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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길재 Feb 20. 2022

당신은 누구를 기다리고 있나요?

-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 나희덕 산문집  -

5년 전쯤 우중산행을 갔다가 산속을 헤맸던 경험이 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안개로 한 치 앞도 볼 수 없고, 늘 다니던 길은 갑자기 그 모습을 달리해 낯설다. 마음의 시간은 빨라지고 움직일수록 동일 공간이 반복된다. 세찬 빗줄기는 몸과 마음을 더욱 짓누르고 방향을 잃은 눈은 어디로 향해야 할지 이미 잊었다. 익숙한 공간에서의 낯섬은 더 두렵고 외롭다. 비는 더욱 거세지고 안개는 나조차 삼켰다. 걸음은 더욱 빨라지고 입은 마르고 비와 땀에 몸은 무겁고 영혼은 이미 없다.


지쳐 나무에 기대조난 요청을 할까 고민하던 즈음, 천둥과 번개에 더욱 마음을 졸이던  순간, 섬뜩한 섬광에 멀리 익숙한 이정표와 벤치가 보이고 여태껏 놓치고 있던  곳의 작은 불빛...


그때 떠 오른 시 한 소절

그때 알았다.
'먼 곳의 불빛은
나그네를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걸어갈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을'  - <산속에서>  나희덕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나희덕이라는 시인의 이름이 내 머릿속에 각인된 계기는.


아직 한기가 있지만 햇살 좋은 오후 벤치에 앉아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나희덕 산문집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를 읽었다.

시인의 눈에 비친 세상이 비교적 짧은 글과 가독성 좋은 단문으로 한 편의 장시로 펼쳐진다. 여행지에서 산책길에서 그리고 일상에서 만난 사람, 사물, 풍경 그리고 생명들.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고 놓친 것들을 하나하나 찾아내어 나희덕 시인 특유의 섬세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편안하면서도 깊은 여운이 남는 사색의 결과를 담았다. 화가는 세상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음악가는 음악으로 표현하듯 세상을 글과 말로 표현해내는 작가의 재능은 언제나 부럽다.


내가 세상을 떠나면 양지바른 언덕이나 강가에 묘비 대신 벤치를 놓아달라고. 죽어서도 차가운 대리석 묘비보다는 나무의자가 따뜻할 것 같다고. 그 벤치에 누군가 앉아 생각에 잠겼다 가거나 사랑을 나누어도 좋겠다고. 아니면 오늘처럼 아무도 앉지 않고, 종일 흰 눈만 소복하게 쌓여도 좋으리라.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에 다가가는 것은 모든 생명체의 숙명이다. 죽음 이후의 나눔을 생각한다는 것은 진정 삶을 사랑한 사람이 할 수 있는 특권이 아닐까? 작가는 말한다. "시간은 두 가지 얼굴을 지니고 있다. 누구에게도 예외 없이 젊고 아름다운 모습을 빼앗아가는 시간과, 뒤엉킨 인생의 매듭을 풀어주며 용서와 화해에 이르게 하는 시간이 그것이다. "  나의 시간은 지금 어디쯤일까?  간혹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을 보고 놀란다. 지친 삶의 노고가 고스란히 드러난 생기 잃은 눈과 초췌함. 잃어버린 시간의 회복은 나이 듦에 따른 후회와 회한이 아니라 여유와 성찰로 뒤엉킨 인생의 매듭을 푸는 과정을 통해 용서하고 화해함으로써 '나'였던 '나'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청소나 설거지는 내일까지 미룰 수 있지만, 슬프게도 아이들은 훌쩍 자라 버린다. 그러니까 거미줄, 먼지 같은 것들은 잊어버리고 지금은 아기를 재우며 행복한 시간을 갖도록 하자. 그런 즐거운 시간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므로


이제는 다 큰 아이를 오랜만에 보면 대견함과 섭섭함을 동시에 느낀다. 방학이라 내려온 아이의 발을 잡아본 적이 있다. 내 손에 쏙 들어왔던 작은 발은 어디에도 없고 이제 혼자서도 굳건히 설 수 있는 든든한 발이 있다. 여전히 아이로 보이는데 그 아이는 이제 없다. 예전 어른들이 하시는 말이 생각난다. 품 안의 자식이라고,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 보여준 모습이 효도한 것이라고


자신의 뒷모습을 직접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타인에게 포착된 시선을 통해서만 자신의 뒷모습을 확인할 뿐이다. 누군가는 내 뒷모습에서 때로는 쓸쓸함을, 때로는 차가움을, 때로는 경쾌함을 읽어냈으리라. 타인의 시선에 무방비로 노출된 등을 가졌다는 것. 자신이 알지 못하고 어찌할 수도 없는 신체의 영역이 있다는 것이 왠지 두렵고도 안심이 된다. (중략) 이처럼 뒷모습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동시에 아주 많은 것을 말해준다. 무엇보다도 뒷모습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세상에 넘치는 거짓과 위선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그나마 정직하고 겸손할 수 있는 것은 연약한 등을 가졌기 때문이다. 뒷모습을 가졌기 때문이다.


산속에서 작은 불빛이 나그네로 하여금 계속 길을 걷게 하듯 우리는 먼 곳의 불빛을 보고 여전히 삶의 길을 걷고 있다. "길을 그리기 위해서는/ 마음의 지평선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 누군가 까마득히 멀어지는 풍경,/ 그 쓸쓸한 소실점을 끝까지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  나는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 하네" 내가 앞으로 가는 동안 뒷사람은 나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거짓되지 않은 진실한 '나' , 나의 뒷모습이 부끄럽지 않은 '나'였던 '나'를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좀 더 세월이 지난 후 <연애소설 읽는 노인>편의 노인처럼 한적한 바닷가에서 조용히 책을 읽겠다. 책을 다 읽을 무렵 어둠이 내리고, 어느 날 문득 인생이라는 책을 고요히 내려놓는 날, 담담하게 나의 도착을 알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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