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떻게 살아왔고 살고 살아갈 것인가 -
조르바와 스토너, 그 경계에서 나를 찾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누군가 이 질문을 진지하게 물어온다면, 나는 대답한다.
‘조르바와 스토너의 경계에서 선을 타는 불안한 존재’라고.
조르바 vs 스토너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의 조르바는 무한한 자유와 본능적인 삶의 기쁨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반면,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의 스토너는 절제, 인내, 그리고 학문적 진실성을 추구하며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삶의 상징이다.
이 상반된 두 인물에 대해 논했던 오래전 독서모임의 주제, ‘나는 어떻게 살아왔고, 살고, 살아갈 것인가 – 조르바와 스토너의 삶을 통해’는 여전히 나의 화두이다.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가
나의 지난 삶을 돌아보면, 나는 조르바와 스토너의 중간 어느 지점에서, 아마도 스토너에 조금 더 가깝다. 초등학교 입학 이후 지금까지-교육청에서의 생활을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한 나의 삶의 경로가 그러하다. 어려웠던 시절, 가정 형편을 고려해 대학 진학을 결정해야 했고, 이러한 환경은 내가 꿀 수 있는 꿈의 폭마저 한정 지을 수밖에 없었다.
호기심이 많고 싫증을 잘 내는 나라는 인간이, 한 분야의 직업을 오랫동안 나름 보람되고 의미 있게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내 속에 있는 스토너적 기질도 한 몫을 했으리라. 스토너가 대학에서 문학 강의를 통해 처음으로 ‘삶의 의미’를 느끼고, 문학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혀 평생 교수의 길을 걷는 모습은 매력적인 삶의 단면이다. 그는 화려한 성공이나 출세와는 거리가 멀지만, 조용히, 묵묵히, 정직하게 학문을 대하고 학생들에게 진실한 가르침을 전하려 노력하였다. 물론 그의 삶은 교수 사회의 정치적 갈등과 불행한 결혼 생활로 인해 외롭고 고립되기도 했다. 하지만 대학 내 젊은 여성 동료 교수와의 짧지만 따뜻했던 사랑의 순간은, 교수 사회의 압력과 관습에 밀려 끝을 맺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지막 삶에 힘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는 학문적으로 큰 업적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방식대로 문학과 진실을 사랑했고 그것에 만족했다.
죽기 직전, 그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은 묵직한 울림을 준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지금도 나는 여전히 스토너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마음 속 한 켠에는 늘 조르바의 삶을 꿈꾼다.
조르바는 본능에 충실한 사람이다. 광부, 전사,요리사, 목수, 악기연주자 등 온갖 삶을 경험했고, 인생을 있는 그대로, 거침없이 즐기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철학과 책으로 인생을 이해하려던 지식인의 표본인 소설 속 화자('나')은 조르바와의 만남을 통해 삶의 변화를 겪는다. 조르바와 화자는 크레타 섬에서 광산 사업을 시작한다. 그 곳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만나고 조르바는 화자에게 삶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화자는 '머리'보다는 '심장'으로 느끼는 삶에 눈을 뜬다. 조르바는 자유의 화신이다. 그는 삶의 매 순간을 온전히 살아내며, 어떠한 관습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그는 자유를 만끽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내일을 구체적으로 설계하기 보다 오늘에 충실한 삶이 곧 자유를 만끽하는 길이라 믿는다. 실패의 순간에도 춤을 춘다. 조르바는 말한다.
“삶이 말이 안 될 땐 춤을 춰야지, 달리 뭐 어쩌겠어?”
앞으로 어떻게 살까?
스토너의 삶이 '절제, 인내, 침묵'의 가치를 가르쳐주었다면, 조르바의 삶은 '순간의 충실함'과 '자유로움'의 가치를 보여준다. 나는 앞으로 남은 삶에서, 스토너의 정직함과 성실함을 바탕으로 하되, 조르바의 대담함과 즉흥성을 더해 살고 싶다. 지난 세월, 환경과 책임 때문에 억눌렀던 호기심을 이제는 주저 없이 따라가 보고 싶다.
은퇴란 마치 오랜 세월동안 한 곳에 고여 있던 물이 마침내 흘러넘치는 순간과도 같다. 수십 년 동안 조직의 일원으로서 정해진 역할과 시간표에 맞춰 살아온 삶의 끝이자 이제 막 펼쳐진 무한한 자유의 시작이다. 앞으로의 삶에 대해 상상해 본다.
책상 위의 책들을 덮고, 춤을 추듯 새로운 모험에 몸을 맡긴다. 낯선 곳을 홀로 여행하며 예기치 않은 만남을 즐기고,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무언가를 '시도'해 보는 삶.
어쩌면 나의 삶은 완벽하게 조르바가 될 수도, 영원히 스토너에 머물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두 인물이 상징하는 삶의 태도를 끊임없이 되새기며, ‘불안한 경계’가 아닌, 양쪽의 미덕을 모두 수용한 ‘균형 잡힌 현재’를 만들어 나가는 것, 그것이 내가 원하는 앞으로 삶의 모습이 아닐까?
진정한 자유는 모든 것을 버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든 순간에 '나 자신'의 진실함을 담아내는 데 있다는 것을, 조르바와 스토너의 삶을 통해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