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끝까지 걷지 않기를...

-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by eduist 이길재

PT를 시작한 지 어느덧 1년이 다 되어 간다. 퇴근 후 주 2회 수업을 신청했지만, 잦은 출장과 모임 탓에 실제로는 주 1회 가는 것이 고작이다. 그래도 1년 가까이 끈을 놓지 않고 운동을 지속하고 있다는 사실은 내가 생각해도 제법 대견하다. 주변에서는 "뭘 PT를 1년씩이나 하냐", "이제는 혼자 해도 되지 않냐", "경제적으로 부담되지 않냐"는 등의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사실 내가 사는 아파트 입구에는 입주민용 피트니스 센터가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내려가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이다. 하지만 나에게 그 피트니스 센터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였다.


평소 등산도 즐기고 체중 관리도 비교적 잘해왔기에 건강만큼은 자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낯선 감각이 찾아왔다. 계단을 오를 때의 숨소리가 거칠어졌고, 며칠이 지나도 피로는 풀리지 않았다. 무력감과 함께 근육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선명했다. 더 늦기 전에 꾸준한 운동이 필요하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나의 생활 패턴상, 조금은 강제적이고 엄격하게 나를 관리해 줄 ‘시스템’이 필요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PT였다.


그 과정에서 나는 인생의 반환점인 ‘중년’에 서 있음을 자각했다. 젊음이 무한하지 않다는 깨달음은 종종 상실감과 불안으로 다가왔다. 이때 만난 무라카미 하루키의 회고록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단순한 위로를 넘어, 인생의 남은 레이스를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에 대한 영감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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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in is inevitable. Suffering is optional.
아픔은 피할 수 없지만, 고통은 선택하기에 달렸다.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건강, 사회적 역할, 인간관계 등의 여러 문제들은 누구에게나 필연적으로 찾아온다. 하지만 그 상황 앞에서 주저앉아 괴로워할 것인가, 아니면 그 아픔마저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계속 발을 내디딜 것인가 하는 건 오직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서른셋의 가을, 하루키는 운영하던 재즈 바를 접고 전업 작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몸무게는 급격히 불어났고, 하루에 60개비씩 피우던 담배는 그의 폐를 갉아먹었다. 그는 깨달았다. 머리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을.


많은 사람이 창작이나 사무직 업무를 순수한 정신노동이라 생각하지만, 하루키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재능과는 달리 집중력과 지속력은 트레이닝에 따라 후천적으로 획득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소설을 쓰는 것은 링 위에서 홀로 버텨야 하는 권투 경기와 같으며, 강인한 육체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예술적 영감도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치열한 경쟁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회사에서의 중요한 의사결정, 가정을 지키는 책임감, 노후에 대한 불안 등은 단순한 정신력만으로 버티기에 너무나 무거운 짐이다. 내가 PT를 받으며 땀을 흘리는 이유 역시 단순히 젊은 시절의 몸매로 돌아가기 위함이 아니다. 무거운 웨이트를 들어 올리며 허벅지와 코어 근육을 단련하는 행위는, 삶의 무게를 견딜 '물리적인 힘'을 비축하기 위한 일종의 생존 전략이다.


하루키는 전업 작가가 된 이후 30년이 넘도록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글을 쓰고 10km를 달리는 루틴을 지켜왔다. 그는 습관을 형성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리듬'이라고 강조한다.


계속하는 것, 리듬을 단절하지 않는 것. 장기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는 그것이 중요하다. 일단 리듬이 설정되면, 그 뒤는 어떻게든 풀려 나간다.

그는 글이 잘 써지는 날에도 정해진 분량 이상을 쓰지 않고, 안 써지는 날에도 억지로라도 책상 앞에 앉아 그 분량을 채운다. 이러한 '성실한 반복'이야말로 평범함이 비범한 성취로 이어지는 유일한 길이다.


점심시간 20분의 산책, 혹은 퇴근 후 동네 한 바퀴를 도는 행위는 사소해 보이지만, 이 규칙적인 리듬은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거창한 목표가 없어도 좋다. 그저 매일 신발 끈을 묶고 문밖을 나서는 행위, 어제 걸었던 길을 오늘도 걷는 그 꾸준함이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우리를 흔들리지 않게 잡아준다.


책에는 홋카이도 사로마 호수에서 100km 울트라 마라톤에 도전한 에피소드가 나온다. 55km 지점을 넘어서자 극심한 육체적 고통이 찾아왔고, 그는 자신이 '달리는 기계'라고 최면을 걸며 버텼다. 그러다 75km를 넘어서자 거짓말처럼 고통이 사라지고 몸이 저절로 움직이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육체적인 고통뿐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런 것조차 머릿속에서 대부분 사라져 버렸다.


이것은 극한의 고통을 통과한 자만이 얻을 수 있는 '무아지경'의 상태이자, 자신의 한계를 수용하고 넘어선 순간의 기록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을 것 같은 '러너스 블루(Runner's Blue, 슬럼프)'나 인생의 시련이 닥쳐온다. 이때 필요한 것은 발버둥 치는 것이 아니라, 그 흐름에 몸을 맡기고 묵묵히 통과해 나가는 태도다.


이러한 몰입의 경험은 달리기뿐만 아니라 '수영'과도 깊게 연결된다. 물속에 머리를 넣는 순간 세상의 소음은 차단된다. 오직 나의 숨소리와 물살을 가르는 소리만 들리는 그곳은 완벽한 고독의 공간이다. 하루키가 달리기를 하며 "누구와도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소중히 여겼듯, 수영 또한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에서 벗어나 오직 물의 저항과 나의 호흡에만 집중하게 해 준다. 이 침묵의 시간을 통해 우리는 고갈된 내면을 채우고,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갈 치유의 힘을 얻는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신체적 능력의 저하를 인정해야 함을 의미한다. 하루키는 뉴욕 마라톤을 준비하며 예전 같지 않은 기록에 씁쓸해하지만, 이내 생각을 바꾼다.


아무리 노력을 해본들, 아마도 젊은 날과 똑같이 달리지는 못할 것이다. (...) 중요한 것은 시간과의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만큼의 충실감을 가지고 42킬로를 완주할 수 있는가, 얼마만큼 자기 자신을 즐길 수 있는가, 아마도 그것이 이제부터 앞으로의 큰 의미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는 타인과의 경쟁이나 기록 경신보다, '어제의 나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졌는가', '내가 설정한 기준을 만족시켰는가'에 집중한다. 이것이야말로 늙어감을 긍정하고 삶을 우아하게 즐기는 중년의 지혜가 아닐까?


하루키는 자신의 묘비명에 이렇게 쓰고 싶다고 말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그리고 러너).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인생이라는 마라톤에서 중요한 것은 남보다 빨리 결승선에 도착하는 것이 아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순간에도, 다리가 천근만근 무거워지는 순간에도, 스스로 멈춰 서거나 포기하지 않고 자신만의 보폭으로 계속 움직였다는 사실, 그 '긍지'가 중요한 것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PT를 받는 화요일과 목요일 오후가 되면 여전히 빠질 핑계를 찾곤 한다. 꾸준히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그토록 어렵고 고단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의 중년도 그러하기를 바란다. 비록 젊은 날처럼 폭발적인 속도로 달릴 수는 없을지 모른다. 때로는 무릎이 시큰거리고, 때로는 기록이 뒤처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몸을 움직이며 삶의 리듬을 놓지 않는 한, 우리는 여전히 '현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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