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황보름 작 -
모든 사람은 살면서 아직 채우지 못해 소망하는 것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에게는 ‘나의 색깔이 묻어나는 책방의 주인’이다. 나는 책에 대한 욕심이 많은 편이다. 즐겨 읽기도 하지만 책 자체에 대한 소유욕도 많다. 그래서인지 도서관이든 서점이든 북카페든 책이 있는 공간이라면 어디든 편안하다. 그래서 가까운 지인들에게 말한다. 은퇴하면 ‘동네 사람들의 아지트와 같은 문화공간으로써의 서점’을 운영하고 싶다고.
책이 귀한 시절 동네서점은 설렘의 장소였다. 특히 주머니가 궁한 우리 세대에게 헌책방은 읽고 싶고, 가지고 싶은 책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책장 가득 빽빽하게 꽂혀 있는 책들, 자리를 차지하지 못해 입구서부터 층층이 쌓여 있는 책들은 당시 서점의 일반적 풍경이었다. 비좁은 공간에 쪼그리고 앉아 퀴퀴한 책 냄새를 맡으며 넋을 잃고 책을 읽던 기억이 새롭다.
하지만 자본력과 유통망을 가진 대형서점들이 생겨나면서 어느 순간 동네서점들이 하나씩 사라져 갔다. 더구나 인터넷을 통한 유통망이 형성되면서 그러한 현상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그나마 있던 동네서점도 주 판매도서가 학습지, 참고서류이다보니 오래 머물기보다는 그저 물건을 사듯 필요한 도서를 구매하고 나오기 바쁘다.
하지만 최근 자기만의 색깔을 가진 특색 있는 작은 서점들이 생겨나고 있어 반갑다. 비록 발품을 팔아야 찾을 수 있지만 대형서점과는 다른 아늑함과 편안함을 제공한다.
기분 좋은 느낌. (중략) 몸이 그 공간을 긍정하는가. 그 공간에선 나 자신으로 존재하고 있는가. 그 공간에선 내가 나를 소외시키지 않는가. 그 공간에선 내가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가. 이곳, 이 서점이, 영주에겐 그런 공간이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을 읽으면서 찾았다. 내가 소망하는 공간, 바로 그 책방이다.
사람들의 삶은 동일하지 않으며, 각자의 삶 속에서 크든 작든 상처를 받으며 좌절감과 다른 한편으론 희망을 품게 마련이다. 그러한 상처에는 약으로는 치유될 수 없는 것도 있다. 인간은 근원적으로 외로운 존재이다. 외로움을 잠시 잊을 수는 있어도 벗어나기는 어렵다. 그래서 나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언제 가도 내 자리가 있고, 방해받지 않으며 편안하고 존중받는 느낌이 드는 따뜻한 공간. 그 공간에는 나도 있고 또한 타자도 있다. 때론 혼자, 때론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과 나누는 우정, 느슨한 연대 그리고 진솔하고도 깊은 대화. 무엇보다 책과의 만남.
책을 읽으면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생각해 본다. 삶이란 결국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태어나면서 처음 만나는 부모님과의 관계, 자라면서는 친구들과의 관계, 직장 동료, 이웃, 사회관계. 이러한 관계에서 서로의 거리를 지킨다는 것은 쉽지 않다. <휴남동 서점>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우리가 늘 접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 인물 속에서 나를 발견하기도 내 동료를 발견하기도 한다. 서점이라는 공간 속에서 큰 갈등 없이 서로를 존중하며 지나치게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안정된 거리를 유지한다. 그리고 서로에게 불편하지 않은 우정과 느슨한 연대감을 쌓으며 함께 치유하고 성장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소설의 각 장은 일본의 스로우 무비의 한 장면을 보는 느낌이다. 큰 갈등구조도 폭력도 없고 잔혹함과 긴장도 없다. 급격한 인생의 반전도 없다. 그저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를 서점이라는 공간에 풀어낸다.
작가의 말대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소설 속에 채워진 느낌이다. 그럼에도 전혀 이질적이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점이 몰입도를 높인다.
이 소설엔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 가득해요. 책, 동네 서점, 책에서 읽은 좋은 문구, 생각, 성찰, 배려와 친절, 거리를 지킬 줄 아는 사람들끼리의 우정과 느슨한 연대, 성장, 진솔하고 깊이 있는 대화, 그리고 좋은 사람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어둠이 내리는 동네 어느 한적한 골목길 할로겐램프 아래 시간이 멈춘 듯 정돈된 책장, 편안한 의자, 따뜻한 차와 편안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서점이 있다면 들러 책을 살피기도 하고, 따뜻한 차 한 잔 받아 창가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잠시 나를 잊고 싶다. 그리고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다시 서점을 나서고 싶다.
내가 소망하는 공간, 휴남동 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