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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달나무 Aug 06. 2017

커뮤니케이션의 구조

콘텐츠는 전달될 수 없다

  지난 17일,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것은 아니고, 말 매개 치유(Equine Assisted Psychotherapy; 이하 EAP)를 하는 일본의 기관을 검색해서 날짜와 시간이 적합한 오키나와의 목장을 방문했는데, 우연한 만남이 필연으로 이어졌습니다.

  타리키 상가 전국회장인 요리타 카츠히코 선생이 우리를 환대하고 먼저 세미나를 제안하고 우리가 궁금해할 만한 내용을 한 시간에 걸쳐 핵심을 모아 PT 했습니다. 요리타 선생은 오키나와에 자주 머무는 사람이 아닌데 우연한 만남이었고요.

  우연은 또 있었습니다. 동행한 멤버가 자기소개 끝에 두 번 빵살이 경력을 말했는데, 요리타 선생이 "이곳에는 한국에서 감옥 다녀온 사람이 왜 이리 자주 오는가"라고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궁금해서 누가 다녀갔는데? 하고 물으니 일본에 번역 소개된 『야생초 편지』를 꺼내 보여줍니다.

  "아~ 황대권 선생이군요."

  그렇단다. 한 달 전쯤 다녀갔다고.

  인연은 또 이어졌습니다. 또 다른 동행 지지학교 교사가 황대권 선생과 자신이 매우 가까운 사이라며 다른 이는 모를 몇 가지 에피소드를 공개했습니다. 저는 죽마고우 한 놈이 황대권 선생과 빵에서 같은 방을 쓴 적이 있어서 황 선생의 간첩누명 스토리를 들어서 알고 있다고 했고, 위에서 말한 두 번 빵살이 동행 멤버가 황대권 선생과 감방 인연이 있는 내 죽마고우의 대학 운동권 1년 직속 후배라고...... 묘한 기분이었습니다. 덧붙이자면 요리타 선생은 10년 전 하자센터를 방문해서 EAP목장 사업에 대해 의논한 적이 있다고..... 짐작에 조한이 하자센터장을 물러나면서 요리타 선생과 협업도 중단된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결론은 꼭 한국에 EAP 목장을 만들어보라는 당부였습니다.

  참고로 '타리키'는 他力의 일본 발음으로 '他'는 말(馬)을 지칭합니다. '상가'는 느슨한 네트워크를 뜻하는 불교용어로서 산스크리트어에서 온 것입니다. 

  그런데 요리타 선생이 임팩트 강한 화두를 하나 던졌습니다.   PT 내용 중 요리타는 커뮤니케이션을 '내용'과 '구조'로 나눠서 설명했습니다. 인간은 커뮤니케이션의 동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워딩은 이미 동의하고 있는 말입니다. 

  요리타는 이어서 인간 삶의 본질인 커뮤니케이션이 교육의 장에 들어오면 '내용'의 전달에 천착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커뮤니케이션의 '내용'은 전달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것도 우리는 흔히 "교육은 자기 교육이다"는 가다머의 유명 문구를 인용해서 늘 하던 말입니다. 요리타 선생은 교사가 피교육자에게 커뮤니케이션의 구조를 전달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구조는 전달된다는 것입니다. EAP가 커뮤니케이션의 구조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습니다. 자주 말하고 글로도 표현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통역자 솔바로 씨가 순차통역을 하면서 슬쩍 '거의 우치다 타츠루네요'라고 끼어넣었습니다. 맞다. 우치다 타츠루!

  요리타 선생은 우리가 우치다 타츠루를 안다는 것에 신기해하면서 "타츠루를 알아요"하고 몇 번을 물었습니다. 일본에서 성씨를 빼고 이름만 부르는 것은 매우 친밀함의 표현이라는데....

  제가 우치다 타츠루 선생을 처음 한국에 초청하는데 기여했다고 하니까 "타츠루는 일본에서 다섯 번째로 훌륭한 사람이다" 말하더군요.

  제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누가 일본에서 가장 훌륭하다는 말인가요?"

  자신의 친구인 도쿄대 동양문화연구소 야스토미 아유무 교수가 가장 훌륭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특기가 여장(女裝)을 하는 것이랍니다. 그래서 아주 훌륭하다고~ 다음에 자신을 한국에 부를 일이 있다면 여장을 좋아하는 도쿄대 교수도 함께 초청해 달라고 합니다. 농담은 농담인데 왠지 끌림이 있었습니다. 머릿속에 벌써 짙은 화장과 흰 드레스를 입고 하이힐을 신은 미지의 남성 동양철학 교수와 대화를 하고 있었으니까요.

  요리타 선생이 다음날 덧붙인 말은, 우치다 선생은 합기도로 자신의 신념을 현실화하고 자신은 EAP를 통해 자기 철학을 구현한다고. 우치다와 자신의 생각은 많이 겹친다고 말했습니다. 

  다시 돌아가서, 교육의 장에서 콘텐츠는 전달할 수 없다면 장(場)과 교사의 역할은 무엇인가-이런 얘기는 늘 하던 것입니다. 요리타 선생이 대답하기를 

"교사는 구조를 창출하고 전달한다. 그것만 가능하다" 

  이렇게 말한 걸로 저는 이해했습니다. 이런 요리타 선생의 언급은 놀랍진 않습니다. 처음 듣거나 생각 조차 없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세미나 끝나고 헤어져서 숙소로 돌아와서 여진이 대단합니다.

  우리 멤버들은 교사가 커뮤니케이션의 구조를 창출하고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의 구체적 이미지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결국 '커뮤니케이션의 구조'에 대한 내용을 나열하겠다는 것이라 무의미한 발상이라고 비판했지만 논의를 그냥 덮을 수 없는 답답함이 있었습니다. 오히려 교육현장에서 한걸음 떨어져 있는 멤버가 더 적극적으로 구체적 그림을 그려보라고 주문했습니다. 하마터면 논의가 논쟁으로 번질 정도로 우리는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열정만으로 세상의 문을 열 수 없다는 경험이 많았던 우리는 일단 접어서 마음속 서랍에 넣어두기로 했습니다.

  EAP가 내용이 아닌 구조라는 요리타 선생의 설명은 매우 뜻깊은 것입니다. 또한 EAP를 내용으로 보는 것이 서구의 "EAGALA(미국 최초의 EAP 협회)" 스타일이라면 구조로 보는 것이 자기 자신이 처음으로 주장하는 EAP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라는 말에 공감합니다.

  "EAP는 구조다" 이 말은 다양하게 변주할 수 있습니다. EAP 대신에 여러 가지를 대입할 수 있습니다. 내용과 구조는 칼로 두부 자르듯이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내용이 아닌 구조의 입장에서 "해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늘 "내용"으로만 해석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당하고 실패했으면 바꿔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꾼다는 것은 버린다는 것과 다릅니다. '내용'은 버릴 수 없는 개념입니다.

*추신1)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 있어서.... 구구단을 내용이 아닌 구조로 해석해보십시오. "구구단은 구조다"- 좀 감이 오지 않나요.

*추신 2) 구조의 재료는 "반복"입니다. 반복이 없다면 구조를 짤 수 조차 없습니다. 구조의 튼실함을 헤아리기 전에 아예 구조를 만들 수 없는 것입니다. 언제나 반복은 가장 기초적인 재료입니다. 걸을 때 두 다리가 반복해서 교차합니다. 밥 먹을 때 숟가락을 든 손은 그릇과 입 사이를 반복적으로 왕복합니다. 다리가 없거나 손이 없다면 반복이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반복은 내용의 반복입니다. 내용을 반복해서 구조를 만듭니다. 내용과 구조의 관계는 그런 겁니다. (2016.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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