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돌산3

상대적 우월감으로 부추긴 자신감은 모래성에 불과하다

by 박달나무

다시 김치찌개를 끓이고 계란 프라이를 했다. 어제는 계란 프라이를 서로 먹겠다고 하더니 오늘은 별로 반응이 없다. 근호는 고추참치 4캔을 모두 열어서 2.5캔을 먹고 나머지는 남긴다. 자기가 선택한 아이템은 자기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고추참치는 근호 자신의 것이니 마음대로 먹고 남겨도 상관없다는 투다. 재밌는 생각이다.

아침을 먹고 치우니 점심은 뭘 먹나 걱정이다. 서울에서 가져온 티볼(야구+골프 성격) 장비를 꺼내서 운동장으로 가져갔다.

3:3으로 나눠 게임 요령을 알려주고 간이 시합을 했다. 현승이가 제대로 배트를 휘두른다. 나머지는 제대로 공을 맞추지 못한다. 날아가는 공을 잡는 것은 더더욱 어려워한다. 움직이는 공을 보는 눈과 뇌의 근육에 대한 명령, 팔과 손가락의 반응이 조응하지 못한다. 경험의 부족이 레저에서도 나타난다. 하지만 배드민턴에서도 증명됐듯이 반복하면 금방 적응하는 아이들이다. 워낙 바깥 놀이의 경험이 없을 뿐이다.

근호가 축구로 종목을 바꾸자고 제안한다. 그래 볼까.

왕년 생각만 하고 1:3으로 경기를 신청했다. 박 선생(1): 현승, 근호, 희수(3) 종찬, 지훈, 영익은 방으로 들어갔다.

운동장을 두 번 왔다 갔다 하니 체력이 바닥나는 느낌이다. '내가 이렇게 달라졌구나'

게임에서 이길 생각도 없었지만 질 생각도 없었다. 현승이가 골을 먼저 넣는다. 티볼에 이어 운동을 한가닥 하는 친구로 자리매김해지는 순간이다. 상당한 자신감을 보인다. "제가 한 운동하지요. 헤헤" 그러나 체력이 워낙 저질이다 보니 나보다 더 힘들어한다.

경기를 포기할까 생각했는데 영익이가 운동장으로 컴백. 안 하겠다는 녀석을 내 편 골키퍼로 붙잡아놓고 게임을 속개~ 한결 편안하니 역전이 가능해졌다. 어린 시절 대부분 남자아이가 그렇듯 운동장과 동네 마당에서 노는 것이 사는 것이었다. 이 녀석들하곤 다른 세계에서 살았던 것이다. 2:2로 동점 스코어를 만들고 승부차기로 끝장을 보자고 유도했다. 우리 편은 영익이가 골키퍼를 하라고 했더니 손사래를 친다. 억지로 골대 앞에 세웠다. 현승이의 활약으로 박 선생 팀은 패배~ 한번 더 현승이 주가가 올라간다. 목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보인다. 여럿 중에서 자기가 돋보이는 것으로 존재감을 찾는다면 마약과 같다. 똑같은 이유로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현승이 목에 들어간 힘은 다음 날 근호와 족구를 하며 다친 자존심에 반대급부로 작용한다. 칭찬 인플레가 꼭 부작용을 낳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상대적 우월감으로 부추긴 자신감은 모래성에 불과하다. 주변 사람보다 내가 더 우월하다는 생각은 내공으로 자리잡지 못하더라.

식사 준비와 설거지 때문에 아이들 곁을 떠나면 이 친구들도 놀이를 멈춘다. 선생이 접착제 역할을 해주고 수다를 떨면서 분위기를 띄워야 비로소 함께 산책이든 공놀이든 한다. 마치 초면으로 캠프를 시작한 친구들 같다. 교사로서 왕부담이다. 시간이 필요한 경우이다.

영익이 성공회대 청강으로 매주 화요일 저녁에 서울로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라 2시간마다 지나가는 버스를 타고 여수터미널에 같이 나갔다. 차표를 끊어주고 다음날 어떻게 수련원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 도상훈련을 여러 번 해서 숙지시키고 헤어졌다. 중고차 매매단지로 택시를 타고 가서 12년 된 승합 VAN(6 밴)을 구입했다. 전산화 덕분에 서울 사람도 바로 명의이전이 가능하단다. 다음 날 정비를 마무리하고 등록까지 마친 차량을 인수하기로 하고 이마트에서 쇼핑. 대략 산 먹을거리가 또 천 원 빠지는 20만 원이다. 물가 무섭게 올랐다.

어쩔 수 없이 택시를 이용해 수련원에 들어왔다. 종찬이와 근호가 한판 붙었다고(싸웠다고) 자진 신고한다. 희수가 짜증 나는 상황이었다고 고자질. 근호는 싸움을 즐기는 듯한 태도이다. 본인은 극구 부인하며 종찬에게 원인이 있다고 주장한다.

점심에 라면을 먹은 바람에 남은 밥으로 중국집 스타일의 볶음밥을 만들었다. 현승이는 밥 생각이 없다고 안 먹고 근호도 먹는 둥 마는 둥이다. 나머지는 배불리 먹었다.

오전에 한 축구가 부담스러웠나 보다. 피곤이 마구 밀려온다. 잠깐 누워있는데 근호와 현승이가 라면을 끓여먹겠다고 한다. 잠이 오는 상황이라 건성으로 그러라고 대답했다. 11시 넘어서 일어나 보니 현승이는 신라면블랙을 근호는 짜파게티를 끓여먹었다. 달랑 라면 2개 끓이면서 부엌을 심란하게 만들어놨다. 잠자리를 깔아주고 아이들을 강제로 재운 다음 수련원을 한 바퀴 돌았는데 더 심란한 것을 보게 된다. TV 시청할 수 있는 별도의 공간이 있는데, 라면을 그곳으로 가져가서 텔레비전을 보면서 먹었나 보다. 먹다 남은 라면 그릇, 바닥에 떨어진 젓가락과 면발 가닥들. 여기저기에 바나나 껍질, 과자 부스러기들, 휴지 뭉치, 찢어진 약봉지들이 뒹군다.

'이렇게 기본이 엉망인가!' 한숨이 나온다. 잠깐 잠든 내가 잘못한 것이지 하며 치우고 닦고 설거지했다. 다른 건 생각할 겨를 없이 잠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