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에 씻긴 아픔, 바다를 향한 희망

- 부산향토문화연구회 주관 군산, 서천 일원 답사를 다녀와서

by eduist 이길재

초승달 아래 새벽길을 나섰다. 미당 서정주는 초승달을 일러 '님의 고운 눈썹'과 같다고 했던가? 구름 한 점 없는 겨울 하늘(冬天) 아래 초승달은 서늘할 만큼 선명하지만, 뺨을 스치는 바람에는 이미 봄의 기운이 서려 있다. 봄이 오는 길목, 이번 답사지는 군산과 서천 일원이다.


내가 답사기를 쓰는 이유는 단 하나다. 나름의 방식으로 답사지를 더듬고 생각하고 기억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몇 가지만 기억에 남기고 나머지는 별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즐겁게 식사한 식당도, 풍광좋은 장소도, 어떤 경우엔 장소나 지역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가끔 누군가 답사지 소개를 부탁이라도 하면 제대로 기억하지 못해 민망한 경우가 있다. 그래서 여러 곳을 방문하는 것보다는 한 곳을 집중해서 보고 생각하는 것을 즐긴다. 내가 이번 답사를 통해 주목한 것은 강과 바다였다.


전북 장수군 신무산 뜬봉샘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충청도 지역을 굽이쳐 흘러 군산과 서천에서 비로소 강을 끝내고 바다에 이른다. 우리나라는 4대 강의 끝마다 바다가 맞닿아 있건만, 이곳에 나의 마음이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강물처럼 흘러온 역사 속에 민초의 애환과 수탈의 아픔이 고스란히 고여 있기 때문이며, 동시에 해양문명과 대륙문명이 충돌하고 교차한 인문학적 사건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인류에게 강과 바다는 생존의 근간이지만 인문학적으로 볼 때 인간이 두 공간을 대하는 태도와 철학은 확연히 다르다. 강이 '정착과 수직적 계승'을 상징한다면 바다는 '모험과 수평적 확산'을 상징한다.


기억과 저항의 공간, 금강 그리고 군산


이름 그대로 비단결처럼 아름다운 금강(錦江)은 지역과 장소에 따라 적벽강, 백마강, 진강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수려한 풍광을 자랑해 왔다. 농경사회에서 강은 젖과 같은 존재다. 비옥한 토양을 제공하고 용수를 공급하며 오랫동안 공동체를 먹여 살렸다. 강은 인간을 모으고 물자를 나르고 정보를 교환하는 네트워크의 중심이었고, 역사적으로 개인의 삶을 넘어 민족의 수난과 영광을 묵묵히 지켜봐 왔다. 그러하기에 강은 인간에게 생명의 근원이자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의 흐름이며, 동시에 모든 상처를 씻어내고 다시 시작하게 하는 희망의 상징이다.


이렇게 에두르고 휘돌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 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째 얼러 좌르르 쏟아져 버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시가지) 하나가 올라 앉았다. 이것이 군산이라는 항구요, 이야기는 예서부터 실마리가 풀린다. - 채만식, <탁류(濁流)> 중에서


부여의 백마강이 고대 일본에 문화를 전해주던 해양교류의 젖줄이었다면 금강의 끝자락에 위치한 군산은 근대사의 아픈 기억이 박제된 거대한 박물관이다. 채만식의 소설 <탁류>의 배경이기도 한 이곳은 맑은 강물이 바다와 섞이며 흐려지듯, 식민지 자본주의에 물든 민초들의 삶이 어떻게 파괴되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주인공 초봉이의 삶을 무너뜨린 것은 정당한 노동이 아닌 고리대금와 미두(米豆) 등 기형적인 자본의 흐름이었다. 쌀 수탈의 거점으로 성장한 군산의 화려한 근대 건축물들은 '중층적 기억'의 공간이다. 화려한 벽돌 한 장 한 장에는 우리 농민의 피와 땀이 서려 있으며, 그 이면에는 수탈의 역사가 흐르고 있다. 특히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는 그 모순의 정점이다. 일제가 내세운 내선일체가 진심이었다면 굳이 이토록 이질적인 타자의 공간을 고집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결국 이 건축양식 자체가 조선을 철저히 타자화하고 식민지화하려 했던 야욕의 물적 증거인 셈이다. '지움의 역사'가 아닌 '기억의 역사'가 되어야 극일(克日)이 가능하다.


경외(敬畏)의 통로, 서천 그리고 바다


군산을 뒤로하고 마주한 서천 갯벌을 보는 순간 숨이 멎을 듯 광활했다. 바다는 인간에게 미지이자 도전의 대상이었다. 수평선 너머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는 공포의 대상이자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통로이며, 서로 다른 문명을 연결하는 거대한 네트워크였다. 강이 민족의 단일성을 강조한다면, 바다는 서로 다른 문화가 섞이는 융합과 다양성의 공간이었다. 또한, 인간의 힘으로 결코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이었기에 거대한 자연의 섭리를 상징하기도 한다. 광활한 갯벌과 바다를 보면서 경외감과 더불어 가슴이 뛴다. 우리 조상들은 저 바다를 보면서 무엇을 생각했을까? 바다 너머 이방인의 방문이나 침입에 대한 두려움으로 그저 바라보기만 했을까? 아니면 미지의 공간에 대한 설렘으로 도전과 꿈을 키웠을까? 역사적으로 보면 바다는 도전과 위협의 수평 축이었다. 장보고의 청해진처럼 번영의 통로가 되기도 했지만 왜구의 침입이나 서구 열강의 이양선이 나타나는 불안과 경계의 공간이기도 했다.


1816년 영국의 해군 함선이 이곳 서천의 마량진에 정박하였다. 그들에 의해 첨사 조대복에게 전달된 성경은 단순한 종교적 전파를 넘어, 해양문명과 대륙문명이 충돌하고 교차한 인문학적 사건이었다.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을 거치며 전 세계로 항로를 넓히던 해양 강국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성경전달은 종교적 선교인 동시에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고 미지의 나라를 탐색하는 제국주의적 확장과 지적호기심의 발로였다. 당시 조선은 성리학적 질서 아래 척화의 분위기가 강했던 시기였다. 하지만 마량진의 관리들은 낯선 이방인을 무조건 배척하기보다는 예우를 갖추어 응대하였다. 말로도 글로도 통하지 못했던 그들이 온몸으로 서로에게 자신의 뜻을 전달하고자 하는 모습이 상상된다. 그들에게서 받은 성경은 읽을 수 없는 기이한 책이었지만 그것은 서구 근대 문명이 조선의 문을 두드린 첫 신호탄이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 하지만 조선의 눈길이 강만이 아니라 바다였더라면 하는 생각은 답사 내내 들었던 생각이다. 당시 영국인들에게 바다는 길이었고, 외부는 정복하거나 교화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들의 시각은 수평적이었으며, 성경을 전하는 행위는 자신들의 가치를 세계에 이식하려는 능동적인 행위였다. 반면, 조선인들에게 있어 바다는 경계였고, 외부는 늘 조심스럽게 살펴야 하는 대상이었다. 그들의 시각은 수직적이었으며 성리학적 정통성을 지키기 위해 외부 문물을 선별적으로 수용하려고 했다. 만약에 우리의 눈길을 바다로 돌렸다면 세계의 역사는 어떠했을까?


우리나라는 북극항로 개척을 통한 해양강국을 꿈꾸고 있다. 강의 시대에서 타인에 의한 바다의 시대로, 이제는 우리의 힘으로 새로운 바다로 나아가는 인식전환과 함께 해양의 시대를 열고자 한다. 1816년 서천 마량진에서 영국해군으로부터 성경을 전달받았던 조선은 서구 문명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이제 한국은 쇄빙선을 만들고 북극의 얼음을 깨며 길을 만들고 있다.


강은 모든 상처를 씻어내고 다시 시작하게 하는 생명의 근원이다. 바다는 그 상처를 품어 안고 세계로 나아가는 무한한 가능성이다. 금강의 애잔한 흐름 속에서 저항의 역사를 배우고, 서천의 넓은 바다에서 개척의 미래를 본다. 민초들의 삶이 속속들이 담겨 있는 강줄기는 굽이굽이 흘러 내려온 그 긴 여정의 끝에 비로소 세상을 향한 열린 바다가 시작되고 있다. 이제 바다를 향해 시선을 돌려야 할 때이다. 지난한 역사의 챗바퀴에서 벗어나 반도의 한계를 넘어 세계를 향해 도약할 기로에 우리가 서 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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