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청년에게 태극기란 무엇인가_카카벨로스 (2019.11.13)
1.
아침 8시에 걷기 시작하려고 밖에 나왔더니 길이 젖어있다. 스페인은 신기하게도 밤에 비가 오고 아침이 되면 개는 경우가 많다. 작년 봄에도 거의 그랬다. 서쪽으로 갈수록 분명한 날씨의 특징이다. 이제 곧 카스티야 지방을 지나 마지막 갈리시아 지방에 들어간다.
하늘에 뜬 둥근 천체가 해인지 달인지 잠시 헷갈렸다. 서쪽 땅 아래로 내려가기 직전의 보름달이었다. 사진으로는 다르게 보이지만 맨눈으로는 태양처럼 보였다. 어차피 강렬한 붉은 달빛은 태양빛의 반사인 걸....
2.
아이들이 갑자기 제안했다. 까르푸에 다시 가보고 싶다고 한다. 왜? 가지고 싶은 게 있는데 눈으로라도 담아오고 싶어요.... 그 말에 말릴 수가 없었다. 까르푸는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다. 길이 매우 단순하다. 지도를 보여주고 잘 찾아가고 잘 돌아오라고 말했다. 나는 여기서 짐 지키며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다. 아이들은 5유로를 받아들고 씩씩하게 사라졌다. (5유로는 군것질값)
묵었던 알베르게가 함께 운영하는 bar가 문을 열길래 들어가서 기다렸다. 밀린 일기도 쓰고 커피도 마시니까 행복하다. 아이들은 약속한 11시를 지나 11시40분에 돌아왔다. 5유로를 그대로 가져왔다. 만족한단다. 그럼 됐지.
bar에서 핫초코 한 잔씩 마시고 출발한다.
2.
까르푸에 간 아이들을 기다리는데 등 뒤에서 한 청년이 휙 지나간다. 내가 반대편을 바라보고 이어폰을 끼고 있어서 청년이 다가오는 걸 모르고 있었다. 지나간 뒤에 보니 그의 배낭은 태극기로 망토를 걸치고 있는 거다. 너무나 선명하고 반듯하게 붙들어 맸다.
작년 올해 통틀어 두 달 동안 태극기 또는 자국기를 배낭에 붙이고 걷는 순례꾼을 본 적이 없다. 최근 배낭에 붙은 태극기를 두 번 목격한다.
번거로운 설명대신 일본인이 일장기를 배낭에 붙이고 걷는다고 생각해보자. 미국인이, 중국인이 성조기와 오성홍기를 붙이고 걷는다고 상상하면 어떤가. 배낭의 주인이 국기를 통해 발신하고 싶은 강렬한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한국 청년은 무엇을 발신하고 싶은 것일까. 그건 애국심의 발로인가. 알 수 없다. 하지만 걱정스러운 상상이 든다. 국경으로 구별되는 피플의 얼굴이 아니라 국기라는 기호로 사람들의 면면을 대신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한다. 나는 한국 청년들에게 전체주의가 부활하는 게 아닐까 걱정하는 것이다.
3.
또 나왔다. 이태리 여행 타령.
이번엔 터키 아이스크림이 발단이다. 태호가 나비축제를 꺼냈고, 시하가 반딧불이축제 때 먹은 터키 아이스크림 돈두르마 레시피를 읊었고, 내가 시하의 다양한 상식에 혀를 내둘렀다. 태호가 다시 케밥을 거론하면서 터키가 어디냐고 물었고, 그리스 옆에 있다고 하니 터키에서 유명한 게 무엇이냐고 재차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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