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이 파탄나면 주도권을 내가 쥘 수 있다_오세브레이로 (11.17)
1.
아침에 길을 나서려는데 오스탈 주인이 기존 까미노는 폭설로 위험하니 우회포장도로로 가야한다고 말한다. 우리 전체 일정에서 가장 힘겨운 날이다. 해발 1700 고갯길을 넘어야한다. 이미 해발 600미터 지역에 있는 것이라 고도로 약 1000미터를 오른다. 우리가 출발하는 곳은 비가 왔지만 산에는 눈이 많이 쌓인 것. 오다그치다 반복하는 비를 맞으며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올랐다. La Laguna 마을은 레온 지방의 마지막 마을이다. 유일한 식당에 각국 사람들이 가득이다. 일군의 이태리 순례꾼들이 기타 치고 노래부르는데 절창이다.
화덕에 즉석에서 구운 돼지갈비를 내주는 메뉴를 먹더니 아이들 기분이 최고조로 오르고, 나머지 길에 룰루랄라 가볍게 걷는다.
2.
그리고 곧 갈리시아 지방으로 들어섰다. 스페인어로 적힌 지명 간판이 스프레이 페인트로 일부 지워지고 갈리시아 말로 고쳐진 게 많다. 갈리시아에서는 J 대신 X를 쓰는 경우가 많다. 19세기까지 갈리시아 왕국이 천 년 이어졌었다. 갈리시아 지방의 학교는 갈리시아 말로 수업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점점 갈리시아 말은 사라져가고 있단다. 현재 갈리시아도 독립하겠다는 목소리가 있지만 카탈루냐나 빌바오 보다는 적극적이지 않다. 갈리시아 첫 마을 오세브레이로의 알베르게에 들었다.
3.
일요일이라 눈 쌓인 오세브레이로 마을은 곳곳이 썰매장이다. 가족 단위로 상당한 사람들이 북적인다. 차량이 뒤엉켜 오도가도 못하는 장면도 있었다. 하지만 바람은 거칠고 몹시 추운 기온이 아니라 곤죽이 된 쌓인 눈은 거리를 개울로 만들었다. 우리 일행은 괴로운 환경이다. 샤워 후 알베르게에서 마을 중심부에 있는 식당에 나가는 게 곤란해서 저녁식사를 포기했다. 늦은 점심에 고기를 든든히 먹어서 그다지 아쉽지 않다.
4.
태호는 아빠와 함께 걷는 길이 즐겁다. 나에게 쏟아내던 질문을 아빠에게 한다. 아빠도 스페인에서 아들과 함께 있다는 상황이 감격스러운 듯 하다. 당연히 모든 질문에 성의를 가지고 응대한다. 아름다운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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