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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지이 Aug 28. 2020

SNS로 '성공한 덕후'된 사연 2가지

XYZ:얽힘



 SNS를 하다 보면 생각지 못한 만남이 생긴다. 오프라인에선 아무런 연이 없는 사람과 소통하게 된다. 그것도 아주 유명한 사람과 말이다. 내겐 그런 특별한 경험이 두 번이나 있었다. ‘성공한 덕후’를 줄여서 ‘성덕’이라고 한다는데, 내가 ‘성덕’이 된 사연 두 가지를 이곳에 소개하고 싶다.



 첫 번째 만남은 트위터의 매력에 푹 빠져있던 2010년에 일어났다. 영화 <제 8요일>을 만든 자코 반 도마엘 감독이 판타스틱 영화제 초청으로 한국에 방문한 해도 바로 그 해였다. <제 8요일>은 다운증후군인 조지와 아리의 순수한 우정을 그린 감동적인 영화로, 내 인생의 영화로 손꼽는 작품이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부천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일정이 맞지 않았다. 사실 간다 해도 멀리서 지켜볼 뿐이고, 만난다 해도 언어가 달라 입 한 번 떼지 못할 거였다.



 하지만 낯선 이에게도 용감하게 말을 걸 수 있는 SNS란 도구가 있었다. 나는 자코 반 도마엘 감독의 현지 가이드와 통역을 맡던 한 영화제 관계자의 트위터에 이런 트윗을 남겼다.




트윗을 통해, 자코  반 도마엘 감독님이 한국에 계심을 알았습니다. 저는 ‘제 8요일’을 보고 제 인생의 진로를 결정하였습니다. 저는 지금 초등학교의 특수학급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10살의 다운증후군을 가진 어린이가 절 보고 웃을 때마다 저는 제 인생을 바꾸어 놓은 조지의 미소를 떠올립니다. 이 어린이를 만날 수 있는 축복은 모두 감독님 덕분입니다. 괜찮으시다면 저의 이야기를 감독님께 전해주실 수 있을까요.



 며칠 후, 나는 기다리던 답을 받았다. 그 영화제 관계자는 내 메시지를 친절히 통역하여 도마엘 감독에게 전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도마엘 감독이 내게 주는 메시지도 전했다. 아마도 “그녀에게 고맙다고 전해주세요. 그녀에게 ‘행복하라’는 단순하지만 강한 메시지를 전해주세요.”라고 말한 모양이었다. 가슴이 벅차던 감동의 순간이었다.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들었다. 벨기에라는 먼 나라에서 온 감독이 아시아 낯선 나라에 사는 한 여자가 자기 영화로 인생의 방향을 결정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면 기분이 어떨까? 그에게도 감동적인 순간이지 않을까? 고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국 땅을 돌아보며 ‘영화 만들기 참 잘했다.’라는 생각을 했다면, 내가 그의 인생에도 영향을 준 건 아닐까?



 두 번째 만남은 블로그를 하고 있는 2020년에 일어났다. 10년의 세월이 흘러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나는 육아 정보와 에세이를 쓰는 용도로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며칠 전, 아기와 함께 들을 창작 동요를 선곡해서 목록을 공유했는데, 뜻밖의 손님이 찾아와 댓글을 남겼다. 그는 바로 작곡가 이강산 선생님이었다. “동산 위에 올라서서 파란 하늘 바라보며…”로 시작하는 유명한 동요, 1991년 MBC 창작 동요제 금상을 받았으며, 교과서에도 실린  동요, <하늘나라 동화>의 작곡가였다.





 주옥같은 동요 명곡들을 영원히 사랑해 주길 바란다는 메시지였다. 특수문자와 이모티콘이 가득한 댓글에 따뜻하고 다정한 그의 성정이 느껴졌다.  댓글을 읽으며 잠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매년 하는 창작동요제를 아이돌 신곡 발표만큼이나 기다리던 때, 수상곡의 악보를 구해 한 아이는 피아노 치고, 나머지는 피아노 주위에 모여 목청껏 노래 부르던 때로 말이다.



 이어서 선생님도 대댓글을 남겼다. 20대 시절, 동요가 너무 좋아 동요제마다 악보 원서를 제출하고 본선에 올랐다는 연락을 받으면 마냥 행복해서 흥분하던 때가 그립다고 했다. 당시 동요대회를 열면, 아이들이 자신이 쓴 창작동요 악보를 들고 사인을 해달라며 줄을 섰다고. 나와의 소통이 그가 옛 시절을 추억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도마엘 감독도 이강산 작곡가도 SNS가 없었으면 못 만났을 것이다. 내가 가진 감성의 지분을 몇 퍼센트씩 나눠 갖고 있는 이들, <제 8요일>이나 <하늘나라 동화> 말고도, 수없이 많은 노래와 영화와 책들로 나를 구성해준 은인들. 나는 그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SNS에서 외 것이다. 진짜 아름다운 것이 여기 있다고.



 SNS는 나에게 별자리다. 수억 광년 떨어져 있는 별이라도, 결코 만날 수 없는 사람이라도, 우리는 별자리를 통해 언제든 연결다. 멀리 떨어진 것 같아도 눈길을 거두지 않고 긴 실선으로 연결하면, 그게 커다란 별자리가 된다. 앞으 또 누군가와 얽히게 될까. 밤하늘처럼 아득해서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연결되어 총총 빛날 수 있다면, 누구도 끝내 외롭지 않으리라는 것은 알겠다.

작가의 이전글 타인의 슬픔은 '공부해야 하는 과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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