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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물여섯번째날

우리 엄마도 날 임신했을 때 힘든 일이 있었을까요_트라바델로(11.15)

by 박달나무

1.


이제 비는 운명이다. 산티아고까지 비와 함께 걸어야할 듯. Bar에서 만난 한국인 대학원생도 시하와 같은 브랜드 고어텍스 방수 트레킹화를 신었지만 발이 다 젖었다고 했다. 망사운동화를 신은 내 발보다 시하 발이 더 젖었다. 그렇다면 ‘아이더’ 브랜드 제품은 욕을 먹어야 한다.


베가 마을을 7km 남기고 트라바델로 마을에서 묵는다. 충분히 베가에 갈 수 있고, 베가에 다양한 알베르게가 있지만 내일 오후 태호 아빠를 베가에서 만나서 자야하기 때문에 11km만 걷고 트라바델로에서 알베르게에 들었다.


트라바델로는 매우 작은 마을이지만 까미노 순례길이 지나가기 때문에 여러 알베르게와 바르가 있다. 겨울이라 알베르게 한곳만 문을 열었다. 관리자가 수사 필이 나는데 매우 친절하다. 나무와 숯을 때는 난로가 특이하다. 화덕과 보일러 역할을 함께 한다. 저녁이 되니 비가 눈으로 바뀌고 기온이 0도로 내려간다. 해발이 600미터로 비교적 높은 지대라 그렇다. 나무를 때서 라디에이터에 더운 물을 보내니 그나마 견딜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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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게에서 100미터 떨어진 바르는 문 바깥 칠판에 한글로 또박또박 “라면을 잘 끓여요. 밥과 김치도 드려요”하고 써있지만 영업하지 않는다. 두번 째 찾아갔더니 내일 오전 10시부터 영업한다고 말한다. 아이들 실망이 크다. 덕분에 폼페라다 까르푸에서 장 본 걸 오늘에야 다 먹었다. 내일부터 비닐 봉지를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 달걀과 컵라면 부피가 커서 배낭에 넣을 수 없기에 며칠째 들고 다녔다.


2.


걷는 도중에 페레헤(Perexe) 마을의 유일한 바르에 들어갔다. 비도 피하고 몸도 녹일 겸 핫초코 한 잔씩 마셨다. 여기는 순례꾼이 아니면 이용할 사람이 없다고 봐야한다. 민가가 4~5채 정도. 이미 여섯 명 정도가 테이블을 둘러 앉아 시끌벅적하다. 모두 20대로 보인다. 한국인 청년도 한 명 끼여있다. 나머지는 유럽인으로 보인다. 이 친구들이 독주를 스트레이트로 여러 잔 마셔서 흥이 오를대로 올랐다. 게임에 진 젊은 여성이 바지를 내리는 벌칙을 수행해서 순간 당황했다. 등산복 팬츠 안에 레깅스를 입고 있었다. 함께 노래를 제창하기도 해서 바르 분위기가 아슬아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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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호가 구경하다가 분위기에 덩달아 흥분한다. 내가 살짝 인상을 쓰니까 태호도 현재 상황을 부정적으로 보게 된 것이다. 검지와 중지로 V자를 만들어 자신의 눈을 찌르는 시늉과 상대방 눈을 찌를 듯한 동작을 번갈아한다. 어디서 본 건 있다. 태호는 애교지만(평소에 나에게 하듯이) 제3자가 보기에 명백한 도발이다.


깜짝 놀라서 행동을 그만두게 하고 낯선 사람에게 그런 행동을 하면 매우 위험한 일을 당할 수 있다고 얘기했다. 태호에게는 좋은 경험이다. 험한 세상이지만 태호로서는 알지 못한다. 술 취해 흥분한 외국인 청년들이 앞에 있으니 내 잔소리가 효과적으로 태호에게 각인되었을 거다.


특히 중학생들에게 장난이라고 생각한 행동이 엄청난 폭력 피해를 당할 수 있다고 조심시켰다. 동네에서 형 아우 서열을 경험한 적이 없어서 무서운 걸 모른다. 어쩌겠나. 이런 것도 가르쳐야 한다. 현실은 현실이다.


3.


시하가 콩알탄을 아냐고 내게 물었다. 물론 알고 있지. 콩알탄을 문구점에서 파냐고 다시 묻는다. 파는 걸로 알고 있어. 콩알탄을 복도에 뿌리고 지나가던 아이들이 모르고 밟도록 해서 깜짝 놀라게 한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얘기가 시작됐다.


“그건 매우 위험하고 비난 받을 일이야. 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내가 경험한 일인데 바지 주머니에 콩알탄을 잔뜩 가지고 있다가 주머니 안에서 터져서 화상을 크게 입은 아이도 있었다. 학교와 선생님 입장에서 콩알탄은 절대 금지야. 그보다 더 나쁜 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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