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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규 Jul 13. 2022

도구에 매개된 행위와 마음

박동섭이 필요한 이유


#존재론적전회


#새로운세상을여는새로운시각


#나를움직이는에너지원천


#도구에매개된마음


#박동섭이필요해


1.


#음악치료의한장면


윌리엄스증후군의 37개월 아이에게 언어감각을 키워주기 위해 치료사는 피아노를 치며 <아.이.우.에.오> 노래를 부른다. 일단 모음 위주의 발성을 들려줘서 엄마/아빠 발음을 아이가 소리낼 수 있기를 기대한 치료활동이다.


과연 이런 음악치료는 효과가 있는 것일까? 영상 속 아이는 치료사에게 어쩌다 반응을 보이지만 대부분 치료사의 단독 공연으로 보일 뿐이다.


2.


#인간의발달은무엇이만드는가


최근에 <유튜브 만인보>를 시작하려고 한 청년 제자는 윌리엄스증후군이고, 교사 지원했던 대안학교도 국내 유일의 윌리엄스증후군 아이와 청년을 위한 학교다.


윌리엄스증후군은 자폐성 장애와 반대의 현상을 보이는 유전자 특이성이며 7번 염색체의 독특한 모양이 원인으로 알려졌다.


윌리엄스증후군을 보이는 사람은 대부분 지적장애를 보이지만 늦어도 48개월 이후에 평균 수준의 언어능력을 보인다.


37개월 아기에게 특별한 치료를 해야지만 언어능력을 획득하는 건 아니다. 36개월이 지나도 <엄마> 발음을 못하는 경우, 양육자가 매우 초초할 수 있다는 건 충분히 이해한다. 걱정만 하고 있을 수 없으니 적절한 치료를 시도하는 것은 당연하다.


3.


#외부자극이인지발달에기여할까


내가 지적하는 “문제”는 치료사의 피아노 연주와 노래 가사에 윌리엄스증후군 아이가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상식은 종종 빗나가는데, 음악치료  장면이 대표적이다. 피아노 소리든 교사의 노랫소리든 음파가 아이의 귀를 통해 뇌에 전달되면, 바로 반응하지 않아도 계속된 소리 자극에 노출되면서 아이가 입력된 소리를 흉내내며 자신의 성대를 움직여 단순한 모음이나 <엄마>와 같은 의미를 가진 단어를 말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위에 예시한 수업 설계가 가능하다.


하지만 이는 오해라는 것이 학계의 새로운 의견이다. 단지 새롭다는 것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새로운 의견이 탄생한 지 백 년이 흘렀다) 지난 백 년 동안 극단적이고 원시적인 이념 대립과 약탈적 자본주의 실험장이었던 한국에서 장애인으로 분류된 사람은 사람의 범주에서 내쫓긴 존재였기 때문에, 이제라도 제대로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진지한 반성이 필요하다는 제안이다.


4.


#도구와인간_호모하빌리스


내가 말한 오해는 외부의 자극에 반응을 보이는 <자아>에 대한 오해를 말한다. 아이는 치료사가 발생해서 전달하는 소리 자극을 수용하고, 자극에 반응을 하겠다는 <자아의 의지>를 자신의 뇌에서 “보유”하고 있을 때 치료사의 수업은 효과를 보일 것이다.


아이에게 <자아의 의지>가 이미 있다면 특별한 수업이 필요하지 않다. 그렇다면 핵심은 <자아의 의지>를 어떻게 보유할 수 있는가에 있다. 외부의 자극이 <자아의 의지>를 만들 수는 없다-이것이 새로운 팩트다.


(얘기를 단순하게 줄이자면)


아기가 행위(입에서 무의미한 소리를 내거나 물체를 두드리거나 피아노건반을 치는 따위)를 하고, 치료사는 관찰과 적절한 사후 반응을 하는 것이 맞다. 즉 아이의 액션에 대한 치료사의 해석을 되돌려주어 아기가 자신의 행위에 따른 타자의 반응을 데이터로 축적하도록 하는 것이 적절한 순서라고 본다.


이때 반드시 매개가 필요하고,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은 매개를 통해 성립한다는 말이기 때문에, 아이의 <자아의 의지>가 매개와 한몸이라고 할 수 있다. (매개는 바깥에 있고 의지는 아이의 뇌 속에 있다-이것이 잘못된 오해)


매개는 물리적 심리적 <도구>라고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장남감이나 악기와 같은 주변의 물체부터 자신의 목소리, 타자의 반응, 구구단 공식, 스케치북, 연필, 물감, 스마트폰, 컴퓨터, 교통수단 등을 포함한다.


따라서 도구는 역사적 성격일 수밖에 없다. 돌판, 거북등껍질, 종이, 디지털저장장치의 역사는 인간의 의식에 그대로 반영된다. 도구는 물리적 실체이면서 시간을 배경으로 한다.  


도구(매체;미디어)가 있고, 인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도구와 인간을 구분할 수 없으며(따로 설명할 수 없으며) 도구->인간(의 행위 또는 마음) 또는 인간(의 행위 또는 마음)->도구처럼 순서를 지을 수 없다는 새로운 학술 결과를 믿고 있다.


5.


#존재론적전회


새로운 팩트는 새로운 인류학적 관점이다. 그리고 이런 인식의 확장은 <존재론적 전회;Ontology Turn)>로 압축 표현할 수 있다.


6.


#박동섭강연_합정동근처망원동


나는 이런 성장과 발전을 박동섭 선생에게 의지했다. 박동섭을 매체로 비고츠키와 비고츠키를 계승한 유럽과 미국의 학자들, 우치다 타츠루를 매체로 프랑스 철학의 요점들을 다시 박동섭을 매체로 전달받았다.


평소의 나의 꾸준한 고민이 배경으로 작용한 것도 빠질 수 없지만 박동섭 매체를 빼고 최근 십 여 년의 나의 성장은 불가능하다.


7.


#모리타마사오_계산하는생명


존재론적 전회는 (뇌피셜이라 검증 받지 못했지만) 현대 수학의 성과에 기대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고 믿는다.


대표적인 것이 “부분은 전체보다 작다”는 고전 수학의 명제가 틀렸다는 입증이다. 부분집합이 전체집합보다 작지 않다는 입증은 나에게 충격이었다. 바로 <무한>이 수학의 영역으로 들어온 결과다.


무한이라고 하면 수의 끝없는 증가나 우주의 크기가 떠오르지만, <무한한 삶>으로 주제를 가져오면 삶 자체에 대한 인식론의 전회가 가능하다.


향후 이런 사고가 <장애를 가진 사람>에 대한 전회로 이어지기를 기대하며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


수학적 개안도 젊은 수학자 모리타 마사오가 박동섭을 매개로 내게 들어 온 결과다.


8.


#박동섭강연


모리타는 2018~19년에 몇 차례 한국에서 수학연주회를 열었지만, 코로나19으로 직접 만남은 유예됐다.


모리타 마사오의 최신 저서 <계산하는 생명>이 한 달 전에 번역 출간됐고, 우리는 번역한 박동섭 독립연구자를 직접 만날 기회가 생겼다.


현대수학의 아이디어와 비고츠키로 대표되는 ”도구에 매개된 행위와 마음” 아이디어, 최근의 상황인지 개념까지 단독저서의 저자이자 일본에도 없는 우치타론 주창자이자 번역자인 박동섭을 7월23일(토) 저녁 서울에서 만날 수 있다. (박동섭은 부산 기장 거주라서 서울 강연은 드문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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