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여덟번째날

크레이들마운틴 국립공원(2019.5.11)

by 박달나무

이미 8주 동안 호주 전역의 국립공원에 출입할 수 있는 티켓을 샀기 때문이라도 크레이들마운틴 국립공원은 또 다시 갈 명분이 있다. 인공적이지 않으면서 관리가 기막히게 잘 된 곳이다.

하지만 아이들 입은 이미 댓발이다. 여러 시간 걸을 생각하니까 일단 거부의 뜻을 보인다. 언제나 그랬다. 그리고 언제나 걷기를 마치면 좋은 기분으로 웃는다.

60902005_542249746302111_1465761012572487680_n.jpg

출발할 때 괜찮은 날씨가 30분이면 도착하는 길에서 두 번 바뀐다. 보슬비가 내리다가 소나기가 내리다가 다시 화창해진다. 비가 내리자 아이들이 노래를 하면서 깔깔거린다. 내가 비 오면 집으로 유턴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차장에 대고 셔틀버스 티켓을 수령한 후 도브호수(주차장에서 8km)에 닿으니 더 없이 화창한 날이 되었다. 그후 걷는 동안에도 흐렸다 개었다 변덕이 죽 끊듯....

어디로 걸을까 하다가 즉흥적으로 호수 한바퀴를 돌기로 했다. 빨리 걸으면 2시간 반, 천천히 걸으면 3시간 걸리는 코스다. 빙하가 녹아서 고인 물이고, 끊임없이 주변 산에서 맑은 물이 유입되는 도브호수를 가까이 곁에 두고 걷는 것이라 지루하지 않다. 아이들은 3시간 가까이 걷고 나서 1시간도 안 걸은 것 같다고 하더라.

이곳이 태즈매니아의 대표적 자연환경이고 UN 세계자연유산에 등록된 네 군데 태즈매니아 지역 중에서도 으뜸인 곳이다. 이번에 네 번 째 방문인데 아이들이 익숙하니까 점점 거부감이 없다.

역시 다 걷고 나서는 싱글벙글이다. 걸을 수록 아이들 컨디션이 좋아진다. 그러니 자꾸 걷게 된다.

60445743_542249796302106_3755814966091841536_n.jpg

워킹 트랙 중 신기하게 생긴 나무를 만났다. 즉각 앤서니 브라운의 <터널>이 떠올랐다. 헨델과 그레텔을 모티브로 창작한 그림책 <터널>은 마법 같은 책이다. 깊은 숲에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나무들이 나온다.

내가 바라는 것은 신기한 장면이나 사물, 현상을 보면 놀라거나 감탄하거나 즐거워하기를 익히는 것이다. 기묘하게 생긴 나무 몸통을 보고도 마치 아무 것도 보지 않은 것처럼 반응하는 건 아쉽다. 하지만 이런 감정의 변화를 가르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저 자꾸 다니면서 스스로 경험하도록 하는 수밖에 없다.

풍광이나 낯선 사물과 생물들을 보고 놀라지 않는 것은 대범한 것이 아니라 아직 자아 형성이 덜 된 것을 말한다. 자아 형성은 자기만이 이룰 수 있는 작업이다. 어른 교사는 그저 기다리는 것만 가능하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박달나무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더 나은 세상을 꿈꿉니다

168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총 91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