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이름의 무게

- 아호 유여(有與)에 대한 소고

by eduist 이길재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자신의 디지털 활동이나 창작활동(예를 들면, 밴드, 블로그, SNS 등)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닉네임'을 사용한다. 나는 오랫동안 eduist(에듀이스트)라는 이름을 써왔다. education(교육)에 ~ist(~하는 사람)를 붙여 교육자, 교육하는 사람 등의 의미를 갖도록 하였고, 이 이름은 '나'라는 사람이 추구하는 본질적인 가치가 무엇인지를 드러내는 일종의 퍼스널 브랜드였다.


옛사람들은 본래의 이름을 대신해서 아호(雅號)나 자(字)를 널리 사용했다. 문헌에 따르면 추사 김정희선생은 수백 개의 아호를 사용하며 그 속에 자신의 삶의 모습이나 경계의 가르침을 담았다고 한다. 이는 동양의 전통 관습에서 이름에는 그 사람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생각에 기인한 것으로 부모, 스승, 임금 외에는 함부로 이름을 부르는 것을 결례라고 생각했다. 공적인 자리에서는 직함을 부르지만 문인들이나 친구들 사이에서는 아호를 통해 상대방의 취향이나 인품을 칭송하고 친목을 도모하는 상대의 인격에 대한 예우이자 풍류였다.


평소 동양 고전을 가까이하며 실천궁행하는 지인으로부터 '유여(有與)'라는 아호를 선물 받았다.


'유여(有與)'라는 이름은 논어 <향당> 편에서 공자가 임금 앞에서 보여준 '여여(與與)'한 모습, 즉 위엄이 있으면서도 자연스럽고 조화로운 태도에서 따온 이름으로 여기에 '유(有)'를 더해, 그러한 덕목을 지향하는 데 머물지 않고 몸소 지니고 실천하라는 지인의 깊은 뜻이 담겼다.


朝,與下大夫言,侃侃如也;與上大夫言,誾誾如也。
君在,踧踖如也。與與如也。 -논어, <향당> 편에서


"조정에서 하대부와 말씀하실 때는 강직하셨고, 상대부와 말씀하실 때는 온화하셨다. 임금이 계실 때는 조심스러워하며 경계하시되 거동이 위엄 있으면서도 조화를 이루셨다."


여여(與與)는 '위엄이 있으면서 자연스럽고 조화로운 모습'을 뜻한다. 주희 등에 의하면 여여는' 위의중적지모(威儀中適之貌)', 즉, "위엄과 거동이 알맞게 절도를 갖춘 모습"을 의미하며, 임금 앞이라 긴장은 하고 있지만(踧踖, 축적), 그 긴장감이 밖으로 나타날 때는 당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질서 정연하고 우아하게 표현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오늘날의 말로 표현하면, '격식 있는 자리에서의 당당하고 세련된 매너'라고 말할 수 있다.


'유여(有與)'는 안으로 엄격한 원칙과 공경심을 품되, 밖으로는 물 흐르듯 유연하고 당당한 군자의 풍모를 의미한다. 억지로 꾸미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풍겨 나오는 인격의 향기, 그것이 바로 '유여(有與)'가 지향하는 경지이다.


평생을 직장의 직함이나 사회적 역할(누구의 부모 등)로 불려 왔던 나에게 '유여(有與)'라는 또 하나의 이름은 묵직한 책임감으로 다가온다. 일상 속에서 스스로 '나는 지금 조화로운가? 혹시 내면의 중심에서 벗어나거나 흐트러지지 않았는가?'를 자문하게 하는 죽비와도 같다.


항상 좋은 마음으로 나를 지켜봐 주고 아호를 지어준 지인에게 깊이 감사한다. 앞으로 '유여(有與)'에 담긴 깊은 의미를 삶의 지표로 삼아 경계하고자 한다. 앞으로 맞닥뜨릴 수많은 상황 속에서 나를 흔들림 없이 붙잡아 주는 든든한 중심추가 되어주길 소망한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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