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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달나무 Aug 06. 2017

문제 해결과 프레임

 아무런 불편이 없는 상태를 문제 해결로 본다면 세상에 해결책은 없다

  오키나와 게스트하우스는 가건물 수준인데, 한국처럼 봉당이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툇마루는 없습니다) 거기서 신발을 벗고 방으로 들어갑니다. 운동화와 샌들을 가지고 온 우리 아이들이 신발을 가지런하게 정리할 리 만무합니다. 신발이 어지럽게 놓여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 놈 저놈이 밟고 차다 보니 신발이 흙투배기가 되는 건 물론이고 한 짝이 없어지는 일이 흔합니다. 내 슬리퍼도 늘 안 보입니다. 언놈이 신고 가버린 것입니다. 아이는 자기 신발 한 짝이 없다고 징징대고....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정리정돈은 물론 안 되고 한 짝이 엉뚱한 데서 찾아지고, 아무렇게나 밟아서 흙투배기가 되는 신발 문제를 해결하는 해법을 위해 다음의 순서를 밟았습니다.
1. 잔소리를 엄청했습니다. 해법이 아닙니다.
2. 지금 우리가 처한 문제점이 무엇인지 최대한 친절하게 설명하고 신발 정리에 집중하도록 설득했습니다. 해법이 아닙니다. 
3. 협박했습니다. 해법이 아닙니다.
4. 내가 징징거립니다. 해법이 전혀 아닙니다.
5. 오기가 나서 빛의 속도로 정리 정돈합니다. 결과는 광속보다 빠르게 카오스 상태로 복귀. 해법이 아닙니다.



  그러다가 여기 목장 학교 교장 선생님 아이들을 보고 번개를 맞은 듯 아찔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프레임을 벗어난다는 건 그 자체로 혁명입니다.
  네기시 리호코 교장의 세 아이(만 나이 11살/6살/4살)는 신발을 거의 신지 않습니다. 모서리가 날카로운 잔자갈 밭도 아무렇지 않게 걸어 다닙니다. 맨발로 어디든 다니다가 거실로, 방으로 자유롭게 다닙니다.(게스트하우스 마당은 흙바닥) 아무도 제지하지 않습니다. 실내 바닥이 어떤지 상상이 들 것입니다. 언제나 버석버석 흙과 먼지가 밟힙니다. 비로 쓸어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 종일 비질만 할 수 없는 노릇 아닙니까. 
  이제는 저도 어쩔 수 없이 흙먼지 방바닥에 적응합니다. 적응하려면 아직 멀었지만.....
  그러니 자유로운 영혼들인 우리 아이들은 금방 맨발로 다닙니다. 발바닥을 매개로 
흙가루가 랜덤으로 여행합니다. 불편함은 상당합니다. 제가 경험하지 않은, 아니 경험하고 싶지 않은 신세계입니다. 아주 괴롭습니다.
  10년 전 급성 A형 간염으로 죽을 뻔했을 때 의사가 어린 시절 부유한 환경이셨나 봐요 하더라고요. 흙으로 수저 빚었는데요 했더니, A형 간염은 어린 시절 흙장난하면 대개 항체가 생긴다고..... 몸이나 옷에 흙먼지가 묻으면 엄마나 형의 매를 견뎌야 했던 집안 분위기 덕(탓)입니다.
  그런데, 카오스 신발 문제는 해결됐습니다. 신발을 신지 않으면 무질서한 신발 정리 문제는 해결됩니다. 해결된다기보다는 문제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겁니다.
  단독 현상만으로는 문제가 문제로 도출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주변의 환경과 결합하고 화학적 변화를 일으키면서 문제로서 보입니다. 그런 환경이 하나의 프레임을 만듭니다. 프레임 안에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해결될 수 있다면 애초에 문제도 아닐 것입니다. 뭐 취향의 문제 정도이겠지요.
  제가 흙가루와 흙먼지에 대한 자세를 고치지 않는 한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변하지 않으면 프레임의 존재도 알아챌 수 없는 법입니다.


카오스 신발 문제를 해결하려니 실내에서도 흙가루와 친하게 지내야 하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도전과 그로 인한 고단함을 피한다면 문제 해결은 불가능합니다. 나에게 아무런 불편이 없는 상태를 문제 해결로 본다면 세상에 해결책은 없습니다. 오직 죽음으로만 수렴될 뿐. 

  잘 산다는 것(Well-Being)은 마치 서핑을 하듯이 파도의 골과 마루를 끊임없이 맞이하는 게 아닐까요. 
  한편 지난 일주일 동안 비 없는 날씨에 고맙게 생각합니다. 흙마당에 비까지 내렸다면 어쩔 뻔했겠습니까.(20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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