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돌산2

기꺼이 교복(敎僕)이 되리니

by 박달나무

4월 19일(화)

알람을 맞춰놓았지만 6시도 안돼서 눈이 떠진다. 서울보다 해가 일찍 뜨는 느낌이다. 창은 이른 아침이 아닌 한낮 같이 환하다. 바람 덕에 체감 온도는 1~2도에 불과하다. 방바닥이 뜨끈뜨끈해서 안심이 된다. 두 방에 나눠서 자는 녀석들은 편안한 모습이다.

일단, 아침식사를 해결해야 한다. 밥을 기계가 하니 가능한 묵힌 밥 아닌 갓 지은 밥을 먹이고 싶었다. 그래서 어제저녁 밥을 한 끼 분량만 했다. 그 생각이 바뀌었다. ‘보온 잘 된 밥이니 세 끼까지는 커버되잖아’ 밥솥은 30인분이다. 20인분이면 세 끼 먹을 수 있으니 하루치 밥을 한 번에 하자고 마음을 바꾼 것이다. 그러다 다시 타협하여 2끼분을 하기로 했다.

이런 마음의 갈등이 있는 건 떠나올 때 각오 때문이다. 주변에서 모두 굳이 여수까지 내려가야겠냐고 물었다. 아내도 같은 얘기를 반복한다. (남편들은 말하지 않아도 아내가 알 것이라고, 아니 아내라는 존재는 말하지 않아도 남편의 속마음을 헤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내에게도 주변 사람들에게도 여수에 내려가는 이유를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혹자들은 아이들 앞세워 박 선생이 바람 쐬러, 유람하러 가려나 보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오랜 초등교사의 경험으로 볼 때, 상당수 학부모는 초등(중등이 아닌 초등교사만) 교사들이 아이들과 놀면서 월급 타 먹는다고 생각한다. 내가 병아리 교사 때는 거품을 물며 ‘하루만 교실에 와서 교사 노릇해보라고 해’라 하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치기다.

여수에 내려온 6명의 친구들은 겉보기엔 가정환경이 좋아 보이지만 아이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부모 모두 남들이 부러워하는 유명 대학 출신에 전문직 종사자이다. 인물도 훤하고 경제사정도 좋다. 60년 대 출생했다. 이들의 상황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다. 내가 지적하는 지점은 6.25이다. 6월 21일이 하지로서 태양이 가장 높이 뜨고 낮이 가장 긴 날이지만, 그로부터 한 달 후에야 가장 뜨거운 휴가시즌이 된다. 지표면이 달궈지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한국은 세계사에 유래가 없는, 2차 세계대전 전체 희생자보다 더 많은 민간인이 죽은 한국전쟁을 20세기에 겪는다. 어떤 공포영화보다도 끔찍한 실제상황을 겪은 사람들 마음속은 무엇으로 채워졌을까. 6.25가 전후 문학을 낳았다지만 어떤 소설도 6.25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목숨을 건지는 것이 최고의 미덕인 미증유의 시대를 관통한다. 생각과 행동이 1만 년은 반복해야 유전자에 새겨진다는데 6.25는 한국 사람의 DNA를 단박에 바꿔버렸다. 바뀐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베이비붐 초기가 아닌 말기 사람들이다. 바로 60년 대 출생한 아기들이 해당한다. 지표면이 달궈지는 10년의 시간이 필요했을 게다.

60년 대 출생한 사람들은 총알과 죽창의 공포를 모른다. 하지만 죽지 말고 살아야 한다는 뇌파 신호에 지배당하며 성장한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이 글은 23일 새벽에 쓴다) 4.19구나. 386세대는 4.19세대(현재 70대~80대 초반)와 다른 유전자를 갖고 있다. 마산의 김주열과 신림동 사거리에서 분신한 서울대 열사의 DNA신호는 다르다는 생각이다.

우리 아이들의 부모는 그런 생존경쟁에서 승리자이다. 그런 경험이 자식에게 당연히 하나의 길만 기대한다. winner의 길이다. 삶은 winner와 loser로 나눠지는 것이 아닌데, 세상의 모든 것이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로 보인다. 마트에서 올리브유는 카놀라유(보통 식용유) 보다 같은 용량일 때 4배 비싸다. 올리브유는 winner유, 카놀라유는 loser유. 50평 아파트는 winner트, 40평 대 이하는 loser트. 루이뷔통은 winner똥, 짝퉁은 loser퉁. 벤츠/아우디/베엠베/렉서스는 winner차, 소나타는 소나 타는 loser차로 확실한 각인이다.

코딱지는 면역물질 덩어리이고 기생충도 인간의 면역체계에 도움을 주는 것이지만 그런 건 loser의 상징이다. 아토피로 고생해도 수백만 원짜리 아토피 전문 화장품을 소비하는 것이 winner 스럽다. 자동차 문명이 앗아가는 억울한 생명에 대해 마음 아파하는 것은 loser의 몫이다. winner는 12개의 에어백이 동시에 터지며 완벽하게 생명을 지켜준다는 포르셰를 사기 위해 목숨을 건다.

E대 나온 엄마는 위에서 말한 위너냐 루저냐만을 따지는 세계관을 저질스럽다며 경멸하며 자식에게는 명문대 입학을 종용한다. 그것이 자식을 위한 확실한 진로지도라고 생각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자식이 어떤 대학에 가느냐가 엄마 자신의 상황을 결정한다. 위너인가, 루저인가를. 특히 돈벌이하지 않고 자녀교육에 매진하는 엄마들에게는 치명적이다. 더구나 제도 학교에서 밀려나고 대학 입학이 어려운 처지에 내 아이가 놓여있다면? 전업주부 엄마 입장에서는 인생 헛산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분명히 해 둘 것이 있다. 천민자본주의 노예가 된 부모가 지금의 아이들을 만들었다는 것이 아니다. 생존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어른들이 아이들 문제 원인이라는 것이 아니라는 거다. 아이들의 문제는 부모가 아닌 외부 영향과 선천적 성향이 원인이다.

문제는 엄마 사자가 새끼 사자를 절벽에서 떨어뜨리는 것이 새끼에 대한 사랑이라고 믿어버리는 것이다. 엄마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현실도피다. 실제로 사자는 새끼를 절벽에서 밀지 않는다. 강한 놈만 살아남으라고 생존미로에 밀어 넣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과연 우리 아이들 엄마는 정말로 자식을 사랑할까. 그리고 이번 장기 캠프에서 잘 적응하고 쑥 자라서 돌아오기를 진정 바랄까. 너무나 당연히 그럴 것이다. 적응 잘 하고 성숙해서 돌아오기를 바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모르게 정반대 마음도 작동한다고 보았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였으나 아이가 문제 극복을 하지 못한다면, 적어도 엄마의 육아 태도에 원인이 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1박 2일의 “나만 아니면 돼” 심리가 60년 대 출생 엄마들에게서 보인다. 잘못된 길을 너무 많이 와버렸다. 돌아가기에 늦었다고 생각될 정도로.

교사 생활을 하면서 목장 옆에서 2년을 산 적이 있었다. 소들도 서열이 있고 위계질서가 엄격했다. 방목하는 소들은 대장 소가 먼저 먹어야 다음 서열 소가 먹이를 먹을 수 있다. 서열 막내로 정해진 소는 마지막으로 먹이를 먹는 것이 아니라 아예 먹을 수가 없다. 윗 서열 소들이 먹지 못하게 방해를 하기 때문이다. 먹지 못하니까 성장도 느리다. (재밌는 것은 막내 소가 먹지 못하도록 방해할 때 대장 소는 나서지 않는 것이다. 그런 상황을 직접 목격하며 여러 가지 소회가 들었다) 그러면 목장주가 막내 소를 별도 공간에 옮기고 더 좋은 먹이를 준다. 한동안 그러면 여타 소들만큼 성장하고 나중에 합사 하더라도 서열 경쟁에서 밀리지 않는다고 목장주가 말해주더라. 감동인 것은 그다음이다. 그렇게 당해본 막내 소는 약한 소를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기억은 그냥 떠올라서 풀어본 것이다. 나는 동물의 왕국을 보여주며 인간사회질서를 옹호하려는 의도처럼, 자연질서를 소재로 한 예화로 사람 문제를 풀려고 하는데 반감이 있다.

존귀한 존재로 충분히 보살펴지는 것. 그 과정에서 자기 소중함을 확인하는 것. 그리고 누구에게도 여유를 갖고 상대할 수 있도록 성장하는 것이 내가 바라는 캠프의 목적이다. 목적 달성을 위해 세련되게 절벽에서 미는 부모 곁을 잠시 떠나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니 어찌 한꺼번에 한 밥을 여러 끼 먹일 수 있겠는가. 기쁜 마음으로 존귀하고도 존귀한 저들의 교복(敎僕)이 되리니~ 내 귀차니즘과 싸워 2끼 밥을 안치기로 타협한 배경을 설명하느라 뒤엉킨 채 사설이 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