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에 해가 뜨는 동네_로그로뇨 (2019.10.21)
1.
마드리드에서 고속버스로 로그로뇨로 왔다가 숙소를 잘못 잡아서 깔라오라에서 2박을 하고 다시 리오하 지역버스로 로그로뇨에 들어왔다. 깔라오라에서 하루 더 머문 건 배움여행7호를 마무리하기 위해서.... 몸과 영혼을 갈아넣어 잘 마쳤다. 디자이너가 만져서 인쇄소에 넘기면 끝. 책 받아서 독자에게 배송도 디자이너가 알아서 처리한다. 생각할수록 신기한 일이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거대한 쇠뭉치가 지상 10km 상공에 떠오르는 걸 신기하게 생각했지만, 1만 km 떨어진 나라에서 편집한 화일을 카톡으로 보내면 한국의 가정집 피시로 가공해서 화일만 인쇄소에 보내고, 실물 종이책이 배달된다는 게 더 신기하다. 책은 가장 먼 곳은 노르웨이로 날아간다.
2.
호주갈 때 새로 구입한 노트북 컴퓨터는 배움여행 7호를 잘 만들고 홀연히 사라졌다. 집 나간 고양이처럼.... 당일 아침에 아내가 물건 잃어버리는 꿈을 꾸었으니 조심하라고 연락 했음에도 불구하고 노트북은 분실 운명이었나보다. 배낭에 노트북을 넣을 형편이 아니라 손에 들고 다녔는데-이러다 잃어버리지 싶었다. 공항에서 잃었다가 찾았고, 바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고 두고 나오면 주인이 들고 뛰어오고 했으니-어느 순간 사라지고 없다. 기억을 더듬으니 지도를 펼쳐서 목표를 찾느라고 잠깐 내려놓은 일이 떠올랐지만 아이들과 한참을 되짚어 찾아도 허사였다. 원래 가지고 오지 않을 물건이었는데 원고 편집으로 부득이 들고 왔더니 결국 헤어진 것.
그런데 나보다 아이들이 더 울상이다. 장시간 걷는 길에 유일한 낙이라고 기대했는데 물거품이 됐다는 거다. 걷다가 숙소에 들어가서 유튜브를 조금이라도 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기대 목록에서 확실히 삭제하니까 아이들은 기력을 회복한다. 다른 놀이나 소일거리를 찾더라.
나는 작년 스페인 걷기 30일 동안 매일 빠짐없이 일기를 썼을 때 엄지로만 글을 쓰려니 불편이 많아서 이번엔 노트북 자판을 두드려 효율적으로 기록을 남기려고 했었다. 다시 엄지 자판을 쓰는 일 말고는 노트북 없어서 불편할 건 없다. 배움여행 마무리한 후에 잃어버려서 천만다행이라고 오히려 아이들이 날 위로한다. 갈수록 볼수록 신기한 녀석들이다. 그러고보니 세상은 신기한 일 투성이구나!
3.
로그로뇨는 개발되기 이전의 춘천 느낌이다. 인구 16만 명에 도시 기능을 제대로 갖춘 리오하 지방의 캐피탈 시티지만, 다운타운은 손바닥만하다. 로마시대에 중요한 기능을 한 지역이란다. 끝없는 평원 위에 도시를 건설했다. 로마시대 건물은 없겠지만 한 걸음만 걸어들어가면 눈으로 봐도 100년 이상된 집들이 즐비하다.
아이들은 시내에서 우동집(프랜차이즈 일식집; 우동이나 돈부리를 파는데 인테리어가 똑같고 가격이 비싸다)을 발견하더니 “저거 먹을래요” 한다. 아이들 우동 한 그릇씩... 나는 작은 맥주 한 병 마셨다. 스페인에 와서도 사흘을 꼬박 붙들고 있었던 잡지를 마감한 의미로다가.... 우동 두 그릇에 맥주 한 병인데 계산서가 무겁다. 해외에 나가면 돈이 줄줄 샌다더니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이제 걷기 시작하면 돈 쓸 일이 거의 없다. 알베르게(순례자를 위한 숙소)비용, 햄과 치즈를 넣은 바게트, 오렌지쥬스, 내가 마시는 커피-매일 정해진 가격만 지불한다. 모두 저렴한 비용이다.
시하 침낭도 하나 샀고, 200유로 지폐는 가게에서 손사래를 치는 큰 돈이라 작은 단위 지폐로 교환도 했다. (도시라서 가능) 공립 알베르게에 들어와 카미노 패스포트도 구입(일인 2유로)했다. 카미노 패스포트(끄레덴시알)에 지나는 곳마다 확인도장을 받아야 산티아고 도착해서 수료증을 받을 수 있다. 일년 새 공립 알베르게 숙박비가 올라서 일인당 7유로가 됐다. 1~2유로씩 오른 것. 사립 알베르게는 10~12유로란다. 작년에 16유로 알베르게를 이용한 적도 있다. 10유로가 넘어가면 예산부족이라 주로 공립 알베르게를 이용해야 한다. 공립의 가장 큰 문제는 난방에 있다. 요즘이라면 난방이 없다. 새벽엔 추운데.... 그리고 공립에서는 와이파이를 기대하기 어렵다.(와이파이가 있다고 써놓았지만 제대로 작동하는 걸 못봤다)
순례자의 상징 카미노 조개도 하나씩 샀다. 다행히 아이들이 이곳 스페인에 대한 기대가 커지는 걸 느낀다. 내가 하루종일 방에만 있어도 선생님 작업 방해하면 안되겠지 하며 조용조용 지낸 아이들이다(그렇게 변했다)
4.
딱 10년 전 9월에 도시형 대안학교가 시작됐다. 내가 추진한. 나보다 딱 열 살 선배가 함께 출발했지만 한 달도 안돼서 헤어졌다. 독하게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분은 새로운 교육과정에 대한 철학을 공유하지 못했고(오랫동안 입시학원 수학담당) 아이들과 어울리고 감성을 공유하기에 너무 나이가 많았다(고 당시 생각했다) 이제 내가 그 나이가 됐다. 겨울에 반바지 반팔 차림이라도 아무 문제 없었지만 10년이 지나니 가을날씨에도 관절에 한기가 들어오는 걸 느끼게 된 것이다.
우하하하 ~ 어이가 없어서 웃음(눈물도 함께)이 나온다. 그래서 함께 하는 두 아이에게 정성을 쏟는다. 얘네가 마지막 작품이다. 매우 아주 엄청 귀한 아이들.... 요즘 귀여운 짓만 골라서 하니 더 예쁘다(반어법 전혀 아님)
5.
이곳의 위도가 43도.... 아침 8시에 희뿌옇게 동이 튼다. 9시는 돼야 환해진다. 현재 새벽5시 반이다. 아이들 깨워서 서둘러 카미노 첫발을 내딛을 예정.
750km 출발합니다. 많은 응원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