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송년 금정산 산행기
子曰,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논어(論語)》 옹야편(雍也篇)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
2025년의 끝자락에서 금정산으로 향했다.
초읍행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은 유독 더디게만 흘렀다. 하늘은 시리도록 파랗고 햇살은 눈부셨지만, 대기 중엔 온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바람조차 얼어붙은 도심, 인적과 차량이 드문 정적 속에서 올겨울 들어 가장 춥다는 날씨를 실감했다.
이번 산행은 독서모임 ‘쉼표’가 계획한 송년 특별 산행이다. 2025년 10월 31일, 부산시민의 숙원이었던 금정산이 대한민국의 24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것을 축하하는 의미도 담았다. 독서모임 '쉼표'는 한 달에 한 번, 바쁜 일상을 뒤로하고 책 읽기를 매개로 만남을 이어온 지 6년째. 코로나로 멈췄던 시간을 제외하면 4년 넘게 만남을 가져왔다.
평소 같으면 인파로 북적였을 광장은 추운 날씨 탓인지 조용하다. 우리는 학생교육문화회관 광장을 시작으로 성지곡수원지, 만덕고개, 산어귀전망대를 거쳐 남문, 파리봉을 지나 산성마을로 내려가는 산행을 시작했다.
산의 초입은 완만했고 공기는 투명했다. 다행히 바람도 거의 불지 않아서 우려했던 한파의 기세도 한풀 꺾이듯 느껴졌다. 하지만 남문을 지나 파리봉으로 향하는 오르막은 녹록지 않았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체력이 바닥을 보일 무렵, 문득 매일 새벽 테니스로 하루를 여는 한 회원에게 물었다.
“아직도 매일 테니스를 치시나요? 정말 부지런하십니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하하, 이제 부지런한 단계는 넘어섰습니다. 그저 즐길 뿐입니다.”
子曰,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논어(論語)》 옹야편(雍也篇)에 나오는 말이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 의무나 성실함을 넘어 존재 자체가 행위와 하나가 된 상태. 동행한 후배 회원님은 이미 그 경지에 이른 듯하다. 나에게도 그런 게 있었던가? 부럽다. 다만, 우리 모임도 역시 이처럼 ‘즐기는 단계’에 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다소 위안이 된다.
우리가 걷는 이 금정산은 이제 국가가 관리하는 전국 최초의 도심형 국립공원이자, 천년고찰 범어사와 국내 최대 규모의 산성을 품은 역사의 터전이다. 7천만 년 전 마그마가 빚어낸 고당봉의 금샘과 나비바위 등 기암괴석들은 여전히 웅장한 기개를 뽐내고 있다. 1,700여 종의 동식물이 숨 쉬는 이 ‘도심의 허파’가 국립공원으로 잘 보존되어 앞으로도 계속 사랑받는 명산이기를 기대한다.
4시간여의 산행 끝에 도착한 산성마을의 한 식당. 요즘 보기 드문 따뜻한 아랫목에 둘러앉아 맛보는 도토리묵무침과 해물파전, 그리고 알싸한 산성막걸리는 산행의 피로를 단숨에 씻어주었다. 메인 요리인 오리백숙으로 기력을 보충하며, 근황과 책이야기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사실 자연의 입장에서는 12월 31일과 1월 1일이 다를 바 없다. 그러나 그 경계에 의미를 부여하고 스스로를 일깨우는 인간의 의지로 인해 ‘한 해를 보낸다’는 행위는 숭고해진다. 각자가 읽고 체득한 지식으로 세상을 논하는 우리들의 안목은 겨울 서리처럼 매섭고, 때로는 남문의 억새처럼 부드러웠다.
내년에는 하바롭스크 한국교육원으로 떠날 계획을 가진 회원도 있다. 낯선 땅 러시아에서 새로운 경험을 준비하는 그의 눈빛에는 설렘이 가득했다. 영하 20도를 넘나 든다는 하바롭스크의 혹독한 추위도, '즐기는 마음'을 품은 그의 열정 앞에서는 오늘 금정산의 바람처럼 한풀 꺾이지 않을까?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고 배운다는 것 또한 인생을 즐기는 가장 적극적인 방법이리라.
아는 것을 넘어, 좋아하는 것을 넘어, 마침내 즐기는 삶.
그런 삶을 공유할 수 있는 ‘쉼표’와 같은 공동체가 곁에 있다는 사실이 새삼 감사하다. 한 해가 또 이렇게 저문다. 하지만 늘 그렇듯 내일의 태양보다 더 뜨거운 ‘즐거움’이 있기에, 다가올 2026년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