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핵폭탄을 달라구

첫째 날 이천 율면 부래미마을

by 박달나무

아이들과 오늘부터 전국일주를 시작했고, 첫날 잠자리는 이천 율면 부래미마을이다. 신미양요의 어재연 어재순 형제가 이곳 산성리 출신이고 생가도 중요 문화자료로 잘 관리되고 있다.
생가 마당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
아이들과 24시간 사는 것은 매우 특별한 경험이다. 내 새끼도 어쩌다 연결 소통하지 늘 함께 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돌보는 아이들은 24시간 집중하기 때문에 교사로서 아주 독특한 질적 연구를 절로 수행하게 된다.(연구소재가 필요한 분은 지지학교에서 일주일만 생활하면 질적 연구논문 나온다. 석사 1주일, 박사 2주일이면 충분)
오늘도 역시나 아이들이 연구 거리(탐구주제)를 제공해준다....
가벼운 꾸중을 들은 만 9세 아이가 소리를 지른다.
"핵폭탄, 핵폭탄 어딨어.... 핵폭탄을 달라구~"
나야 뭔 말인지 알고 있다. 정확히 예상대로다.
"왜, 나한테 던지고 싶어서?"
"그래 박샘 머리에 던져버릴 거야!"
평소와 달리 그냥 좀 짜증이 나서 대꾸를 안 했다.
평소 같으면 싱글싱글 웃으며 "핵폭탄 던지면 던진 너는 살아남을까.... 같이 죽는 거야. 너만 죽나, 네 가족도 네 이웃도 다 죽을 텐데 그런 말이 나와?"
이러면서 넘어갔을 것이다.
순간적으로 내가 왜 짜증이 올라오는지 생각했다. 북한 핵실험, 그것도 수소탄을 개발한 걸 넘어 대륙간 미사일에 장착할 정도로 소형화시켰다는 북한 발표와 그에 따른 남측 언론의 호들갑 때문이다.
40년 전에 월간지 어깨동무에는 핵무기에 대한 정보를 종종 실었다. 히로시마에 떨어뜨린(당시에 미군은 피해를 극대화하려고 지상 100미터 공중에서 폭발하도록 투하했다) 리틀보이와 40년 전 당시 소련과 미국이 보유한 거대 핵폭탄의 차이를 인포그래프까지 동원하며 설명했다.
나와 비슷한 연배라면 알 것이다. 40년 전 어깨동무는 미국 핵잠수함을 한국에게 양도해도 우리(한국)는 운용할 능력이 없다고 했다. 그 당시 GDP가 남한이 북한보다 적거나 비슷했다(80년 이후로 남한의 GDP 역전) 미국 핵잠수함 한 척 운용비가 남한 1년 예산보다 많다는 것이다.(물론 40년 전)
어린 "우리"가 느낀 감정은 핵무기에 대한 숭배였다. 경외에서 '외'자는 빼고 오직 '경'만 있었다. 미국 핵무기 한 발이면 북한을 지구에서 사라지게 할 텐데... 그놈의 핵폭탄이 없네. 더구나 서울에 떨어뜨리면 신의주부터 목포까지 어떤 생명체도 남지 못하는 미국의 수소폭탄은 마냥 부럽기만 했다.
7,80년 대 수많은 전술핵이 남한 곳곳에 포진된 줄도 모르고 당시 어린것들은 위대한 박정희 대통령이 왜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는지 궁금하고 답답했다.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가가 된 거란다. 파키스탄의 길을 똑같이 걷는 거란다. 그런데 남한도 핵이 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다. 놀랍고 침울한 건 만 9세 아이의 머리에도 핵이 있다는 거다. 더구나 증오하는 상대에게 핵폭탄을 망설임 없이 던지겠다고 한다.
지금 2017년에....
우리에게 핵폭탄이 두려운 건 실제 북한 핵폭탄이 아니라 옆에 있는 놈이 내 머리에 핵폭탄을 던지겠다는 협박이 아닐까. 핵무기를 탑재한 노동미사일이든 화성-14형 ICBM이든 꽁무니에 불을 내뿜고 솟아오를 때는 두렵지 않다. 일상에서 핵꿀잼과 핵노잼, 핵사이다와 핵꿀밤을 입에 달고 사는 아이들을 볼 때 두렵다. 머리 위에서 핵폭탄이 터지면 사고와 인식과 감각이 사라지겠지만 핵 운운하는 아이들을 지켜보자니

죽는 것도 아니면서 아이들의 죽어가는 미래가 보이는 듯해서 아주 죽을 지경이다.

(2017.9.5)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