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 필하모닉 앙상블 공연 관람기
매년 1월 1일 오전 11시, 오스트리아에서 개최되는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하나의 로망이자 새해 첫날의 기쁨과 희망을 공유하는 의식과도 같다. 비록 빈의 뮤지크페어라인 골덴홀에서 직접 공연을 듣지는 못하지만, 올해는 전국의 메가박스 실황 중계를 통해 아쉬움을 달랬다. 그러던 차에 들려온 빈 필하모닉 앙상블의 부산공연 소식은 1월의 마지막을 장식할 가장 설레는 기다림이었다.
앙상블(Ensemble)은 '함께', '동시에', '조화롭게'라는 뜻으로 여러 요소가 어우러져 하나의 통일된 전체를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 빈 필하모닉 앙상블은 13명으로 빈필하모닉 수석 및 현역단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2017년 한국과 오스트리아 외교관계 수립 125주년 기념 첫 내한 공연 이후 국내 주요 공연장에서 공연을 이어오고 있는데, 올해는 특히 2025년에 개관한 지역 최초의 클래식 전용 홀인 '부산콘서트홀'에서 열려 그 의미를 더했다. 비수도권 최초로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된 이곳은 명실상부 부산의 새로운 문화적 자부심이 되고 있다.
주요 프로그램은 '왈츠의 왕'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대표곡들과 귀에 익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2번,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오브리비온(망각) 등으로 알차게 구성되었다. 현악기, 관악기 그리고 타악기가 하나로 조화 이루며 2,000여 석의 홀을 가득 채우는 순간, 1월 마지막 날 주말 밤은 환희와 감동으로 온기를 띠었다.
나는 공연을 관람할 때 특정 연주자에게 마음을 실어 듣는 습관이 있다. 이번엔 제2바이올린 주자와 타악기 연주가에게 눈이 갔다. 공연 내내 인자한 미소로 주선율을 받쳐주던 연주자의 진지함과 홀로 다양한 타악기를 다루면서 곡의 완성도를 끌어올리던 타악기 연주자의 역동적 모습을 지켜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이들을 보면서 학생시절 교과서에서 읽었던 피천득 작가의 수필 <플루트 연주자>를 떠올렸다. 화려한 주인공은 아니지만 전체의 조화를 위해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하는 삶의 숭고함과 남의 파트가 연주되는 동안 침묵으로 기다리는 '무음의 연주', 또한 음악의 필수적 요소라는 작가의 통찰이 무대 위의 연주자들의 얼굴 위에 겹쳐졌다.
2시간의 주 프로그램 연주가 끝나고 들뜬 관객의 마음을 아는지 앙코르 연주가 시작되었다. 모두가 앙코르곡에 대한 기대로 숨죽여 기다리는데 시작을 알리는 선율이 조용히 자리를 지키던 플루트의 독주로 울려 퍼졌다. 수필 속 '무명의 연주자'가 가장 한국적인 '아리랑'의 주인공이 되는 순간, 객석은 탄성과 박수소리로 가득 찼다. 이어지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대표곡인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과 관객의 박수가 악기가 된 '라데츠키 행진곡'으로 무대와 객석 비로소 완벽한 앙상블이 되었다.
공연장을 나서며 부산시민공원의 가로등 불빛 아래를 걸었다. 귓가엔 여전히 아름답고 경쾌하며 봄날의 어느 한때를 생각나게 하는 선율이 맴돌았다. 2026년 새해가 밝은지도 한 달, 내일부터 시작되는 2월도 늘 요한 슈트라우스의 음악처럼 행복하고 즐거운 나날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