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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달나무 Aug 06. 2017

오키나와 이동수업

미치쿠사(道草) 목장에서 2주일을 지내다

  지난 2일 오키나와로 날아와 이동수업 중입니다. 우리가 머무는 게사시 지역은 오키나와에서 로하스 지역으로 유명합니다. 로하스는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한 친환경 오가닉을 유지하는 시스템을 말하지요. 작년에 환경운동가 황대권(야생초 편지 저자) 선생도 다녀간 곳입니다.

  특히 게사시 만(灣)은 자생 맹그로브 군락지로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맹그로브 숲 사이로 카약을 타는 지역 청소년들이 부럽습니다. 우리도 7일 카약 체험을 하기로 했지요. 
  Uppama(넓은 해변이라는 뜻) 산호초 해변을 우리 아이들만의 놀이터로 사용하는 것이 사치 중 사치로 느낍니다. 바다에서 자유롭게 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자연환경이 선생이다."
목장에서 차로 3분만 가면 나오는 해변

  우리가 머무는 목장 학교는 그냥 "목장(Ranch)"입니다. 학교는 편의상 제가 붙인 말입니다. 대외적으로 OO학교에 간다고 설명해야 쉽게 프로그램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는 가르치려고 하지 않습니다. 가르치려고 하지 않으려는 의지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가르치는 게 뭐야? 그거 먹는 거야?" 이런 수준....^^;; 그야말로 우리가 평소에 떠들던 교육의 새로운 해석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건 교수-학습과정이 아닌 문화적 행위로서 교육을 말합니다. 
  우리야 특별한 경우에 해당하고, 평소 여기는 월/화/금에 운영합니다. 아이들은 일주에 3일만 오는 것입니다. 프랑스가 주 4일 수업을 실험적으로 한다는데, 여긴 주 3일 수업입니다. 수업도 앞에서 말한 것처럼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이 아닙니다.
  "필요하면 한다"
  오직 그것뿐.
  여기 교장 선생님(네기시 리호코)은 5남매를 낳았습니다. 맏이가 18살, 막내가 4살입니다.(일본은 만 나이로 말한다)
  아래 사진이 맏이 타오입니다. 이 친구는 일주일 전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말(馬)과 함께 생활하는 대안학교였고요. 위탁형이라 인근 학교에 일주일만 출석하면 고등학교 졸업장을 준답니다.


맏이 타오


  타오는 다음 주에 네덜란드로 떠납니다. 네덜란드 목장에 마부로 취직됐기 때문입니다. 네덜란드 말 한마디도 모른다네요. 가서 살다 보면 하게 되지 않겠냐고 합니다. 자신의 미래에 가슴이 뛴다고 말했습니다.
  며칠 동안 만난 타오는 매우 의젓하고 믿음이 가는 친구입니다. 목장일도 척척, 동생 돌보는 모습이 형이 아닌 아빠 수준입니다. 시스템을 바꾸면 누구나 이렇게 클 수 있고 살 수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진정 경이로운 아이들은 셋째(11살), 넷째(6살), 다섯째(4살)입니다. 4살 녀석도 한몫 단단히 합니다. 언제나 웃는 얼굴로 누구 하고도 잘 어울려 놉니다. 삽, 망치, 톱, 낫을 갖고 놉니다. 뜨거운 밥과 국을 직접 떠서 식탁으로 하나도 흘리지 않고 옮깁니다. 다 먹고 그릇을 정리하고 개수대에 제출합니다. 올해 초등학교 입학식에 참여(학교에 다니지 않지만 입학식은 하고 싶다고... 평생 한 번이니까)하는 넷째는 자기가 담당하는 밭을 돌보고 자기보다 덩치가 큰 개들을 관리합니다. 11살 소녀는 못하는 운동이 없고, 어른과 거의 같은 수준에서 일합니다. 셋다 언제나 웃고 있습니다. 부럽기 그지없어요. 덕분에 우리 아이들이 불평 없이 말똥을 치우고 먹이를 줍니다. 세 남매의 영향입니다.


셋째 유주와 넷째 후끼


막내 꼼짱

  제 딴에는 민폐가 되지 않으려고 우리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해댔습니다. 그런데 이곳 네기시 교장은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놔두라고 합니다. 목장 학교 어린이들하고 우리 아이들은 차이가 큽니다. 차이가 에너지라는 철학적 언급은 여기서 구현되기는 어렵지 않나 싶지요.

  여기 아이들은 정말 자유로운 영혼입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그 속에 질서가 있습니다. 갈등을 스스로 조절하는 질서, 큰소리로 얘기하지 않겠다는 질서, 웃으며 인사하는 질서, 아무도 차별받지 않는 질서가 확연합니다. 수십 년 아이들을 만나온 선생으로서 놀랍고도 부끄럽다는 느낌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단 3일 만에 많이 변했습니다. 단 3일 만에!!! 마음 같아서는 반년쯤 살면 좋겠습니다. 걸림돌은 비용뿐입니다.(어제 일본 정부의 지원금을 받아서 장기간 생활할 수 있도록 주선해주겠다는 목장 측 제안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위에서 말한 내용을 구현하려는 분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모두 아쉬웠습니다. 한국에서 자연적인 삶을 어린이 청소년에게 제공하겠다고 시도한 개인과 단체가 실패한 원인은 리더십의 변질과 느리게 살겠다는 의지를 용납하지 않는 이데올로기와 지리적 한계(독립적인 공간 마련의 어려움)에 있다는 판단입니다.
  오키나와 목장의 7살~11살 현지 아이들이 어른의 도움 없이(장작불 관리는 어른의 도움) 칼을 쓰고 밀가루 반죽을 치대서 피자 도우를 만들어 번철에 구워 먹는 과정은 신비롭기까지 합니다. 그 과정에서 흙놀이 아이들 때문에 흙먼지가 장난이 아니지만 아무도 아랑곳 않습니다. 저도 얻어먹었습니다. 맛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몇 개씩 먹더군요.(한 개가 손바닥 만함)
  내년에는 우리만의 철학을 펼칠 수 있는 목장 학교를 만드는 게 소원인데, 과연 뜻대로 일이 풀릴지 걱정입니다. 일단 행운의 신에게 빌어야겠습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억압에서 해방된 생활공간을 주소서~"


(20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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