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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달나무 Sep 06. 2024

구밀복검

이제 20년 만에 군부가 다시 나설 때인가

“안녕하십니까. 시청자 여러분. 이성한의 극중TV입니다. 세타의 경고 2주 만에 저희 구독자가 5만을 돌파했습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저희 아직 배고픕니다. 곧 50만 구독자를 모시고 실시간 방송할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주변에 금요일 밤 <세타의 경고>를 널리 퍼트려주세요. 지난 주 이야기는 1993년 3월 2일 아침 밥상에 둘러앉은 김주영 육군참모총장, 김진산 육참차장, 서원수 기무사령관, 안정호 수방사령관, 윤형선 특전사령관이 숟가락을 들지 못하고 울분에 차서 부르르 떨며 쿠데타를 하네 마네 작전을 짜는 장면에서 마무리했잖아요. 그날 아침 다섯 명의 결론은 무엇이었나요?”

토끼탈이 대답한다.

“네. 당시 김진산 육참차장이 시류을 잘 읽고, 노태우 때부터 하나회와 거리를 두었기 때문에 김영삼의 전격 하나회 숙청에 대한 정보를 누구보다 먼저 알고 있었어요. 돌아가는 분위기를 알고 있었다는 말이에요. 때문에 육참차장은  I'll be back을 선언하자고 말한 거죠. 지금 경거망동하면 꼼짝 없이 죽는다, 진짜 총 맞고 죽는다. 그러니 후일을 도모하자고 설득해요. 나중에 배로 갚아줄 날이 있을 거라고 말하면서.”

이성한이 다시 물었다.

“김진산은 하나회가 아니었지요?”

“네. 하나회는 정통성을 내세웠어요. 전두환이 직접 포도주를 따라주었느냐가 중요한 거죠. 조폭보다 더 조폭스럽다고 보면 됩니다. 김진산은 노태우가 가장 아끼는 후배였어요. 6공에서 수방사령관을 했다는 게 증명입니다. 12.12 쿠데타 때도 노태우 밑에서 작전처장을 했으니까요. 하지만 하나회에 들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줄을 대서 하나회에 가입하려고 했지만 거절 당한 거예요. 그게 새옹지마가 됐지요. 김영삼 하나회 숙청에서 김진산이 살아남는 결과가 됐으니까요.”

다시 이성한이 말을 이었다.

“그럼 하나회 숙청은 잘 마무리되었습니까?”

“김영삼에게 중요한 건 쿠데타 재발의 싹을 자르는 거예요. 혁명을 하려는 게 아니었지요. 하나회를 살려놓으면 사실상 전두환 노태우의 권력이 연장되는 거죠. 그리고 노태우가 김영삼에게 하나회 숙청을 권유한 면이 있어요. 상징적인 하나회 현역 실세를 강제 전역시키고 일부는 기소해서 처벌하고 군인연금을 박탈시키는 일종의 정치적 깜짝쇼가 하나회 숙청이에요. 이어서 3년 후에 성공한 쿠데타도 처벌할 수 있다며 전두환 노태우를 기소하고 1심에서 사형과 22년 형을 때린 뒤 대법원에서 전두환 무기, 노태우 12년 형을 확정했어요. 김영삼이 퇴임하기 두 달 전에 전두환과 노태우를 사면합니다.”

“김영삼은 쿠데타 걱정을 제거한 것으로 만족한 거군요.”

토끼탈이 대답한다.

“그래요. 김영삼은 하나회 출신 중 일부는 여의도로 끌어들여요. 대표적인 인물이 육사 15기에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이진삼 대장에게 공천을 준 일이죠. 특히 김대중 대통령 당선 이틀 후에 전두환 노태우를 사면하면서 석방한 일은 김영삼이 군부에 대해 자신감을 나타낸 것이지만 모든 것이 정치적 퍼포먼스라는 걸 말해줍니다. 김영삼이 사면하지 않았다면 대통령에 취임한 김대중이 사면했겠지만.”

“과연 군부의 초법적 정치 개입을 원천봉쇄했다고 할 수 있습니까?”이성한이 물었다.

“문민정부 직전 소련의 해체로 인한 냉전의 종식이 큰 변수였어요. 94년 말에나 평시작전권이 한국군에게 돌아갔기에, 하나회 숙청 때는 한국군은 미군의 통제를 받아야 하는데 김영삼 집권과 비슷한 시기에 당선된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이 한국의 군사정변을 적극 반대했어요. 군부의 하나회는 눈물을 삼키며 찌그러질 수밖에 없었어요. 군부는 김기춘에게 세 번 당했다고 생각했어요. 1977년 20사단 대대장이었던 유운학 중령 월북 사건으로 보안사령관을 불러다 조인트 깐 일과 93년 우두머리들 날리고 하나회 해체한 일, 그리고 96년 전두환이 무기징역 최종판결 받고 수감된 일 모두 김기춘과 안기부의 기획이라고 이를 갑니다. 박영태 국방장관이 하나회 숙청의 행동대장이고, 박영태는 이어서 안기부장으로 3년 넘게 문민정부에 복무하지만 실세는 김영삼의 고향 후배 김기춘이었지요. 김기춘에게는 믿음직한 정형근이 있었구요. 정형근은 검사이자 고문의 달인이었어요. 문민정부에서 안기부 1차장을 맡아서 나쁜 짓을 척척 수행하며 김기춘의 총애를 받아요. 군부는 복수를 위해 칼을 갈지만 뱃속에 숨기고 입으로는 민간인 정치꾼에게 달콤하게 복종하는 구밀복검의 긴 세월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성한이 말을 이었다.

“그럼 오늘 방송 제목이 <이제 20년 만에 군부가 나설 때인가>인데, 20년 만이라는 건 1993년부터 20년 후인 2013년을 말하는 건가요?”

토끼탈이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대답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2월 25일 취임합니다. 하나회 숙청 이후 딱 20년이 흐른 거죠. 1993년 하나회 숙청 때 군부 최강 실세인 김주영 육참총장이 육사 17기입니다. 20년이 흘렀으니 육사 기수로 따지면 몇 기이죠?”

이성한이 대답한다.

“17 더하기 20은 37입니다. 육사 37기가 요직에 올라올 때가 됐겠군요.”

“그렇죠. 이제 대통령은 박근혜입니다. 박지만이 육사 37기예요. 박근혜 정부가 김관진이나 한민구 같은 처세술에 능한 똥별들을 국방부장관에 임명할 때, 박지만은 이재수를 박근혜 취임 직후 육군인사사령관에 넣어요. 이재수는 박지만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육사 동기이고 가장 가까운 친구였어요. 2018년 12월에 자살 당하지요. 그 얘기는 나중에 할 예정이구요. 이재수는 원래 인사통으로 군 생활을 했어요. 박지만은 이재수를 통해 군부 내 인맥을 훤히 꿰뚫고 있었던 거죠. 그리고 같은 해, 그러니까 2013년 박근혜가 대통령 취임한 그 해 10월에 이재수를 기무사령관에 앉힙니다. 20년 동안 군부가 힘을 쓰지 못하고 짓눌려 있었기에 군인 기강을 잡는다는 국군기무사령부가 군부 실세로 등장합니다. 그런 기무사에 처음부터 인사 업무만 하면서 군 생활한 이재수를 사령관에 앉힌 건 박지만의 큰 그림이었어요.”

“하아... 박정희 때 영식이라고 부르며 전 국민이 왕자로 떠받들던 박지만이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고요?”

이성한이 탄식을 했다. 이어서 소설을 소개한다.

“자세한 스토리는 소설을 통해 확인하겠습니다. 오늘도 김조영 성우님 모셨습니다.”

성우가 분위기를 살리며 마치 모노드라마를 하듯이 소설을 읽어내려간다.     


“누님. 김기춘은 안 돼. 정운화가 김기춘 분신이라고. 나원참. 이제 김기춘이 죽은 최자경 대신인가? 아버지의 원수를 왜 가까이 하세요.”

삼청동 인수위 사무실을 찾은 박지만이 박근혜에게 인상을 찌푸리며 하소연했다. 김기춘과 정운화를 가까이 하면 안 된다고 열심히 설득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박근혜다. 당선 후 가까스로 처음 만나는 자리다. 박지만이 만나자고 여러 번 연락해도 매번 씹었던 박근혜다.

“기춘 삼촌이 왜 아버지 원수냐. 오히려 아버지가 곁에 두고 이뻐했던 양반이야.”

박근혜는 듣기 싫다는 표정과 말투가 뚜렷했다.

“아버지를 총으로 쏜 건 김재규가 아니라 정보부 자체라고요. 김기춘은 제2의 김재규라고. 김기춘이 국정원을 완전히 휘하에 넣고 누님에게 수작을 부리는 거라고요.”

박지만은 2004년 서향희 변호사와 결혼하고는 완전히 달라졌다. <구렁이 새신랑> 전래동화 같은 이야기이다. 사실 구렁이 탈을 쓰고 있던 것도 옥황상제의 벌이라기보다는 자기 스스로 본래 모습을 감춘 것이다. 전두환이 밥맛이지만 아버지가 비명횡사했을 때 청와대 경호실에서 성실한 모습이었고, 80년 이후에 자신에게 온갖 편리를 제공했기 때문에 이를 갈 인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김기춘은 어찌 보면 아버지와 어머니를 동시에 죽인 원수였다. 74년 8.15 기념식장에서 육영수 여사가 관자놀이에 정확하게 총알이 박혀서 죽은 일이나, 정보부 두목 김재규가 아버지 얼굴을 총알로 짓이겨놓은 일을 잊은 적이 없었다.

“지만아. 내가 왜 널 육사에 넣었겠니. 너는 누구보다 총명한 녀석이야.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해야 한다. 네가 한국을 책임져야 하는 다음 번 대통령이 돼야 한다.”

박정희는 지만을 만날 때마다 다음 대통령은 너라고 귀에 피가 나도록 세뇌했다. 몸가짐과 주변 친구를 함부로 두면 안 된다는 잔소리가 뒤따랐다. 박정희는 다섯 살 많은 김일성이 권력 세습을 하는 걸 보면서 후일을 도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만이 유일한 아들이기에 박정희에게는 박지만 만이 희망이었다.

박정희가 갑작스럽게 죽고 누이들과 함께 청와대를 나오면서 지만은 아버지의 평소 말씀을 따르겠다고 입술을 깨물었다. 장세동은 후환을 키우면 안 된다며 지만을 미국으로 영구 추방하자고 전두환에게 자주 건의했다. 하지만 전두환은 선배 박태준 포철 회장이 지만을 보살펴주는 걸 모른 척했다. 박태준도 늘 지만에게 당부했다.

“영식님. 언젠가 한국을 이끌어나가셔야 합니다. 그러면 튀지 말고 사세요. 바보처럼 살아야 합니다. 정보부 놈들 조심하고 믿지 마세요.”

1986년 전역 후에 박지만은 마약쟁이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좌우 진영의 많은 교수들에게 배웠다. 책을 읽었고, 술자리를 가장한 룸에서 개인 사사했다. 2002년에는 브루스 커밍스 교수가 한국에 머물 때 호텔방에서 3시간을 만나기도 했다. 호텔 룸서비스 직원으로 변장하고 정보원을 따돌리며 커밍스 교수의 짧은 강의를 들었다. 통역은 커밍스 교수 아내 우정은 노스웨스턴대 교수가 맡았다. 커밍스 교수와 아내 우정은 교수 나이 차이가 15살이라는 걸 알고, 박지만은 늦었지만 이제라도 결혼하는 게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이 모든 것이 박태준 포철 회장의 뒷받침이었다.

그런 지만이 여섯 살 연배인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를 찾아간 건 담판을 지을 생각이었다. 만남이 쉬운 건 아니었다. 박근혜는 직접 전화를 받는 일이 없었다. 박근혜는 전화기를 들고 다니지 않았고 모든 통화는 비서를 통하기 때문에 원하지 않는 사람은 통화가 불가능했다. 지만도 원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당선 축하 인사차 인수위 사무실에 가겠다고 다리 놓은 지인을 통해 빌고 빌어서 겨우 만날 수 있었다.

“대통령님. 두 가지 청이 있어요. 그것만 들어주면 누이가 순실 누나와 정운화를 곁에 두든 김기춘에게 의지하든 간여하지 않을게. 꼭 들어줘. 내 청은 누이를 보호하는 일이기도 하고 국운이 승천하는 일이기도 해요. 꼭 들어줘요.”

박지만이 애원하듯 말했다.

“뭘 말하려는 건데 그러니.”

“이병구를 국정원장에 앉히려고 하잖아. 이병구는 김기춘의 아바타야. 이병구는 누이를 절벽으로 밀 인물이야. 노재준 장군을 국정원장에 임명해줘요.”

“노재준이 누구야? 이미 끝난 인선이야. 머리 아프게 할 거면 가라.”

“모르면 안 되는데…. 2007년에 누이를 도와 캠프의 안보특보하던 이야. 노무현 때 육참총장하던 노재준 대장 말이야. 육사 25기야. 능력이 출중하고 누이에게 충성을 다 할 거야. 이것만 들어주면 내가 발 벗고 나서서 누이가 우주의 기운을 받도록 뛸게. 이건 아버지의 유훈이라고 생각해줘요.”

“노무현 때 육참총장이었다고? 왠지 싫은데. 노무현도 싫고.”

“당시 노무현이 제일 싫어한 군인이야. 자기를 대놓고 까는 군부 최고위층 인물이 노재준이라고. 한번 불러다 얘기해보면 맘에 들 거야.”

“생각해볼게. 또 하나 더 있다고?”

“내 친구 재수있잖아. 이재수. 걔 아주 탁월한 놈이야”

“맨날 재수 있다, 재수 없다 농담하던 녀석 말이야?”

“그래. 이재수. 걔를 육군인사사령관에 발령내줘. 지금도 재수는 인사참모장이야. 중장으로 별 하나 더 달아야 사령관 할 수 있으니까 적절하게….”

“그럼 이 자리에서 약속해. 다시는 내 앞에 나서지 말겠다고.”

박근혜가 지만에게 험악한 표정으로 다그쳤다.

“네네. 알았어요, 알았어요. 약속만 지켜줘요.”     


여기서 이성한이 성우를 멈추게 한다.

“잠시만 쉬었다 가겠습니다. 확인할 것도 있구요.”

이어서 이성한이 묻는다.

“박근혜 정부의 초대 국정원장 노재준이 박지만의 인사 로비로 만들어졌다구요? 그동안 알려진 바로는 최순실의 천거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에 대해 노재준 원장이 ‘그 말이 사실이면 할복자살하겠다’고 말해서 저잣거리에서는 최순실 천거가 맞구나 생각했습니다만.”

“결국 박근혜 대통령은 지만의 인사청탁을 최순실에게 의논해요. 국정원장에 노재준을 앉히면 어떻겠냐구 물었어요. 최순실은 김기춘에게 전화로 의견을 물어요. 국정원장에 노재준이 어떠하냐구. 김기춘은 펄쩍 뛰었습니다. 무조건 국정원장은 이병구로 가야한다고 하면서 말이에요.”

“그런데 어떻게 노재준이 국정원장에 임명되었습니까?”

이성한 질문에 토끼탈이 대답한다.

“최순실이 노재준을 집으로 불렀어요. 노재준 면접을 본 거죠. 박지만과 관계를 집중해서 물어요. 왜 김기춘이 노재준을 쌍수를 들어 반대하는지 알아본 거죠.”

“아, 그 얘기는 소설 속에 들어있으니 이어서 소설을 들어보겠습니다. 성우님 계속 부탁합니다.”     


최순실이 노재준에게 대만산 우롱차를 내려주면서 얘기를 꺼낸다.

“지난 달 제가 대만 다녀오면서 사온 우롱차예요. 아리산 우롱차가 최고급이거든요. 드셔보세요.”

50대 말의 최순실은 60대 말 노재준에게 매우 깍듯하다. 순실은 노재준을 모르지 않았다. 2007년 이명박과 치열하게 싸울 때 최순실은 엄마와 명목상 남편 정운화 곁에서 선거캠프 살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네. 차가 부드럽고 깊은 맛이 있네요. 고맙습니다. 저를 보자고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노재준 장군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국정원장을 맡으려고 하는지 궁금하고, 부탁드릴 것도 있구요.”

“글쎄요. 그런 얘기를 왜 최 여사 집에서 나눠야 하는지….”

“저와 얘기하는 게 불편하다면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다만 국정원에 출입하실 수는 없을 겁니다.”

최순실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노회한 노재준이 전후사정을 모를 리 없다.

“아닙니다. 물으시면 최대한 대답하겠습니다.”

“김기춘 의원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순실이 훅 들어갔다. 대답도 대답이지만 상대방의 순간적인 표정 변화에서 마음을 읽는 순실이다.

“저는 야전에서 보냈고, 그 어른은 검사의 삶을 사셔서 서로 교류한 바가 없습니다. 요즘 어디서 어떻게 지내시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호호호. 김기춘 의원은 노 장군을 탐탁치 않아하더군요. 사실 국정원장은 이병구 대사가 갈 예정이었어요. 해외파트 2차장 일을 했기에 국정원도 잘 알고 있고…. 더구나 김대중 때부터 군출이 국정원장 맡은 적이 없어서 이번에 4성 장군을 국정원장에 임명하면 왈가왈부 말도 많겠고…. 하지만 노 장군님을 밀어드릴 테니 제 부탁을 들어주세요.”

“어떤 부탁인가요?”

“국정원 특활비를 매년 20% 올려드릴 겁니다. 인상분의 절반은 저를 주세요. 저를 주시는 건 청와대를 주시는 겁니다. 나라를 위해 쓸 돈입니다. 눈치가 보여서 청와대 특활비를 50억 이상 책정할 수가 없어요. 영수증 없는 현찰 사용이니 제게 전달하는 게 복잡할 거 없고, 500억 정도 올려드리니 국정원에서도 전보다 쪼들릴 일이 없을 것이고요. 배달 심부름은 믿을 만한 사람을 보낼 테니 분기마다 인편에 보내주시면 돼요. 그게 국정원장 자리에 앉는 조건입니다. 나라를 위해 불철주야 애쓰시는데 원장님도 특활비 맘껏 이용하시구요. 우리 대통령 잘 도와주시고, 제 부탁도 깔끔하게 처리하시면 최소 3년은 일하실 수 있게 보장할게요. 물론 거절하셔도 되구요.”

최순실은 1978년 한마음봉사단부터 박근혜의 곁을 떠난 적이 없기에 김기춘과 박근혜의 관계를 잘 알고 있었다. 순실의 아버지 최자경은 박정희가 한마음봉사단 명예총재로 재가하기도 했지만 79년 말 박근혜 남매가 청와대를 떠날 때부터 박근혜를 곁에 두고 극진히 보살폈다. 모든 과정을 순실도 함께 했다. 박근혜에게 오빠 소리를 듣는 김기춘이 아빠 소리를 듣는 최자경과 80년 대에 어떤 일을 저지르고 다녔는지 소상하게 알고 있는 순실이다.

순실은 김기춘이 얼마나 교활하고 치밀한 인물인지 알고 있었다. 박근혜가 스무 살 때부터 오빠라고 부르며 알고 지냈고 가장 힘든 시기였던 80년대에 박근혜 생활비를 대던 인물이 김기춘이었다. 최자경이 없는 상황에서 김기춘이 박근혜를 이용하려는 건 뻔한 일이다. 박근혜는 기춘 오빠가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에 육영재단을 최자경에게 맡기듯이 나라 살림을 김기춘에게 맡기려고 할 것이다. 순실의 판단이 그러하기에 김기춘은 불가근불가원 대상이다. 즉 가까이 하지 않을 수도 없고 멀리할 수도 없는 인물이다. 김기춘이 이미 국정원과 국세청 양대 권력 기관을 장악하고 있기에 적대적일 수는 없었다. 군부는 이미 신경 쓸 필요도 없는 상태여서 안중에 없었다.

하지만 김기춘이 너무 세지는 건 막아야 했다. 지금 기세라면 다음 대통령으로 나설 가능성도 보인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누구보다 최자경 집안을 손바닥처럼 들여다보는 김기춘이 자신과 가족을 가만히 둘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박근혜도 편안한 퇴임 이후를 보내지 못할 것이다. 어떡하든 전임자를 범죄자로 몰아 단죄해야 자신이 살 수 있는 세계가 최고권력자의 생리이기 때문이다.

노재준이 돌아가자 최순실은 커피머신에서 에스프레소를 내려서 뜨거운 물을 잔뜩 부었다. 노재준이 갑툭튀한 것은 박지만의 그림이라는 걸 노재준에게 듣고 순실은 속으로 적지 않게 놀랐다. 그리고 박근혜가 지만의 두 번째 청탁으로 이재수를 중장으로 진급시켜서 인사사령관에 임명해달라고 말한 걸 떠올렸다.

‘군부 인사를 휘어잡겠다는 심산이잖아. 국내외 정보는 노재준에게 얻고 말이야. 바보 박지만이 어떻게? 항간의 소문이 사실이란 말이지….’     


이성한이 또 다시 끊고 간다.

“와아. 소설이 소름 돋으면서도 엄청 재밌습니다. 작가님에게 묻고 확인할 게 있어서 잠시 멈췄습니다. 저도 끊지 말고 계속 듣고 싶습니다만, 너무 중요한 사안이라서 여쭤보겠습니다.”

이성한이 질문을 이어간다.

“국정원 특활비가 세간의 여론이 나빠서 현재 안보비로 명칭이 바뀌었습니다. 주머닛돈 꺼내 쓰듯이 영수증 없이 현금으로 받아서 쓰는 비용이잖아요. 어디에 쓰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일베 운영비로 쓰인다든지 태극기부대 수당으로 쓴다든지 말이 많은 돈입니다. 국가 안보를 위해 비밀공작이 필요하다면 특활비를 사용하는 것인데, 5만 명 국정원 직원 인건비와 운영비는 별도이고 특활비 규모가 어떻게 됩니까?”

토끼탈이 대답한다.

“박근혜 물러날 때 4천 억 수준이었어요. 매년 20%씩 올렸기 때문에 천문학적 규모로 국정원 특활비가 커졌지요. 그에 비하면 검찰 특활비는 초라하기 그지없죠. 하지만 놀랍게도 문재인 정부 끝날 때는 7500억으로 늘었구요. 현재는 7천9백억 수준이죠. 국회를 통과한 예산안만 그 정도고, 각 정부 부처에 국정원에서 쓸 수 있는 특활비 예산이 숨어있어서 사실상 1조를 상회한다는 게 관가의 통념입니다. 윤석열 정권에서 국정원 특활비를 올려주지 않고 있어요.”

“그 돈이 다 어디로 갈까요. 매년 1조 원 내외의 돈이 어디로 갔단 말입니까. 국회나 감사원의 통제도 받지 않는 어마어마한 돈이…”

이성한이 탄식을 하며 말했다. 다시 한숨 같은 말을 뱉는다.

“그러니까 청와대가 아닌 국정원이 진짜 권력의 똬리를 틀고 있는 셈이란 말입니까?”

토끼탈이 이어 받는다.

“2013년에 향단이 신분인 최순실이 김기춘과 경쟁할 수는 없어요. 대신 순실은 박근혜가 있고, 새롭게 박지만의 존재를 확인했어요. 눈치라면 누구보다 빠른 최순실이 머리를 굴리기 시작해요.”

“그런데 박근혜는 1979년 청와대를 떠난 후 1998년 달성군 보궐선거 전까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20년 가까운 시간인데 박근혜는 어떻게 살았던 겁니까?”

“그건 소설을 좀더 읽으면 알 수 있어요.”

이성한이 김조영 성우에게 낭독을 이어가라고 부탁한다.     


80년부터 97년까지 17년 동안 박근혜는 논현동 집 밖으로 나간 적이 거의 없었다. 80년대에는 육영재단 이사장을 맡았지만 모든 일은 최자경이 처리했다. 박근혜가 사무실에 출근한 일이 없다. 94년 최자경이 죽을 때까지 가장 가깝게 의지할 수 있는 지인은 최자경과 순실이었다. 김기춘은 가끔 최자경 집을 방문했을 때 일 년에 한번 정도 박근혜를 찾았다.

박지만이 구밀복검의 겉모습과 절치부심의 정신력으로 책을 읽고 스승을 찾아 사사한 세월에 박근혜는 최자경에게 교육받았다. 말이 교육이지 세뇌의 과정이다. 최자경은 박근혜가 한반도 통일을 이루고 국운융성의 과업을 완수하는 역사적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가르쳤다.

“영애님. 근혜 영애님은 잔다르크의 환생이십니다. 잔다르크 이전 생은 예수였어요. 그 이전 생은 싯다르타였습니다. 당신은 석가모니 부처님이었답니다. 어머니 육영수 님은 언제나 영애님의 어머니였습니다. 싯다르타를 낳은 샤캬국 왕비 마야부인이었다가, 예수를 낳은 마리아였다가, 잔다르크를 낳은 이자벨 로메였다가 한반도로 와서는 영애님을 낳은 육영수로 살다 우주로 떠나신 겁니다. 고대 문명지 인도에서 다시 팔레스타인으로, 그리고 유럽을 거쳐 드디어 동방의 빛 한반도에서 근혜 영애님이 환생하셨어요. 영애님은 남녀 성별을 초월하십니다. 그때그때 땅의 필요에 따라 남자로도 태어나고 여자로도 태어납니다. 지금은 진성여왕 이후로 여성 대통령이 필요한 한반도입니다. 영애님의 넓은 품으로 한반도의 아픔을 보듬어 최강의 통일 대통령이 되실 겁니다. 김일성도 근혜 영애님을 만나면 한눈에 알아볼 겁니다. 김일성도 하늘의 기운을 타고 난 인물이라 근혜 영애님을 보고 고개를 숙이며 칭송합니다. 분명 그리 합니다. 그러니 때를 기다리고 옥체를 강건하게 하시고 공부하고 기도하십시오.”

최자경은 박근혜를 그루밍하고 늘 명상과 기도를 같이 했다. 또한 출산 경험을 가져야 완벽한 우주의 기운을 받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근혜 영애님. 아기를 낳아야 전 우주가 나서서 다 같이 도와줍니다. 그리고 꿈이 이루어집니다. 남자는 불가능한 일이지요. 그래서 이번 생에 영애님이 여성으로 태어나신 겁니다. 낳기만 하시면 키우는 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국가의 총역량을 동원해서 영애님 뒤를 이을 지도자로 키우겠습니다.”

그렇게 박근혜는 17년 동안 두문불출하면서 일기쓰기, 기도, 최자경과 대화, 영어 중국어는 물론 히브리어까지 확장한 외국어공부, 탁구, TV드라마를 섭렵하며 지냈다. 예외적으로 노태우 집권 후 잠깐 여성잡지나 mbc와 인터뷰한 일이 있었다. 오랜 기간 칩거할 수 있었던 건 순실이 곁에서 친구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최자경 사망 이후 박근혜에게 순실은 생명줄이었다. 순실은 죽은 아버지 최자경 역할까지 대신했다. 가스라이팅이 이어지고 세상 밖으로 나갈 훈련도 최순실의 역할이었다.     


“아, 믿기 어려운 얘기입니다. 우리가 아는 박근혜 대통령의 청와대 생활을 봤을 때 개연성은 높아 보이긴 합니다. 그래서 ‘우주의 기운’에 대한 조롱과 풍자가 번졌군요. 다시 박지만으로 돌아와야겠는데요. 박지만이 그동안 어떤 일을 벌이고 있었습니까?”

“박지만의 좌충우돌도 소설 내용으로 소개하겠습니다.”

김조영 성우의 낭독이 이어진다.


    

1993년 하나회 숙청을 지켜보던 박지만은 만감이 교차한다. 육사 36기까지 하나회 명단에 들어있다고 발표가 나와서 실소를 지었다. 86년 대위 전역 후 적어도 육군 내부의 동향은 가장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박지만이었다. 지만이 육사 37기였고, 파악한 바로는 지만의 후배도 하나회 소속이 있었다. 그 난리 와중에도 돈 받고 하나회 명단에서 지워주는 대령도 있다.

아버지 박정희가 죽자마자 아버지를 배신하는 수많은 군 선배들을 보면서 ‘믿을 놈 하나 없다’고 생각했다. 한국 현대사를 공부하고 아버지의 실체를 알게 되면서 5.16 세력에 진절머리가 났다. 고모부 김종필이 가끔 만나자는 연락을 했지만 한번도 만나지 않았다. 박지만에게는 모두 척결의 대상이었다. 군인 똥별들은 돈을 탐내는 벌레들이었다. 아버지가 왜 자신을 후계로 삼으려고 했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자신이 배신자들을 박살내고 아버지의 유업을 이어 자주국방을 이루고 미국의 그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었다.

걸림돌은 정보부 놈들이었다. 정보부야 말로 철천지원수가 아니겠는가. 전두환과 장세동이 장악했던 안기부를 믿을 수도 없지만 노태우 이후 김기춘이 움직이는 꼴을 보면 나라의 장래가 걱정된다. 진정한 군인이라면 전쟁에 참여하는 게 아니라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존경하는 선생님들에게 사사한 결과다. 전쟁 방지야 말로 목숨을 걸어야 가능한 것이다. 최근 북한이 핵을 자체 개발하고 실험까지 하고 있는데 안기부 놈들은 미국에서 제공하는 정보에만 의존하고 있는 게 한심하다.

가장 먼저 김기춘을 막아야 했다. 자기 세력을 만들겠다고 안기부를 장악한 김기춘을 막지 못한다면 북한에 재역전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박지만은 끈 떨어진 상황이고 히로뽕 약쟁이 탈을 뒤집어썼고 김기춘은 15대 국회의원이 돼서 박지만이 손 댈 수 없는 곳에서 살고 있다.

박지만은 최자경이 죽자 쾌재를 불렀다. 육영재단에서 최자경의 흔적을 지울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순실이가 있었다. 최자경이 죽기 전에 이미 작은 누나 박근영을 이사장 자리에 앉히고 순실이 실권을 휘둘렀다. 지만은 힘을 쓸 수 없었다. 큰누나 근혜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얼굴조차 볼 수 없었다. 육영재단은 장래 거사를 도모할 수 있는 기반이 되는 재산인데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신세가 됐다. 더구나 마약 문제로 자신의 이미지가 땅에 처박힌 처지라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답답한 지만이 자주 찾은 사람이 이재수였다. 중앙고등학교에 이어 육사도 같이 들어간 이재수는 인사장교로 줄곧 근무해서 서울에 있기에 지만이 언제든 만날 수 있었다. 둘 관계는 세상이 다 아는 바라 안기부 감시에도 만남을 숨길 필요도 없었다. 이재수의 육사 입학은 지만이 아버지 박정희에게 부탁해서 가능했다. “재수가 없으면 제가 육사 생활을 견디기 어려워요” 말하며 이재수의 육사 입학을 조건으로 달고 육사에 간 박지만이다.

둘이 만나면 박지만이 과하게 술을 마셔도 이재수는 거의 마시지 않았다. 자기 관리가 뛰어나고 다음 날 근무에 지장을 줄 이재수가 아니었다. 박지만이 거나하게 취하면 김오랑 선배 이야기를 많이 했다. 시각장애인이었던 김오랑의 부인 백영옥이 실족사했다는 소식을 들은 1991년 어는 날 박지만은 이재수를 단골 룸살롱으로 불렀다. 룸살롱이지만 박지만이 몰래 사사하는 교수나 사회단체의 셀럽들과 비밀 미팅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야, 재수야. 김오랑 선배 부인이 3층에서 떨어져 죽었단다. 저 개시끼들을 어쩌면 좋으냐. 우리 형수는 불쌍해서 어쩌냐.”

군복을 벗은 지 오래된 박지만이 이재수를 만나서 술을 마실 때마다 자신은 김오랑의 뒤를 따르겠다고 중얼거렸다.

“지만아. 소리 줄여. 선배 부인을 누가 일부러 죽였다는 거야? 거 위험한 말이야.”

위험하다고 말하는 이재수도 김오랑의 부인 백영옥의 죽음을 타살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아니면 자기 집에서 떨어져 죽을 일이 뭐있냐. 아무리 장님이라고 해도 말이야. 장님이라서 더욱 추락사는 말이 안 돼.”

“지만아. 너 노재준 준장 알지. 김오랑 선배와 25기 동기야. 내가 업무 관련해서 자주 접촉하는데, 너를 만나게 해달라고 하더라.”

“그 양반이 왜?”

“노재준 장군은 김오랑 선배랑 똑같은 사람이야. 정의를 위해 죽음을 두려워할 위인이 아니지. 노장군도 나라가 풍전등화에 처했다고 생각해. 오직 깨끗한 군인만이 나라를 구할 수 있다고 믿는 분이야. 나랑 같이 만나자. 우리 셋이 길게 할 말이 있을 거야. 나도 너랑 생각이 똑같다는 걸 알고 있지?”

그렇게 박지만 이재수 노재준 세 명의 도원결의가 이루어졌다. 노재준이 임지를 벗어나는 건 위험하기 때문에 박지만과 이재수가 손님으로 위장하고 노재준 관사에 방문했다. 셋은 세상을 구하고 함께 죽자고 맹세했다. 말이 번지르르한 것이고 실상은 김기춘 때려잡고 권력을 잡아서 군부가 부활하자는 뜻이다. 죽는 걸 두려워하지 말자는 말은 진심이었다. 즉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훗날 천인공노할 죄를 이재수에게 뒤집어씌워서 둘은 빠져나갔지만.     


“네. 성우님 수고하셨습니다. 일단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이성한이 소설읽기를 중단시켰다.

“일종의 도원결의 후 박지만은 박태준의 후광으로 제조업 회사를 경영하고 결혼까지 하고 아이도 낳았지요. 박지만의 아내 서향희는 박지만의 선생이기도 했어요. 박지만의 행동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끼친 사람이지요. 마약은 물론 술도 완전히 끊고 구렁이가 말끔한 새 선비로 변하듯이 영국 신사처럼 변신했습니다. 2002년에 만난 브루스 커밍스 교수를 따라했는지 모르지만 서향희 변호사와 16살 차이가 납니다. 노재준은 노무현 때 대장 진급을 하고 육군참모총장에 오릅니다. 이재수도 2013년 박근혜가 대통령에 취임할 무렵 투스타 소장까지 올랐습니다. 알게 모르게 박지만의 영향이 있었구요. 세 사람은 칼을 갈며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예요.”

토끼탈이 마무리 멘트를 했다. 이어서 이성한이 문을 닫는 인사를 한다.

“이성한의 극중TV 시청자 여러분. 오늘도 고맙습니다. <세타의 경고> 코너를 널리 알려주세요. 다음주 금요일에 다시 뵙겠습니다. 토끼탈님, 김조영 성우님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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