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느 모임에 가도 상석에 앉을 나이인데 감사하게도 내가 막내급에 속하는 모임이 하나 있다.
'아름다운 인생학교'
모임명에서 느낄 수 있듯이 은퇴자나 은퇴를 앞둔 현역들을 중심으로 한 모임이다. 은퇴자 회원들은 은퇴 전에 기업대표, 교수, 의사, 교장, 자영업 등 화려한 이력을 갖춘 분들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건강하고 활기차고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며 아름다운 인생을 즐기고 있다. 나를 비롯한 여러 현역보다도 훨씬 더 왕성하게 말이다.
최근 이 모임에서 올 한 해를 마무리하는 송년회를 가졌다. 여러 송년회에 참석하다 보면 반갑고 따뜻하고 위로가 되는 자리가 있는가 하면, 괜히 왔나 싶은 자리도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 송년회는 올해 참석한 모임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 회원이 38명이나 되는데, 일정이 겹친 두세 명을 제외하고 모두 참석하여 강연회와 식사, 그리고 음악연주회를 즐겼다. 이번 송년회에서는 회원 중 한 분이 '시 낭송과 인생'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였다. 시에 담긴 인생에 대한 깊은 사유와 담론은 깊은 감동을 주었고, 낭송되는 시 구절들은 마음속 깊이 큰 울림으로 남았다.
그날 이후 요즘 부쩍 시집에 손이 자주 간다. 노안으로 자주 피로해지다 보니 긴 호흡이 필요한 책은 점차 멀리하게 되고, 대신 마음에 깊이 와닿아 사유의 깊이를 더해주고 때로는 편안한 위로를 건네는 시를 가까이하게 된다. 시를 접하다 보면 한 번에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시가 있는 반면, 천천히 오랫동안 읽을 때마다 새로운 영감을 주는 시도 있다. 아마 나이가 들며 삶의 경험치가 늘다 보니, 예전에 읽었던 시가 새롭게 와닿아서가 아닐까? 강연을 듣는 내내 머릿속에는 한 가지 질문이 떠나지 않았다.
'나의 인생 시간은 지금 몇 시쯤일까?'
인생의 시간을 생각하면 도종환 시인의 <세시에서 다섯 시 사이>가 떠오른다.
이미 나는 중심의 시간에서 멀어져 있지만 어두워지기
전까지 아직 몇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이 고맙고, 해가 다
저물기 전 구름을 물들이는 찬란한 노을과 황홀을 한 번은
허락하시리라는 생각만으로도 기쁘다
(중략)
아직도 내게는 몇 시간이 남아 있다
지금은 세시에서 다섯 시 사이
도종환, <세시에서 다섯 시 사이> 중에서
이 시를 읽으면 ‘인디언 서머(Indian Summer)’가 생각난다. 북미 지역에서 늦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갈 즈음 발생하는 따뜻한 기상 현상을 일컫는 말인데, 때로는 인생의 황혼기에 찾아오는, 짧지만 따뜻하고 눈부신 시간을 상징하기도 한다.
현재 나에게 주어진 시간, 시기, 계절은 인디언 서머라는 생각이 자주 든다. 오랜 시간 교사, 겸임교수, 교육전문직원, 교감, 교장을 거치면서 이제 몇 년 후면 은퇴를 맞이하게 된다. 젊은 시절은 그 자체로 빛나고 찬란했으나 정작 그때는 그 가치를 몰랐다. 이제야 겨우 삶을 알 것 같은데, 남은 시간이 너무 빨리 줄어드는 것 같아 늘 아쉽고 조급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디언 서머가 있어 기쁘고 아직 세시에서 다섯 시 사이에 머물고 있어 다행스럽다. 또한, 아직까지 현역이라는 사실에 감사한다.
어떻게 남은 인생을 준비하고 맞이해야 할까'
지성은 탁월하게
덕성은 원만하게
감성은 아름답게
감각은 생생하게
- 정현종, <나날이 생생한 몸을> 중에서
정현종 시인은 위와 같이 하면 희망은 저절로 샘솟고, 의욕은 저절로 넘치며, 사랑에도 저절로 물든다고 하였다. 그렇게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바람을 담아 이 글귀를 한동안 SNS에 나의 대표 글로 걸어두기도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이가 든다는 것은 자꾸만 그 지향점과 멀어지게 만든다. 지성은 흐려지고, 덕성은 모가 나며, 감성은 무뎌지고, 감각은 둔감해지는 기분이다.
이렇게도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최승자, <삼십 세> 중에서
최승자 시인의 이 구절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시구이다. 그런데 인생을 살다 보면 이렇게도 할 수 없고 저렇게도 할 수 없을 때가 서른 살만 그러하겠는가? 마흔 살에도 쉰 살에도 예순 살에도 우리는 그런 순간을 맞닥뜨린다.
요즘 마음은 이렇다. '이렇게도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정년은 온다. '
시인 진은영은 서른 살을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어두운 복도 끝에서 괘종시계 치는 소리
1시와 2시 사이에도
11시와 12시 사이에도
똑같이 한 번만 울리는 것
그것은 뜻하지 않는 환기, 소득 없는 각성
몇 시와 몇 시의 중간 지대를 지나고 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진은영, <서른 살> 중에서
진은영은 서른 살은 무언가의 절반만큼 왔다는 것, 그리고 돌아가든 나아가든 모든 것은 너의 결정에 달렸다고 말한다. 그만큼 서른 살은 인생에 있어 중요한 시기임에는 틀림이 없다. 취업, 결혼, 육아 등 인생에 있어 가장 변화가 요구되는 시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는 마흔 살이 그러했다. 철없던 10대를 지나 청춘의 20대를 보내고 취업, 육아 등으로 정신없이 보낸 30대 이후 맞이하게 된 40대는 '무엇을 할까' 아니 '무엇을 해야 하나'로 고민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어떤 일이든 중심은 나라는 생각에 자신감이 넘쳤던 30대를 보내고 40대를 맞이하니 말로 표현되지 않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이전까지는 누군가 내미는 손을 잡을지 말지가 온전히 나의 선택이었다면, 이제는 내가 절박하게 손을 내밀어도 아무도 잡아주지 않을 것 같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엄습했다. 직장에서도 뭔가 성과를 보이거나 진로를 명확하게 해야 할 시점에 가진 것이 너무 없다는 생각은 늘 나를 불안하게 했다.
요즘도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인생의 중간이라는 느낌보다는 인생의 후반부에 있다는 사실 그리고 되돌아갈 수 없고 무조건 앞으로 가야 하되 그 길의 선택지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나이가 들면 시간이 빨리 간다고 한다. 실제로 그렇게 느껴진다. 삶에 더 이상 설렘이 없기 때문일지 모른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 크게 다르지 않고, 새로운 무언가에 대한 욕구도 점차 희미해지기 때문이다. 반면에 어린아이에게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낯설어 하루하루가 바쁘고 새롭다. 그러니 아이들의 시간은 더디게만 흐르는 것이다.
나는 어떻게 살아왔고 살고 있고 살아갈 것인가?
내가 살아있는 동안 늘 성찰하고 고민하고 답을 찾아야 할 질문이다. 아마 정답은 없을 것이다. 그저 답을 찾아가는 여정 그 자체가 인생일 뿐이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뜻하나니
장밋빛 볼, 붉은 입술, 부드러운 무릎이 아니라
풍부한 상상력과 왕성한 감수성과 의지력
그리고 인생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신선함을 뜻하나니
- 사무엘 울만, <청춘> 중에서
그렇다. 청춘이란 나이가 젊다는 것이 아니라 씩씩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왕성한 감수성 그리고 인생의 깊은 샘의 신선함을 뜻한다. 머리를 높이 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여든 살이어도 늘 푸른 청춘이다.
‘아름다운 인생학교‘에는 그런 청춘들로 가득하다. 올해의 송년회는 아쉬움보다는 내년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찬, 기억에 남는 자리였다.
나의 인생 시간은 지금 몇 시쯤일까?
인디언 서머의 한복판, 아직은 찬란한 네 시 반. 아직 찬란한 노을을 준비할 시간이 넉넉히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