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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달나무 Aug 04. 2017

박동섭 영화특강 후기(프롤로그)

오즈 야스지로의 <안녕하세요(お早う)>를 처음 만나다

  지난 23일 저녁에 스케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8시 반 KTX를 타고 부산으로 출발~
  2시에 카페 헤세이티에서 있는 박동섭 독립 연구자(이하 선생님)가 진행하는 영화 특강을 듣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나는 오후 4시 이전에 헤세이티를 나와서 부산역으로 잽싸게 달려가 그 비싼 KTX를 타고 서울로 와서 밤 8시 이후 프로그램에 참가해야 했다. 때문에 정오에 박 선생님을 만나 점심을 함께 하며 필요한 용건도 전달할 요량이었다. 
  그다지 부산을 직접 갈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게 맞겠다. 하지만 나는 지쳐있었다. 휴식이 필요했다. 경험상 기차 안에서 3시간 가까운 시간이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나 또한 별도의 욕망을 발산할 수 없도록 하는 공간적 제약이 마음을 편하게 하는 장치라는 걸 알고 있었다. 존경하는 선생과 밥을 먹는다든지, '말랑말랑'한 영화 얘기를 듣는 것도 회복적 휴식이 될 터가 아니겠는가. 서울을 잠시 떠나는 것만으로도 선선한 바람이 부는 듯한 것이다.
  "OO야~ 아빠가 부산에 가서 오즈 야스지로 감독 작품 <안녕하세요>를 분석하는 강의를 듣고 올 건데 같이 갈래?"
  전날 저녁을 먹으며 대학생 딸에게 물었다. 관심이 있을 듯해서.
  "오즈 야스지로에 대한 평론은 차고 넘칠 텐데..... 나 내일 정기 세미나 때문에 못 움직여요."
  "박동섭 선생님 강의는 다른 측면이 있지. 시네 21 글과 전혀 다르기 때문에 아빠가 부산까지 가는 거야."
  "암튼 잘 다녀오세요."


  딸과 어딘가 동행한 것은 아이가 초5학년 때 2박 3일로 둘만의 여행을 한 이후로 한 번도 없었다. 가고 오는 길에 속내도 들어보고, 내 사정도 말하고 싶었지만 '다음 기회로....' 
  뿐만 아니라 <비정성시> <호남호녀> 등의 허샤오시엔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해석까지는 엄두도 못 내고) 대학교수의 글에 실망했던 바, 영화를 해석하는 철학적 작업을 맛보도록 하고 싶었던 동기도 있었다. 어쨌든 헤세이티 딸 동행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
  박동섭 선생님은 최근 번역서를 하나 냈다. 일본의 33살 젊은 수학자 모리타 마사오가 쓴 <수학하는 신체> 번역했다. 박동섭 선생님이 '수학'과 별다른 인연이 없을 텐데 하면서 읽었다. 읽으면서 실실 웃게 됐다. "이건 평소 박동섭 선생님 강의 내용이잖아. 설마 번역을 하면서 원문에 없는 얘기를 마음대로 넣어놓은 건 아니겠지." 

  같은 얘기를 메신저로 박 선생님께 보냈더니 답신이 왔다.
  "비고츠키가 수학자로 환생했으면 이런 식으로 글을 쓸 거라고 생각하면서 번역하였습니다."


  너무나 매력적인 <수학하는 신체>의 저자 모리타 마사오를 한국에 데려오는 일을 의논하겠다는 것이 박 선생님을 만나는 첫 번째 동기였다. 그리고 우치다 타츠루 선생님의 지난달 신간 <곤란한 결혼(困難な結婚)>을 번역한 원고를 드리려고 챙겨가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은 모리타 초청에 대한 구체성이 떨어져서 깊은 얘기가 될 수 없었고, 서울로 복귀하느라 허둥대는 바람에 우치다 타츠루 번역 원고를 전달하지도 못하고 왔다.
  정신없어서라기 보다는 첫 번째 부산행 '출장' 목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박동섭 선생님과 비즈니스적인 얘기를 하려고 했던 첫째 목적이 후순위로 밀리고 영화 <안녕하세요(お早う)> 청강이 매우 중요한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변화는 박동섭 선생님이 보내준 영화 파일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틀 전 밤에 '보고야 말았기' 때문이다. 
  왜 1959년 구닥다리 일본 영화를(나는 오즈 야스지로에 대한 사전 정보가 전혀 없었다) 보다가 박동섭 선생님은 벌떡 일어났을지 충분히 이해했다. 나도 똑같은 행동을 했으니까. (2016.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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