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아무도 생각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알버트 아인슈타인
“11월의 어느 음산한 밤, 그동안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이루어낸 성과를 마침내 내 눈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불안감이 고조된 나머지 통증처럼 느껴졌습니다. 나는 주위에 놓여 있는 장치들을 가져다가 바닥에 누워 있는 물체에 생명의 불꽃을 불어넣기 시작했습니다.... ”
젋은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이 만든 생명체에 숨을 불어넣는 순간 흥분과 공포에 휩싸였다. 소설 <프랑켄슈타인 Frankenstein>이 1818년에 처음 출간되었을 때 많은 독자들은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그 시절 미치광이 과학자가 신의 영역인 생명을 창조하는 이야기보다 더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이야기는 없었을 것이다. 비평가들은 신의 역할을 대신하려고 시도하는 인간을 묘사한 것은 종교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했다. 대체 누가 이런 섬뜩한 이야기를 썼을까? 작가는 분명 소설 속 괴물처럼 흉물스럽고 괴팍할 것이라고 수군거렸다. 하지만 처음에는 익명으로 출간되었으므로 특별히 비난할 대상이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작가의 정체를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은 그 ‘끔찍한’ 이야기를 읽었을 때보다 더 경악했다. 작가는 불과 18살의 매리 고드윈 셀리 Mary Godwin Shelley라는 젊은 여성이었고 금발 머리에 창백한 얼굴을 한 다소곳한 모습이었다.[1]
19세기에는 여성이 소설을 쓴다는 것조차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중산층 여성들은 훌륭한 아내, 딸, 어머니가 되어야 하고 그러한 역할을 벗어나는 것은 사회의 규칙을 어기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 배경에서 메리 셸리가 쓴 소설 프랑켄슈타인은 단지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괴물 이야기가 아니었다. 여성의 자궁을 거치지 않고 실험실에서 탄생한 비극적인 존재에 대한 이야기는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과학 기술의 발달이 불러올 수 부작용을 우려하며 과학의 윤리와 책임에 대해 묻고 있었다. 여성들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중요한 결정에서 소외된 사회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경고였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자연과 인간성을 파괴할 수 복원할 수도 있다. 첨단 산업은 놀라운 발전을 거듭하며 우리의 생활을 편리하고 윤택하게 해 주지만 그에 수반되는 환경오염, 기후 변화, 인간성의 상실, 부의 양극화와 같은 부작용들은 당장 우리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었다. 요즘 기업들이 여자를 적극적으로 채용하는 이유는 단지 일할 사람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수반되는 생명 윤리, 기후 변화, 생태계 파괴, 빈부 격차와 같은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배경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바람직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다양성은 새로운 관점과 아이디어를 가져온다. 새롭게 주어진 수많은 해결 과제들은 생명에 대한 사랑과 모성으로 대표되는 여성성과의 조화를 이룰 때 궁극적으로 인간의 존엄성과 삶의 질을 높일 수 있고 인류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향해 갈 수 있다.
특히 인공지능이 발달할수록 인간적인 다양성, 공감 능력, 관계 지향적 사고를 필요로 한다. 이미 2016년 6월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 포럼에서 의장을 맡은 클라우스 슈밥은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사회 변화를 예상하면서 기계가 채울 수 없는 부분, ‘공감’과 ‘연민’ 등 인간성에 기인한 역할에 대한 수요는 오히려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예를 들어, 프로그래머는 혼자 일하는 직업이라는 선입견과 달리 많은 사람들과 수시로 협력해야 하므로 감성, 공감, 의사소통과 같은 능력이 필수적이다. 첨단 과학이 발달할수록 인간다움과 인간적인 소통에 대한 정서적 욕구는 강해지고 중요해지고 있다.
골드만삭스와 컬럼비아 대학 등에서 실시한 글로벌 연구에서는 다수의 여성을 고용하는 회사들이 수익성의 모든 면에서 다른 경쟁 기업들을 능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학 분야로 진로를 택하는 여학생들이 충분하지 않아서 기업들이 여성 인재를 고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남녀가 서로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다. 비슷한 사람들만 모여 있다면 다양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는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간단한 예로, 가전제품을 만들 때나 주택을 설계할 때는 여성들의 의견을 반영할 때 보다 안전하고 효율적인 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고 남성들이 보지 못하는 새로운 곳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미래 인재들이 갖춰야 할 능력은 바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답을 찾아내는 능력이다. 인간의 감정을 부여하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는 있겠지만 그러한 프로그램은 인간만이 만들 수 있다. 21세기 과학기술 분야는 이러한 내면적 가치를 지닌 여성들의 재능, 경험, 열정을 필요로 한다. 우리 딸들이 시대적 변화에 발맞추어 가는 모험에 도전할 준비가 된다면 인공지능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재로 성장할 수 있다. 우리가 성차별을 이야기하는 것은 단지 여성의 지위를 높이거나 남녀의 숫자를 똑같이 올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과학 연구 분야는 말할 것도 없고 궁극적으로 성차별이 없는 문화와 환경이 만들어질 때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양성 평등의 관점에서 남녀의 차이를 이해할 때 우리 사회는 보다 다양하고 창의적인 문화로 발전할 수 있다.
[1] John, Wilson Croker, review of Frankenstein by Mary Shelly, Quarterly Review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