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양집단자살사건의 종착지
“토끼탈님 일주일 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곤란한 일은 없었나요?”
세타의 경고 4회 방송을 시작하면서 이성한은 토끼탈에게 의례적인 인사를 건넸다.
“네.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연락한 사람이 아무도 없네요. 저희 엄마도 제가 방송하는 걸 모르시구요.”
“저희 채널은 덕분에 고속 성장 중입니다. 오늘도 충격적인 얘기를 나눌 수밖에 없는데, 제목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청해진해운의 뿌리가 오대양 기업에 있다는 말씀인가요?”
이성한이 물었다.
“제 취재 결과는 그렇습니다.”
“오대양 사건은 1987년 8월 말에 있었던 집단자살사건을 말하는 것 아닙니까?”
이성한의 질문에 토끼탈이 대답한다.
“물론입니다. 당시 KBS 9시뉴스 박성범 앵커가 사건을 소개하면서 한 말이 유명합니다. ‘국민소득이 2천 달러나 되고 문맹률이 10% 미만인 나라에서는 도저히 생길 수 없는 사건이 우리나라에서 발생했습니다’라고 말했어요.”
이성한이 말을 잇는다.
“37년 전 사건이네요. 현재 대한민국이 1인당 3만 달러 국민소득에 문맹률 1%를 생각하면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사건입니다. 오죽하면 당시 손석희 mbc 뉴스데스크 앵커가 ‘변괴스러운’ 사건이라고 말했겠습니까.”
“변괴스러운? 저는 처음 듣는 말인데, 정말 변태적이고 괴상한 일이었습니다. 32구 변사체는 8월29일 발견됐는데, 당시 수사 검사 박영수, 바로 박근혜 국정농단 특검이었다가 가짜 수산업자에게 뇌물 먹고 물러난 그 박영수이지요. 35세 젊은 박영수 검사는 다음날인 30일에 사건의 실체를 발표합니다. 너무 많은 빚을 진 주식회사 오대양 박순자 사장과 가족, 직원들이 채권자를 피해 공장 천장에 숨어 있다가 마지막에 목을 매 숨진 공장장 이경수가 나머지 사람들을 교살하고 자신도 목숨을 끊었다고 발표해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변괴스러운 32명 집단 사망사건을 하루 만에 사건의 원인과 과정을 발표한 것도 사건 자체 못지않게 변괴스럽죠.”
토끼탈이 흥분한 목소리로 빠르게 사건 개요를 말했다.
“토끼탈님은 태어나기 전 사건일 텐데 어찌 그렇게 소상하게 아십니까?”
“저는 지난 10년 동안 세월호 비극의 원인을 찾아 취재했어요. 취재를 하면 할수록 꼬리에 꼬리를 물며 취재 내용이 엄청나게 늘어났어요. 인맥이나 공간적인 확장보다는 시간적으로 뿌리가 깊었어요. 그래서 90년대 80년대는 물론이고, 박정희의 유신헌법, 어이없는 긴급조치 1호 공포, 이어진 1974년 8월15일 육영수 저격 사건이나 박정희 사망과 12.12 군사쿠데타의 70년대까지 내려간 거죠. 그러다 1972년 유신헌법에서 김기춘을 만났습니다. 김기춘은 지난 50년 동안 한국 현대사에서 뺄 수 없는 존재입니다. 김기춘 덕분에 최순실의 아버지 최자경도 만날 수 있었고, 최자경을 따라가다 보니 80년대로 넘어와서 유병언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 오대양 집단변사사건이 유병언과 관련있다는 루머가 있었는데, 그게 사실인가요?”
“제 취재의 결론은 그렇습니다.”
“취재는 세월호 침몰의 실체를 알아내는 것인데, 왜 오대양 집단변사사건이 나오게 된 것입니까?”
이성한이 물었다. 이어 토끼탈이 대답한다.
“세월호 참사와 오대양 변사사건은 닮은꼴입니다. 둘 다 김기춘과 유병언이 등장합니다. 오대양도 유병언을 수사합니다. 하지만 유병언 관련이 없다고 발표하면서도 별건수사로 신도 헌금과 관련 사기죄로 기소해서 유병언이 징역 4년을 받도록 합니다. 세월호 때는 사고 일주일 후부터 유병언과 유병언 아들딸 관련 보도로 뒤덮고 전국이 긴급 반상회까지 열도록 하지만 유병언으로 지목한 시체가 발견되고, 세월호는 물론 유병언이 청해진해운 운영에도 관련이 없다고 발표합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소설 <세타의 경고>를 김조영 성우 목소리로 듣도록 하겠습니다. 성우님 오늘도 부탁드립니다.”
1985년 2월 20일은 전두환이 생색내듯이 ‘민속의 날’로 정하고 휴일로 만들었다. 처음으로 음력 설날을 하루 휴일로 지정한 것이다. 대구지검장으로 내정됐지만 공식적으로 법무연수원 소속이었던 김기춘은 공식 휴일이 된 설날에 근무지를 벗어날 수 있었다. 아침 일찍 용인 기흥의 법무연수원을 떠나 논현동의 박근혜 집으로 향했다. 안기부 감시를 받고 있지만 박근혜 집에 가끔 방문하는 건 이미 알려진 김기춘의 동선이라 꺼릴 게 없었다. 이제 대구에서 근무하면 서울에 오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미 최자경에게 박근혜 집에서 만나자는 연통을 넣었기 때문에 최자경이 박근혜와 같이 있었다. 근혜는 기춘의 새해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하며 자경이 안고 있는 꼬마를 받아 안고 옆방으로 건너갔다. 방을 옮겨 기춘과 자경이 마주 앉았다. 자경이 말을 꺼냈다.
“대구지검장으로 영전하심을 경축드립니다. 언제 부임하십니까?”
나이는 자경이 20살 많았지만 자경은 기춘에게 태도도 말투도 매우 깍듯했다.
“3월1일자니까 삼일절에 임지에 갈 생각입니다. 제게 꼭 할 말이 있다고 하셨는데, 무슨 말씀이신가요.”
“제가 덕소신앙촌에서 알게 된 사업가인데 무척 단단한 친구입니다. 지검장님 두 살 아래입니다. 이름은 유병언이구….”
“그런데요.”
“유병언이 자기 장인과 함께 독자적으로 하나님을 믿는 교회에서 사역하면서 사업가로도 수완이 대단합니다. 지검장님이 알고 있으면 분명 큰일을 수행할 친구입니다. 제가 소개시켜드리고 싶습니다.”
“뭐 그런 친구를 소개하겠다고 급하게 저를 부르신 겁니까.”
기춘이 심드렁하게 반응했다.
“아닙니다. 절대적으로 쓸모가 있는 아이입니다. 저를 믿고 한번 밀어주십시오. 유병언은 사업도 사업이지만 사람을 홀리게 설교를 잘 합니다. 그 친구 교회에 사람이 좀 모여듭니다. 전두환 집권 이후 이단들이 우후죽순입니다. 최근 이만희도 있고 이재록도 있고, 엄청 많습니다. 그중에 침례교 구원파의 유병언이 지검장님께 오른팔이 될 친구입니다.”
“그래요? 제가 도와줄 일이 있나요?”
“지검장님이 도와주시면 지검장님께 군자금을 마련해드릴 겁니다. 사업의 귀재입니다.”
“아, 글쎄 바라는 게 있을 거 아닙니까.”
“한강유람선 사업을 해보고 싶다고 합니다. 조금 있으면 올림픽도 있고, 얼마 전 정수라 노래에 강물에 유람선이 떠있다고 하는데 아직 한강에 유람선이 없으니까요.”
“유람선? 뭐 일리가 있습니다. 마침 염보현 서울시장이 제 고등고시 동기라서 얘기는 해볼 수 있겠는데…. 뭔가 염 시장에게 발라줄 꿀이 필요할 텐데요. 그 양반 워낙 실속파라서 말입니다. 그리구 배값도 만만치 않을 텐데 돈줄도 잡고 있는 사람인가요, 유병언 말입니다.”
“독점 면허만 받는다면 교회에서 동원 가능한 자금이 있다고 합니다.”
“그럼 꿀을 먼저 준비해 주세요. 저도 체면이 있지 어떡해 맨입으로 청을 넣습니까. 아무리 고등고시 동기라고 해도.”
“제가 바보가 아닌데 그런 준비도 없이 말씀드리겠습니까. 잠시 계십시오.”
최자경이 방을 나갔다가 봉황 자수가 놓인 비단손가방을 들고 돌아와서 김기춘에게 손가방을 쥐어준다.
“유병언이 제게 맡긴 겁니다. 지검장님이 알아서 활용하세요.”
김기춘이 감촉이 보드라운 손가방을 열어본다.
“1000그램입니다. 총알로 쓰시면 됩니다.”
작은 패브릭 가방에 누런 돼지가 들어있다. 김기춘이 헛기침을 두 번 한다.
“그리고 이건…. 놈들에게 당하면서도 와신상담하며 버텨내신 지검장님의 영전을 축하하는 뜻입니다.”
최자경이 방구석에 있는 사과상과 크기의 종이박스를 끌어당겨 기춘의 곁에 두었다. 이미 짐작한 기춘이 확인해보니 예상대로 돈다발이다.
“이건 제가 드리는 영전 선물입니다. 먼 길 오고가실 때 거마비로 쓰십시오. 여기서 이걸 들고 나가실 수 없으니 제가 사람을 시켜 대구 관사에 배달시키겠습니다. 그럴 일이 없지만 만약 배달사고가 있을 때 알려주십시오. 방문 청소 아줌마가 지검장실로 전화할 겁니다. 다른 말씀 마시고 청소 날짜만 잡아주세요.”
“흠흠. 고맙습니다. 군바리 잡것들 쫓아버리고 박정희 대통령 때처럼 태평성대를 다시 만들기 위한 자금으로 쓰겠습니다. 유람선 면허는 간곡히 얘기해놓겠습니다. 서울시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니 무난하게 해결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논현동을 나온 김기춘은 휴일이 된 설날이니 처자식을 보러 갈 생각으로 핸들을 틀었다. 괜히 웃음이 나오는 기춘이다. 언젠가는 청와대 주인이 되겠다는 기춘의 꿈이 가까워지는 느낌이었다. 평창동 집으로 가기 위해 남삼1호터널을 지나다가 기춘의 생각이 바뀐다. 어차피 서울시청을 지나게 되니 서울시장실을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자기가 아는 염보현은 휴일이 된 설날에 오히려 시청에 나와서 상황을 점검할 것이라 믿었다. 역시 염보현 서울시장이 시장실에 있었다.
“형님, 저 기춘이 왔습니다.”
비서의 안내를 받아 시장실로 들어서는 김기춘을 염보현은 어정쩡하게 맞는다.
“김 검사가 어쩐 일로. 더구나 오늘 같은 날에 말이오.”
찻잔을 앞에 두고 둘만 마주 앉았기에 김기춘은 애둘러 말하지 않겠다고 마음먹는다. 염보현은 아직 자기를 경계하는 눈치였기에 청탁을 들이밀고 빨리 일어설 생각을 했다. 염보현은 자신의 큰 꿈에 보탬이 될 위인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형님. 저는 이제 꺾은 날개를 다시 피게 됐습니다. 저 다음 주에 대구지검장으로 내려갑니다.”
“그래요? 그거 축하할 일이군요. 처신 잘 하시고….”
김기춘이 안쪽 주머니에서 금돼지를 꺼냈다. ‘탁’소리가 날 정도로 탁자 위에 돼지를 내려놓았다.
“그동안 마음 써 주셔서 드리는 감사의 인사입니다. 24K 1000그램입니다.”
“어허. 우린 그런 사이가 아닌데. 오랜만에 나타나서 뭔가 할 말이 있으신가보오. 이렇게 화끈한 대시를 하니 좀 당황스럽구먼.”
염보현은 눈이 반달이 되고 입은 길게 벌어졌다. 김기춘은 간단히 유람선 면허에 대해 청탁을 했다. 염보현 시장은 금돼지 크기에 비해 청탁의 내용이 싱겁다고 생각하니 더 크게 웃게 된다.
“아, 뭐…. 음음. 유 사장이란 사람 시청에 들어가 보라고 해봐요. 내 검토는 하리다.”
“검토요? 음음. 좋은 사업이니 좋은 소식 있으리라 믿고 이만 물러갑니다.”
“이제 우리가 좀 더 얘기해야겠습니다.”
이성한이 성우의 낭독을 멈춰 세웠다.
“유병언이 최순실 아버지 최자경에게 부탁하고, 최자경은 김기춘에게, 김기춘은 염보현 서울시장에게 청탁해서 1986년에 세모에서 한강유람선 사업권을 따낸 것이란 말씀입니다. 이게 소설의 상상인가요, 팩트인가요?”
“제가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라고 보시면 돼요.”
“김기춘 프로필을 보면 실제로 1985년 3월에 대구지검장으로 부활합니다. 85년 2월까지는 법무연수원 연수부장으로 유배지 생활을 합니다. 김기춘이 근무한 법무연수원이 용인 기흥에 있나요? 제가 알기론 국가대표 선수촌이 있는 진천에 있습니다만.”
“지금은 충북 진천에 있지만 예전에는 용인 기흥에 있었어요. 당시 기흥은 매우 외져서 법무연수원은 그야말로 검사들에겐 유배지였죠.”
이성한이 말을 이어간다.
“5공 권력에게 밉보여서 한직에서 유배됐던 김기춘이 어떤 연유로 대구지검장으로 발령났습니까?”
토끼탈이 대답한다.
“김기춘은 촌구석 기흥에서 3년을 죽은 듯이 살았어요. 마치 김동인의 <운현궁의 봄>에 나오는 이하응에게 자신을 투사했어요. 김기춘은 후에 고종의 아버지로서 흥선대원군으로 불린 이하응을 당대의 능력자로 여겼어요. 외척인 안동 김씨의 장기 집권을 종식시키고 제국주의의 약육강식 국제적 상황을 극복할 수 있었던 대원군이 며느리를 잘못 선택한 탓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생각했어요. 자기는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당장은 <운현궁의 봄>의 이하응처럼 전두환 군부 일당의 다리 가랑이 사이로 지나가는 굴욕을 참으며 살았지요. 대신 주목을 덜 받으면서 포스트 전두환을 준비할 수 있었어요. 박정희 때 중앙정보부 실무자들과 비밀리에 연락하고 권력 내 서열의 변화와 하나회 움직임을 체크할 수 있었죠. 더욱 중요한 건 북한과 중국의 동향이었어요. 미국의 움직임은 외교부 라인과 연이 닿아있으니까 가능했구요. 김기춘은 자기보다 세 살 어리고 서울대 후배이자 고등고시 후배 검사였던 박철언에 공을 들였어요. 전두환이 영구집권을 꿈꾸지 않는다면 노태우가 차기 권력자일 가능성이 높기에 노태우의 처남인 박철언은 키맨일 수밖에 없지요. 5공의 중앙정보부에서 대북 정책을 주도한 박철언에게 줄을 대면서도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살았던 덕분에 김기춘은 양지로 올라와요. 대구지검장에서 대구고검장으로, 다시 법무연수원장으로 자유로운 시간을 가진 기관장을 하다가 노태우 정부 출범 후 곧바로 검찰총장으로 화려하게 등장하는 스토리는 박철언의 도움이 없이 불가능한 거죠.”
이성한이 말을 잇는다.
“88년 노태우 정부 출범 후 검찰총장이 되기 직전에 유배지라는 법무연수원으로 다시 돌아간 이유가 무엇입니까? 대구고검장에서 법무연수원장으로 이동하는 건 겉으로 보기에 좌천인데 말입니다.”
토끼탈이 물을 한모금 마시고 대답한다.
“이명박의 꼼꼼함은 김기춘의 꼼꼼함을 따라가지 못해요. 오대양집단자살사건이 87년 8월 말에 일어나는데, 김기춘은 두 달 전 6월에 용인 기흥의 법무연수원장으로 돌아갑니다. 집단변사사건 장소인 오대양 용인 공장이 법무연수원에서 30분 거리에 있어요. 김기춘에게는 군자금이 필요했어요. 85년에 최자경을 통해 만난 유병언이 행동대장을 했구요. 최자경은 자기 사후에 박근혜와 자기 딸 세 자매를 김기춘에게 부탁하며 일이 성사되게끔 윤활유 역할의 돈을 제공했어요. 오대양은 돈이 모이는 저수지 역할을 한 것이고, 당시 100억원은 지금 최소 3천억의 가치가 있어요. 오대양의 천문학적 액수의 채무를 죽음으로 한번에 변제한 거죠. 오대양 저수지로 들어온 자금이 오리무중이었어요. 김-최-유 커넥션으로 흘러간 거죠. 한강유람선 덕분에 주식회사 세모는 거침없이 고공 성장을 했구요. 성장의 배경에는 차입금이 절대적입니다. 그런데 97년에 갑자기 부도처리하면서 부채를 몽땅 처리해요. 마치 오대양의 사장과 가족, 직원들이 자살 당한 것과 똑같아요. 세모의 부채는 산업은행이 손실처리해요. 결국 국민 세금으로 세모의 부채를 갚아준 셈이에요. 세모가 사라진 시기부터 구원파는 지금의 안성 금수원 주변 땅을 사 모으기 시작했어요. 그리곤 2년 만에 청해진해운을 설립하고 연안여객선 사업을 하다가 결국 제주도 독점항로권을 거머쥔 거죠.”
이성한도 물을 한 잔 벌컥벌컥 마신다. 한숨을 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생방송은 아니지만 편집자가 따로 없으니 가능한 사운드 공백을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이성한이다.
“아, 머리가 좀 어지럽습니다. 8, 90년대에 이러고도 나라가 망하지 않았다는 게 이상할 정도입니다. 김기춘은 88년부터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하다가 문민정부 출범에 초원복집사건으로 기여하고 잠시 숨고르다가 국회의원으로 내리 3선을 하면서 노무현 탄핵에 앞장서고, 다시 7인회로 박근혜 정부 출범 시키고 아예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사실상 왕 역할을 합니다. 이런 개인사는 다 알려진 것인데 이면에 최자경-유병언-김기춘의 커넥션이 80년대 중반부터 있었던 것이란 말씀입니다. 오대양 변사사건으로 종잣돈 모으고 유람선 사업으로 돈 긁어모은 다음에 고의부도, 이어서 청해진해운 설립으로 제주도 독점 운항으로 이어진 겁니까? 종말은 세월호의 비극이고? 제가 맞게 이해한 겁니까?”
“네. 옳게 이해하셨어요.”
토끼탈이 대답했다. 이어서 이성한이 얼굴을 구기며 묻는다.
“하지만 말입니다. 세월호의 참극으로 청해진해운이 해체되고, 제주도 독점 항로도 취소되고, 유병언은 죽었고, 김기춘도 불명예스럽게 청와대에서 나오고, 결국 무죄를 받았지만 기소도 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건 최자경의 대리인 최순실이나 유병언, 김기춘 삼각동맹에게 모두 치명적이지 않습니까. 이해되지 않아요. 세월호 참극으로 삼각동맹이 얻는 이득이 전혀 그려지지 않습니다만….”
“그러실 거예요. 복잡하기도 하고 끔찍하기도 한 배경이 있어요. 그건 다음 시간에 풀기로 하고요. 언제나 대형사건 뒤에 돈거래가 있어요. 큰돈을 불법적으로 먹으려면 대형사건을 기획하는 거죠. 최근이라면 부산저축은행 돈으로 ‘돈 놓고 돈 먹기’ 성격의 성남 대장동 아파트 개발 사건이 있고요. 끔찍한 일이라면 이태원 압사 참사나 97년 김현희 일당의 대한항공기 추락사건 등이 있어요. 이태원 참사는 기획 사건은 아니지만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고였지요. 세월호도 마찬가지이거든요. 304명의 희생은 침몰 때문이 아니라 구조하지 않아서 일어난 비극이구요. KAL기 추락은 정치적 이득을 계산한 세력이 저질렀겠지요. 생명을 앗아간 건 아니지만 선관위 서버 디도스 공격이나 퇴근길을 막아서 선거에 유리하게 작용하려고 했다는 소위 ‘터널디도스’도 기획의 결과잖아요.”
“침몰이 아닌 구조방기가 희생의 원인이라고 하시면 세월호 침몰은 우연한 사고인데 구조과정의 엇박자가 참사를 낳았다는 말씀입니까?”
“아니지요. 침몰의 원인은 다음 시간에 자세히 말씀드리지 싶구요. 오늘은 김기춘-최자경-유병언 삼각동맹을 말씀드린 거예요. 삼각동맹이 세월호 참사의 배경이 된다는 말씀이구요.”
“이성한의 극중TV 시청자 여러분. 저는 오늘 머리가 어지러운 상태에서 방송을 마쳐야겠습니다. 다음 주 분량 <세타의 경고> 5화에서 어떤 얘기가 나올지 두렵기까지 합니다. 그래도 진실을 향한 극한의 중도를 표방하는 극중TV에서 발걸음을 멈출 수는 없겠지요.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토끼탈님, 김조영 성우님 고생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