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브런치 작가다.<너를 낳아보니 나도 아기였어>라는 브런치북을 발간했다. 지금 읽어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작가라는 이름을 가지고 글을 성실히 쌓고 한 권으로 묶어본 최초의 경험이었다.
이 에세이들은 네이버 블로그에 동시에 연재했는데, 나름 네이버 메인에도, 브런치 메인에도 자주 오르고, 몇만 명 이상의 조회 수도 기록하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요즘 에세이를 쓰지 않았다. 브런치에 새 글 업데이트를 한지 몇 개월이나 지났다.
그에 비에 블로그는 부지런히 썼다. 이달의 블로그로 선정된 6월에는 이틀에 한 번 정도는 글을 써서 올렸던 것 같다. 왜 이렇게 된 걸까.
왜 나는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고,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시간이 없다.
브런치 글은 작가라는 이름을 걸고 쓰는 거라 아무래도 완결성을 추구한다. 퇴고도 여러 번 한다. 한숨에 써나간 에세이가 없다. 글 하나를 일주일씩 붙들고 있기도 했다. 붙들고 있는 시간만큼의 대단한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데도 그렇게 했다.
그래도 한때는 그게 가능했다. 한창 브런치에 글을 올릴 때는 아이가 하나였으니까.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서 시간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애 하나는 어린이집에 보내고 하나는 끼고 있는 지금은... 글쓰기에 몰입할 시간의 여유가 없다. 틈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온 정신을 다해 집중하려 하는데, 흐름이 계속 끊긴다. (잠깐 방심하면 집안이 이렇게 된다. 울거나, 싸우거나 위험하거나, 엎지르거나)
그래서 집중을 덜하고도 쓸 수 있는 글쓰기를 한다. 그게 블로그다. 내가 살고 있는 모습을 그냥 보여주기만 해도 거기서 필요한 것을 얻어 가는 사람이 있다. (놀라운 사실이다.) 정제되지 않은, 날 것 같은 글도 성실하게 읽어가는 사람들. 쉬운 글이, 잘 읽히는 글이 오히려 좋다는 사람들이 있다. 블로그에서는 작가가 아니라 블로거라서 좋다. 되게 멋있는 척하지 않아서 좋다. 생각난 것을 바로바로 써도 되고, 완결성이 있어야 한다는 강박도 없다. 그리고 내 글을 읽으면 착해서 좋단다. 그 칭찬도 참 마음에 든다.
어릴 때 나는 작가가 꿈이었는데 글쓰기를 못했다. 교내 글짓기 대회 가작 정도는 해도 공모전에 나가 대단한 상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초등학교 때 유일하게 글쓰기로 칭찬받은 적이 있다.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에게서다. 선생님은 내 일기가 너무 좋다고 하셨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어디 낼 곳이 있으면 내고 싶다고. (하지만 일기장 한 권을 제출해서 심사하는 대회는 없었다.) 나는 타고나기를 신춘문예보다는 일기장이 어울리는 사람이었나 보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SNS와 1인 미디어의 시대, 일기장을 당당히 보여주고 칭찬받는 시대를 살아가게 된 것이.
어쨌든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블로그는 일기장 같고, 브런치는 신춘문예 같다. 블로그는 친한 친구 카톡 방에서 있는 것 같고, 브런치는 어느 강단에서 프레젠테이션 하는 것 같다. 블로그는 시시콜콜한 가십 인터넷 잡지 같고, 브런치는 현대 문학 정간물이 임시로 인터넷에 자리 잡은 것 같다. (인터넷에서 태어났지만, 궁극의 목적은 종이책에 있는...) 그래서 이 글도 블로그에만 올리고 브런치에는 안 올리려고 했다. 악플 달릴까 봐.
여기까지 읽은 분들은 악플을 남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으시겠지만, 내가 이 글을 시작한 진짜 목적은 따로 있으니 조금만 참아주시길. 결국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나는 브런치를 못 떠난다는 것이다. 블로그 글보다 브런치 글이 더 오래갈 글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놓을 수가 없다. 그 글이 나를 치유했고 나를 지금의 나로 만들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글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눈물겹다.
이율 낮은 적금에 꼬박꼬박 입금하듯 써 내려간 나의 브런치다. 먼지만 차곡차곡 쌓이는 이곳에 다시 들어왔다. 기존에 발행한 <너를 낳아보니 나는 아기였어>라는 브런치북을 정리하고 새롭게 발행할까 한다. 아예 없애는 것은 아니고, 우선 글을 다듬고 분량을 줄여서 가독성 있는 글로 바꾸고 있다. 아이 이야기보다는 엄마와 나에 대한 이야기에 초첨을 둔 뾰족한 주제로 글을 묶으려고 한다. (부족한 글을 좋게 읽어준 분들께 정말 감사드릴 뿐이다. 다시 읽어보니까 와...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었다.)
궁극적으로는 윌라 오디오북 공모전에 응모하려고 하는데 잘 될지는 모르겠다. 되지 않아도 상관은 없다. 내 이야기가 오디오북이든, 전자책이든, 종이책이든 어떤 거창한 모습으로 변신하지 않더라도, 인터넷에 남아 그저 떠돌게 되더라도 읽을 만한 것은 되었으면 좋겠다.
쉽지는 않다. 이야기들이 다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어서. 말 안 듣는 아이 스무 명을 골라한 학급에 몰아넣은 것처럼 소란스럽기만 브런치다.
그래도 이게 아마추어의 특권 아닐까. 고치고, 또 고치고, 또 고쳐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 브런치는 이래서 재밌긴 하다. 아마추어면서 작가라고 으스댈 수 있어서. 잘난척하기 위해 나는 브런치를 계속하게 될 것 같다. 공모전에는 연이 없는 인생이지만, 까짓 브런치 신춘문예, 한 번 도전해볼 수도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