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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달나무 Aug 06. 2017

춘천별빛산골교육센터

ADHD에 대한 문답

  지난 6일과 7일 이틀 동안 아이들과 윤요왕 선생님과 여러 선생님들이 땀 흘려 가꾸는 춘천별빛산골교육센터에 다녀왔습니다.( http://cafe.naver.com/bbgotan )

  과거에 흔히 "별빛산촌유학"이라고 부르던 기억이 있지요. 춘천시 사북면 고탄리에 있습니다. 춘천 시내에서 자동차로 30분 정도 거리입니다. 20년 전에 사북면 오탄초등학교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데, 당시와 도로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나무 팔레트로 만든 놀이터 사진을 보고 "꽂혀서" 달려간 경우였고 윤요왕 선생님을 만나는 즐거움도 있고요.(사진 참고 http://cafe.daum.net/ggeschool/LZc8/325)

  모든 면에서 산촌유학센터의 모범이 되는 곳입니다.

  저녁 식사 후에 센터 선생님들과 간담회라 할 수 있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늦도록 나눴는데, 내가 받은 질문 중 기억에 남는 걸 기록으로 남깁니다.


Q: ADHD 아이들은 시골보다 도시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게 아닌가?

A: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시골에서 아이들 전체 인구가 적으니까 ADHD 아이들도 적은 것이죠. 도농을 구분하지 않고 ADHD나 유사한 행동을 보이는 아이들이 계속 늘고 있어요. 왜냐하면 도시적 특성(인공적 문명)에서 오는 행동이 아니고 우리 시대 문명의 패러다임이 변해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Q: 과연 문제 행동을 보이는 아이들이 회복될 수 있을까?

A: 저는 회복될 수 있다고 봅니다. 문제행동 아이의 원인은 “분재 키우기”와 같은 것입니다. 소나무 분재의 경우 구불구불한 가지의 멋스러운 굴곡을 위해 어린 나무 가지를 철사로 엮어서 고정시킵니다. 그리고 소위 ‘순치기’를 통해 성장하지 못하도록 억제합니다.

아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른이 원하는 방향으로 자라도록 지나치게 지시하는 것은 가지를 철사로 엮는 것과 같습니다. 어른의 지나친 지시라고 해서 체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분위기의 경직성과 일방향성을 말한다 하겠습니다. 젖먹이 때 조모나 보모에게 맡겨지는 경우 과잉 훈육의 부작용을 많이 목격했습니다.

아이들은 책임의 크기만큼 성장합니다. 책임의 부하가 버겁다고 느낄 때 아이들은 성장하지 않습니다. 어리면 어릴수록 책임의 무게가 가볍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에 ‘차라리’ 자라지 않는 것입니다. 젖먹이 아이에게 그릇 주변에 음식물을 흘리며 먹는다고 책임을 묻지 않잖아요. 그런 심리입니다.


Q: 어떤 과정을 통해서 회복된다는 것인지...?

A: 우리가 그동안 교육에 대한 고정관념은 "지식의 전수(傳受)"와 "증진(增進)"에 있습니다. 지식은 전수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성장이 증진만은 아닙니다. 지식은 스스로 구성하는 것이며 성장은 증진과 퇴행을 반복하는 시간의 흐름입니다. +(플러스)는 긍정적이고 -(마이너스)는 부정적이라고 보는 것은 산업사회의 이데올로기일 뿐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발화자의 말(言)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며, 수신자의 해석만이 지식 구축에 기여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지식은 전수되지 않습니다. 아이에게 "내가 가지고 있는 콘텐츠를 네게 주마"를 그만두겠다는 확실한 믿음을 주면 아이들은 천천히 변합니다. 아이들은 문제 행동은 나이보다 많이 어린 상태를 보이는 것입니다. 10살이 3살처럼 행동하면 문제가 됩니다. 3살이 3살처럼 행동하면 문제가 아니지요. "너의 퇴행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라고 말해야겠지요.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Q: 예를 들어 말하자면 3학년 여자 아이가 학교에서 침에는 세균이 있을 수 있다고 배웠습니다. 이후로 아이는 늘 입에 있는 침을 뱉습니다. 언제나 그렇습니다. 이런 경우는 어찌 봐야 하나?

A: 아이의 특징은 판타지에 한 발을 걸치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모든 어린이용 스토리는 판타지 스토리입니다. 이게 뭘 말하냐면 아이들은 강한 상징성을 삶에서 구현한다는 겁니다. 침을 뱉는 건 내 몸에 세균이 들어오는 것이 싫다는 것(또는 겁난다는 것)이잖아요. 이게 뭔가 자기 삶에서 강하게 밀어내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균은 병을 만들고 내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것이고, 자기 삶을 강하게 압박하는 요인에 대한 상징성인 것이죠. 아마도 그 아이는 지우고 싶은(버리고 싶은) 상황이 있을 겁니다.


Q: 추가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40세 이하와 40세 이상의 차이가 크다고 봅니다. 40세 이하는 포스트 텍스트(문자를 탈피하는) 세대로서 디지털 세대라고 하고, 40세 이상은 문자 문명의 분위기에서 자란 세대입니다. 문자는 동서양 공히 2천 년의 역사가 있는데, 문자는 철저하게 지배권력을 위한 미디어입니다. 그래서 문자 너머의 문명은 중심-주변 패러다임에서 곳곳이 중심인 멀티 허브 패러다임으로 이동을 말합니다. 우리 어린이 청소년은 멀티 허브로 넘어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선 완전 이동한 경우도 있을 겁니다. 권위는 조롱거리일 뿐입니다. 기존의 권위적 중심을 받아들이는 선생님에게는 지옥의 교실이 된 것입니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미친 것이 아니라 기존의 모든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패러다임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은 "나는 가르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나와야 합니다. 즉 가르치지 않고 다만 대화하겠다. 그리고 대화의 핵심은 "내가 듣기"에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그 외의 길은 없습니다. 이미 선생은 아이들 마음에 없기 때문이지요. 선생님은 노력해서 다다를 최대치가 아이들의 친구가 되는 것이죠. 친구도 아니라면 아무 존재도 아니며, 최악은 아이들의 적(enemy)이 될 뿐일 겁니다. (2016.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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