 쓰던 근육을 썼기에 팔과 어깨가 뻐근하면서 몸살기처럼 근육통이 있다. 내일은 다시 오래 걷는 활동을 해야겠다.
5월에 가려고 했던 피지 여행을 앞당겨 다녀올까 생각 중이다. 렌트하우스 중에 5월 초에 입주 가능한 곳이 있는데, 도중 기간에 차라리 피지 리조트에 들어가는게 저렴하다. 어차피 비자 기간 문제로 다녀오려던 참이라 앞당겨 다녀오는 것도 한 방법이겠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내일 결과를 봐야 결정할 수 있다.
아이들은 도브 호수에 다시 가려고 한다고 하니 순순히 받아들인다. 욕조에 물 받아서 목욕한 것은 호주에 와서 오늘이 처음이다. 그동안 욕조가 있는 집은 없었다.
4.
태호의 눈빛이 편안해졌다. 이제는 의심하지 않는 듯 하다. 가디언인 내가 자기 편이라고 확신을 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냥 받아주고 안아줬다. 그리고 일등공신은 동갑내기 파트너 시하다. 진짜 선생은 시하가 역할 수행하고 있다. 태호가 시하 말을 잘 듣는다.(지시에 따른다는 말이 아니라 귀 기울여 열심히 듣는다) 시하도 태호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 태호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없던 상황이다.
시하도 마찬가지다. 말로는 자신이 외동인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하지만 형제가 없어서 혼자 놀아야 하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이곳에서는 혼자인 적이 전혀 없으니 즐거워 한다. 시하는 상황을 주도적으로 끌고 가며 이야기 하길 좋아하는 성격인데, 늘 경청하는 파트너가 있으니 그 또한 행복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