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남은 날이 OO일 이라면?

-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by eduist 이길재

평소와 다름없는 새벽, 잠에서 깨어 습관적으로 책상에 앉아 스텐드를 켰다. 갑작스런 복통, 오른쪽 옆구리와 뒷쪽이 아프다. 속도 울렁거린다. 식은 땀이 흐르고 고통의 강도는 높아져 간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결국 출근도 못하고 병원 응급실로 갔다. 한 쪽 팔에 수액이 달리고 이어 소변검사, 혈액검사, CT촬영, X레이 촬영 등이 이어지고 진단이 내려지기 전 고통 속에 응급실 침대에 누워있는 동안 오만가지 생각이 지나갔다. 삶과 죽음, 아이들, 아내, 직장, 그리고 미처 치위지 못한 잡다한 것들...


혹시 암은 아닐까?


삶과 죽음에 대한 많은 책이 있지만 두 권의 책을 소개하고 싶다.

김범석의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와 이어령선생의 <마지막 수업>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근원적 목적지를 향해 나아갈 수 밖에 없다. 오랜 진화의 끝에 인간이 이룩한 문명이라는 것도 결국 유한한 인간 삶에 대한 깊은 성찰과 고민 끝에 완성된 결과물이다.


유한한 삶은 우리에게 인생이라는 삶의 가치와 한계를 함께 고민하게 하였다. 영원한 삶을 살 것 같지만 결국 죽음과 맞닥뜨린 수밖에 없고, 예상하지 못하는 죽음앞에서 이승에서의 마지막 작별이 주어진 자는 오히려 행운일수도 있다.


오늘 누군가의 죽음은 내일의 내가 닿을 시간이고, 어떤 죽음은 분명히 아직 남아 있는 이들에게 뭔가를 이야기한다. 뜻하지 않게 자신이 떠나갈 때를 알게 된 사람들과 여전히 떠날 때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생각할 때 나는 그 이야기를 하고 싶다.


저자 김범석은 암병원 종양내과 전문의로 항암치료를 암 환자의 남은 삶이 의미 있게 연장되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다.


'남은 삶'과 '의미 있게'


시한부의 삶을 진단받은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소개한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지만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살았는지 알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 생의 마지막 순간 오랫동안 소식이 끊힌 동생을 만나 내 돈 2억을 갚아라고 한 사람, 마지막까지 평범한 일상을 살며 느닷없이 찾아온 운명을 받아들이고 남은 생을 평소처럼 살아간 할머니, 혈연이라는 것이 오히려 깊은 굴레가 되어 서로의 삶을 옥죄는 죽음,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죽음. 스스로 생의 마지막 날을 정한 사람... 슬프고 쓸쓸하고 안타까운 죽음, 가슴아프고 숙연해지는 죽음, 모든 죽음 앞에는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남은 삶을 어떻게 의미 있게 살 수 있을까?






내가 느끼는 죽음은 마른 대지를 적시는 소낙비나 조용히 떨어지는 단풍잎이에요. 때가 되었구나, 겨울이 오고 있구나....죽음이 계절처럼 오고 있구나 그러니 내가 받았던 빛나는 선물을 나는 돌려주려고 해요. 침대에서 깨어 눈 맞추던 식구, 정원에 울던 새, 어김없이 피던 꽃들..... 원래 내 것이 아니었으니 돌려보내요. 애초 있던 그 자리로, 나는 돌아갑니다.


우리 시대 큰어른 이어령 교수는 의미있는 삶이란 '비어 있는 것'의 가치를 깨닫는 데서 시작한다고 한다. 유리컵에 물을 담기 위해 비어 있어야 하는 것처럼 인간의 육체와 마음 역시 끊임없이 욕망으로 채워지는 것을 경계하고 비어 있는 공간(영혼)을 통해 우주와 연결될 때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한다. 모든 것은 나에게 주어진 선물이었다는 깨달음은 집착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비우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더 나아가, 저자는 세상의 모든 죽어가는 것들, 사그라지는 것들을 '생명'으로 덮으라고 조언한다. 이는 단순히 숨을 쉬는 것을 넘어, 주변의 모든 것을 살릴 궁리를 하고 생기를 불어넣는 행위를 의미한다. 삶의 방향성을 지식이나 물질이 아닌 영성과 사랑을 향해 끊임없이 걸어가야 한다는 메시지는 불가해하고 역설적이며 알 수 없는 생명, 그 중심에 있는 사랑을 깨닫고 실천하는 삶이야말로 가장 의미 있는 삶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유한한 존재, 사람,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단순히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삶을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는것을 의미한다. 은퇴는 새로운 시작이다. 은퇴는 누구누구(부모, 자식, 직위, 직급, 경제적 소득 등)로 평생을 살아왔던 정체성의 외피를 비우는 과정이다. 그동안 누렸던 모든 것이 선물이었음을 인정하고 직함을 비운 자리에 나만의 의미를 채울 수 있는 활동(취미, 봉사, 학습 등)을 구상해야 한다.


살아있음의 가장 기본이 되는 육체의 생명력을 유지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규칙적인 운동 루틴과 균형 잡힌 식습관, 정기 검진을 통해 노후의 자립성을 보장하는 신체적 준비가 필요하다. 경제활동의 단절을 피하고 연금 겸업을 준비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소득활동은 단순한 돈벌이를 넘어 사회와 연결되어 나만의 생명을 나누고 타인의 생명을 살리는 활동의 성격을 띠어야 한다. 또한 새로운 기술을 배우거나 평생 쌓아온 지혜를 나누는 봉사활동도 필요하다.


많은 은퇴자가 말한다. 은퇴 후 가장 큰 변화는 인간관계의 축소이다. 가족과의 관계를 깊게 다지고, 직장 동료 외에 새로운 취미 그룹이나 지역 커뮤니티 등에서 인간관계를 확장하여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확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진단은 나왔다. 요로결석...

나는 알았다.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은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쇼핑을 할 때도, 기쁘거나 슬프거나 즐거울 때가 아니라 오히려 고통스러울 때라는 것을. 폭풍같이 지났던 한순간의 고통 속에서 삶을 생각했고 죽음이 늘 우리 가까이에 있음을.




이전 03화조르바와 스토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