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는 강물 위로 띄운 낡은 편지

- 부산향토문화연구회 주관 나주일원 답사를 다녀와서

by eduist 이길재
배가 들어
멸치젓 향내에
읍내의 바람이 달디달 때
누님은 영산포를 떠나며
울었다

-나해철, <영산포(榮山浦) 1> 중에서


동지가 가까워진 12월의 아침, 세상은 여전히 한밤중이다. 새벽에 내린 비로 비릿한 흙내음이 감돌고, 어둠에 짓눌린 무거운 어깨는 자꾸만 움츠러든다. 답사 버스에 오르자마자 쏟아지는 졸음에 잠시 눈을 붙였을까, 한 시간여가 훌쩍 지났음에도 창밖은 여전히 흐릿한 회색빛이다.


그렇게 세 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영산강 어귀. 버스 문이 열리는 순간, 가장 먼저 마중을 나온 것은 코끝을 간질이는 알싸한 홍어 향이었다. 그 냄새는 단순한 음식의 향기가 아니라, 영산포가 기억하고 있는 집약된 시간의 냄새였다.


한눈에 들어온 영산강은 묵묵했다. 담양에서 발원해 광주, 나주, 무안을 거쳐 목포 서해로 흘러가는 350리 물길. 이 강은 나주평야라는 거대한 곡창지대를 일구며 호남 사람들을 먹여 살린 풍요의 근원이었다. 하지만 그 풍요는 늘 시련을 동반했다. 외세의 수탈과 근현대사의 격동 속에서 영산강은 호남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차별과 수난의 역사를 온몸으로 받아냈다. 나해철 시인의 시구처럼, 가난 때문에 포구를 떠나야 했던 이들의 눈물과 이별의 아픔이 서린 곳. 그래서 영산강은 호남 사람들에게 가슴속 응어리진 한을 씻어내 주는, 가장 아프고도 따뜻한 ‘어머니의 등줄기’와 같다.

지금의 영산포는 지명으로만 존재하지만, 과거 이곳은 전라도의 세곡이 모이던 거대한 물류의 중심지였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영산강은 우리가 생각하는 강보다 훨씬 넓고 깊은 해로(Sea Route)에 가까웠다. 하굿둑이 없던 시절에는 밀물 때 바닷물이 나주 영산포를 지나 광주 근처까지 거슬러 올라왔다. 내륙 한복판에 우뚝 솟은 영산포 등대는 이곳이 한때 배들이 줄지어 드나들던 실질적인 항구였음을 증명하는 외로운 화석이다.

그러나 1970년대 말 시작된 토목공사와 하굿둑 건설은 강의 명운을 바꿨다. 바닷길이 끊기고 갯벌이 너른 논밭으로 변하면서 강폭은 좁아졌고, 최근의 보 건설로 인해 수위는 인위적으로 관리되기 시작했다. 흐르지 못하고 고립된 물길을 보며 마음 한구석에 소통에 대한 아쉬움과 상실감이 차오른다.


관광용 황포돛배에 몸을 싣고 선착장에서 앙암바위까지 강바람을 맞는다. 배 위에서 바라보는 산과 들, 강은 육지에서의 모습과 사뭇 다르다. 깎아지른 절벽에 서린 슬픈 전설을 뒤로하고 다시 뭍으로 올라와 동양척식주식회사 문서고와 적산가옥을 마주한다. 수탈의 기록을 보관하던 붉은 벽돌 건물과 이제는 문학관으로 변모한 일본인 지주의 집. 문순태의 소설 <타오르는 강> 속 주인공들이 억압과 수탈에 맞서 횃불을 들었던 그 강둑이 눈앞에 겹쳐진다. 민초들의 삶은 영산강의 붉은 황토를 닮아 있다. 죽어도 죽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생명력, 그것은 곧 이 강이 길러낸 호남의 정신이다. 떠난 자와 남겨진 자, 그리고 빼앗긴 자들의 회한이 강물 위로 겹쳐 흐른다.

새벽부터 서두른 탓에 오전 내내 기다렸던 점심시간. 따뜻한 국밥 한 그릇과 홍어 한 점, 그리고 막걸리 한 잔을 곁들인다. 뜨끈한 국물이 어둠에 짓눌렸던 몸을 데우고, 톡 쏘는 홍어가 정신을 깨운다. "물은 흘러야 한다"는 자명한 진리 앞에, 삭혀진 홍어 맛처럼 깊어진 영산강의 역사를 되새겨본다. 비록 배들이 떠나고 포구는 적막해졌으나, 영산강은 여전히 우리 곁에서 삶의 비린내와 단맛을 동시에 길러내고 있다.


백호문학관에서는 백호 임제(林悌)의 기개를 만났다. 백호 임제는 비록 39세의 짧은 생을 마쳤으나 1쳔여 수의 시와 산문, 소설을 남겨 16세기 조선에서 가장 개성적이며 뛰어난 문장가로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특히, 기질이 호방하고 예속에 구속받지 않았으며 동서의 붕당 분쟁 등 혼란했던 시대를 비판하는 정신을 지녀 '풍류기남아'로 일컫어졌다.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평안도사로 평양으로 가는 길에 당대 최고의 기생이었던 황진이의 무덤을 지나게 되고 평소 그녀의 재능과 풍류를 흠모했던 임제는 무덤 앞에 멈춰 서서 술 한 잔 올리고 시를 한 수 읊는다.


청초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엇난다
홍안을 여듸 두고 백골만 믓쳤난다
잔잡아 권하리 업스니 그를 슬허하노라
- 백호 임제, 황진이를 애도하며 지은 시조, 청구영언 수록


이로 인해 부임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파직당한다. 하지만 임제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오히려 임종 직전 유언으로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긴다.


주위의 모든 나라가 황제라 일컫는데 유독 우리나라만 중국에 속박되어 있으니 내가 살아 무엇을 할 것이며 내가 죽은들 무슨 한이 있으랴 곡하지 마라
- 백호 임제, 나주임씨세승 수록


성리학적 명분론이 지배하던 엄격한 시대였음에도, 격식과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다 간 그의 자취는 굽이치며 뻗어 나가는 영산강의 역동적인 물결을 꼭 닮아 있었다.


그러나 이 기개와 풍요의 이면에는 늘 아픈 역사가 공존했다. 삼봉 정도전의 유배지인 '소재(消災)'에 서서, 혁명을 꿈꾸던 정치가가 이 낯선 땅에서 보았을 민초들의 비참한 삶을 생각한다. 그의 개혁 의지는 어쩌면 영산강 가의 가난한 백성들을 보며 더욱 뜨겁게 타올랐을지도 모른다.

나해철의 시 속에서 울며 떠나던 누님도, 문순태의 소설 속에서 타오르던 민초들도, 유배지에서 고뇌하던 정도전도 모두 영산강의 물결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고립되고 단절된 보 안에서도 강물은 삭혀진 홍어 맛처럼 깊어진 역사를 품고 흐른다. 그 굽이치는 물결 속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시간들이 흐른다.


부산 도착 후, 돼지국밥 한 그릇과 소주 한 잔을 기울이며 답사를 마무리한다. 그곳에서의 생각과 고뇌들을 잊지 않겠노라 다짐하지만, 내일이면 다시 습관처럼 잊어버린다. 하지만 이 망각과 설렘조차 답사의 즐거움이기에, 나는 기회가 오면 또다시 길을 떠나고 다음의 여정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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