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 하나의 알을 깨고 -
오스카 와일드는 "노년의 비극은 아직 젊다는 데 있다"고 역설했다.
실제로 60세에 은퇴하거나 준비 중인 이들을 만나면, 그들이 여전히 너무 젊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기간이 많이 남았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나 역시 그들 중의 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은퇴 후의 삶을 어떻게 채워야 할까?
전통적으로 60세는 육십갑자의 한 순환을 마치고 다시 태어난다는 '환갑(還甲)'의 의미를 지녔으며, 이는 60년의 삶을 완수했음을 축하하는 '완성'의 의미가 컸다. 그러나 평균 수명이 길어진 현대에 이르러 환갑은 더 이상 인생의 마무리가 아니다. 사회적 의무(자녀 양육, 직장 생활 등)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60세는 이제 진정한 자신을 찾아 나서는 '제2의 청춘기' 또는 '제3의 인생'이 시작되는 시점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60대의 새로운 의미를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의 관점에서 조망해보고자 한다.
나의 20대 시절을 돌아보면 가진 것 없고 '빽'도 없으며 아는 것도 없던 혼란 속에서, 싱클레어의 혼란과 투쟁을 그린 《데미안》은 나에게 한 줄기 빛과 같은 책이었다. 진학 진로와 관련한 부모와의 갈등, 사회 부조리와의 적당한 타협으로 느끼는 비애, 낮은 자존감 등으로 혼란스러웠던 20대의 삶은, 주인공 싱클레어가 유년기부터 청년기에 이르기까지 완전한 자기 자신에 이르는 길을 찾아가는 과정과 맞닿아 있었다.
《데미안》에서 싱클레어는 따뜻하고 밝은 '선한 세계(부모님의 세계)'와 어둡고 혼란스러운 '악한 세계(하인들의 세계)' 사이에서 갈등한다. 불량한 소년 프란츠 크로머에게 약점을 잡혀 어둠의 공포에 휩쓸리지만, 신비로운 전학생 막스 데미안의 도움으로 벗어난다. 이후 방황 끝에 '베아트리체'라는 이상적인 소녀를 동경하며 안정을 찾고, 데미안에게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그림을 보낸다. 대학생이 된 싱클레어는 오르간 연주자 피스토리우스를 통해 선과 악이 통합된 신인 '아브락사스(Abraxas)'를 배우고, 마침내 데미안의 어머니이자 자신의 이상형인 에바 부인을 만난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 후 부상을 입은 병상에서 데미안과 재회(혹은 환상)하고, "이제 네 안에 내가 있다"는 말을 들으며 데미안을 내면화한다. 싱클레어는 마침내 외부의 도움 없이 홀로 설 수 있는 완전한 자아를 찾게 된다.
20대가 '알'(부모, 학교, 기존 사회 규범 등)을 깨고 '나만의 길'을 가야 한다는 용기를 의미하는 첫 번째 탄생의 시기였다면, 은퇴를 맞이하는 60대는 '두 번째 탄생'을 위한, '또 하나의 알을 깨고 나오는 시기'여야 한다.
지난 60년간의 삶을 지배해온 '누군가의 부모', '직장의 동료 내지 간부', '한 가정의 가장' 그리고 '60대는 이래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 이 모든 것이 바로 60대를 둘러싼 또 하나의 '알'이다. 안전하고 익숙한 이 알 속에 머무는 것은 편안할 수 있으나, 이는 진정한 삶이 아니다. 앞으로 60대의 투쟁은 이 모든 사회적 껍질을 깨고 '완전한 나'로 다시 태어나려는 내면의 몸부림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60세는 단순한 '은퇴'나 '쉼'이 아니라, 진실한 자아를 실현할 절호의 기회이다. 인생의 가을로써 지혜와 경륜이라는 풍성한 수확을 거두되,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그 수확물을 바탕으로 자신을 둘러쌌던 '알'(고정관념과 사회적 역할)을 깨뜨려야 한다.
앞으로의 삶은 오로지 외부의 역할이 아닌 자신의 내면이 이끄는 길을 따라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되어야 하며, 그것이 바로 데미안이 제시하는 60대의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즉, 지난 삶의 지혜와 경륜으로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답하고, 그 힘으로 다가올 '제2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스스로 찾는 데 있을 것이다.
오늘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은퇴를 앞둔 지금 무엇을 준비하고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