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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지이 Oct 17. 2019

타인의 슬픔은 '공부해야 하는 과목'이다.

최초의 이별을 겪은 아기의 눈물을 추억하며

슬픔은 이토록 개별적이고 구체적이고 성가시고 집요하고 난데없다. 예습과 추론이 불가능하고 복습과 암기로 공부해야 하는 과목이다.

-은유 <다가오는 말들>



이 문장 하나를 읽고, 침대 위에 무겁게 가라앉은 몸을 겨우 일으켰다. 문장이 내게 척척 걸어와 자기도 움직이는데, 작 살아있는 너는 움직이지 않을 거냐고 말하는 것 같았다.



무기력의 근원은 몸살 기운에 있지 않다. 피로감은 임신 증상이라는 핑계, 나 자신 속일 수 없었다. 침대는 정체 모를 우울에 침잠되었고, 그 위에 뉘인 내 몸도 함께 깊이 빠져다. 몸은 편해도, 정신의 관절은 영화 <엑소시스트> 빙의된 아이처럼 우둑우둑 꺾이고 있었다. 나에겐 퇴마 의식이 필요했다. 그리고 역시 내게 가장 효과적인 퇴마 도구는 글이고, 문장이었다.



읽었으니, 나는 써서라도 움직여야 했다.







시작부터 힘든 하루다. 편도가 부어 칭얼거리는 아 데리고 아침 일찍 소아과에 다. 열이 나지 않으니 괜찮다고, 금방 지나갈 가벼운 감기약을 먹인 뒤 아기를 데려간 곳은 어린이집이었다. 는 평소와 달리 심하게 울며 매달렸다. 순간 나는 지난밤에 찾아온 오한과 두통이 떠올랐고, 임신 중임에도 삼킬 수밖에 없었던 타이레놀 한 알과, 새벽 네 시를 깨운 아기의 생떼가 떠올랐다. 순간 나는 냉정했다. 생존 본능이었다. 하루 중 서 시간이라도 육아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엄마의 의무를 잠깐 저버리고 싶었다. 다행히 보육교사로서의 의무를 다하려는 어린이집 담임은 나를 안심시켰다.



"가셔도 돼요."



사위어가는 아의 울음소리를 버석버석 밟으며, 어린이집을 빠져나왔다. 아 울음 어린이집 적응을 위한 통과의례라 여기던 예전의 당당함은 온데간데없었다. 떳떳하지 못다. 난 그저 멀리멀리 도망가고 있었다. 인간이 이기적인 것 알고 있었지만, 엄마가 된다고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내 배로 낳은 아이의 고통보다 내 고통이 우선이었다. 고요한 곳에서 쉬고 싶었다. 하지만 죄책감으로 소란할 대로 소란해진 내면이 조용히 쉴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의 울음은 늘 견디기 힘들었다. 아기가 우는 시간만 잘 견딜 수 있다면, 세상에 육아 우울증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끝없이 울면, 육아는 일종의 지옥 체험이 됐다. 갖은 방법을 다 써도 해결해줄 수 없는 울음 앞에 엄마만큼 무력한 사람도 없었다. 내가 평온한 상태면 그나마 괜찮았다. 그러나 내면이 이미 자기 울음소리로 가득할 땐, 외부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까지 보탤 여력이 없었다. 슬퍼하는 이에게 도리어 화를 내는 냉혈한이 되는 것보단 오늘처럼 자리를 피하는 편이 나았다.  



그래도 돌 전에는 상황이 나았다. 배고프다고 울면 얼른 젖병을 물리면 됐고, 엄마 품을 그리워하면 얼른 안고 흔들어 주면 됐다. 게다가 아기 울음소리라는 소음을 원천 차단할 아이템이 있었다. 바로 노리개 젖꼭지, 일명 '쪽쪽이'였다. 쪽쪽이를 물리면 태풍의 눈 속으로 들어간 것처럼 고요와 평정이 찾아왔다.



아기를 재울 때도 쪽쪽이는 긴요했다. 리모컨의 음소거 버튼처럼 사용 방법도 간단했다. 불을 끈 깜깜한 방에서 분유를 먹이면 아기의 눈은 스르르 감기곤 했다. 수유가 끝나 때쯤 젖병 젖꼭지를 아기의 입에서 뗌과 동시에 쪽쪽이들이다. 아기는 입안이 텅 비는 찰나 느끼지 못고, 빠는 입은 젖병에서 쪽쪽이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그 후 아기는 뒤척이며 스스로 트림 하고, 조금 있다가 잠에 빠져들었다.



당시 아기에게 슬픔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쪽쪽이라편리한 도구가 있었기에, 날것의 감정이 무방비로 노출되는 횟수가 줄었을 뿐이다. 덕분에 나는 잠시라도 아기의 슬픔에 무관심할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 물건은 사용시한이 정해져 있었다. 첫돌 맞이 영유아 검사에서 쪽쪽이를 당장 끊으라는 권고가 내려졌, 나는 이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쪽쪽이를 상실한 후, 아기는 며칠간 죽을 듯이 울어댔다. 그간 공짜로 제공했던 평화에 대한 대가를 한꺼번에 받아내려는 듯했다. 실컷 놀아고, 안아고, 책 읽어고, 자장가 불러줘도 소용이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은 불을 끄고 아기 옆에 시체처럼 눕는 거였다. 아기는 어둠 속에서 부산했다. 자는 척을 하는  몸을 타 넘고 방 한쪽 끝까지 굴러갔다가, 옷장 옷을 다 헤집.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책을 펼쳤다가, 하릴없이 공기청정기 버튼을 눌다가, 결국엔 엎드려 꺼이꺼이 울었다. 자기 친구를 찾아달라고, 돌려 달라고. 그 친구가 없으면 잠을 잘 수가 없다, 울음으로 말다. 몸서리쳐지도록 긴 밤이었다.



생각해보면, 아기에게는 인생에서 처음 겪어보는 상실이자 이별이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개별적이고 구체적이고 성가시고 집요하고 난데없다'는 말 이상으로 슬픔을 잘 설명할 수 없다. 쪽쪽이와 이별해야 하는 이유는 아무리 설명해도 설명이 안 됐다. 슬픔은 '예습'과 '추론'이 안되기 때문이었다. 아기는 우는 게 당연했고, 그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그 울음을 목격하는 것도 당연했다. 울음을 그치기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다면, 내가 할 일 그 울음을 옆에서 견디는 거였다.



아이가 아플 때그랬다. 평소에 좋아하던 만화도, 달콤한 주스도, 비타민 사탕도, 부드러운 카스텔라도, 엄마의 품도 소용없다면, 아기는 그저 우는 수밖에 없다. 엄마를 비난하거나 공격하려는 의도로 우는 게 아니었다.  아픈 존재에게 할당된 운명 같은 거였다. 그 운명에서 나는 타자였다. 



부모와 자식 간의 진득한 고리를 끊어놓고 다시 보기로 했다. 아기 아무리 분신처럼 느껴져도 너는 너, 나는 나인 독립된 개체였다. 아무리 노력해도 아기만큼 아플 수 없다는 걸, 아무리 노력해도 아기의 감정을  감정만큼 소중히 여길 다는 걸 인정하고 나니, 모성이란 게 대단치 않았다. 나약한 존재라 고백하니 비로소 보였다. 나는 아이 앞에 엄마가 아닌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의 엄마 또한, 엄마가 아닌 사람이었다. 그녀는 내 감정에 아무런 책임이 없었다.



죄책감과 동침하던 침대에서 걸어 나온 나는 아기의 슬픔 앞에 투항하기로 했다. 슬픔과 대결하는 것도 아니고, 슬픔이 없는 곳으로 망연히 도망가는 것도 아니었다. 투항은 행동이었다. 두 손을 번쩍 든 채로 슬픔을 향해 두려움 없이 척척 걸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슬픔 옆에 죽은 척하고 드러눕는 것이다. 아무리 사랑해도 내가 너만큼 슬프고 아플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면, 그 밤은 비록 길겠지만, 전만큼 괴롭진 않을 것 같았다.



"네 슬픔을 내가 전부 알 수는 없어. 대신 아파줄 수도 없어. 그래도 네 슬픔에 대해 더 알아갈 거야. 더 깊이 공부할 거야. 달달 외울 거야. 잊지 않게 계속 떠올릴 거야."



모성애조차도 타고나는 게 아니라 길러지는 것이라고 한다. 사랑도 재능이 아니라 노력의 성과물이라 생각하며, 피붙이의 슬픔에 해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면 세상에 널려 있는 슬픔도 죄책감 없이 같이 슬퍼할 수 있을 것 같다. 철저한 '복습'과 '암기'가 없다면 절대 타인의 아픔을 전부 알 수 없으니, 제대로 같이 울 수 있는 날까지 그저 노력해야 할 이다.



그렇게 제대로 된 엄마가 되고 나서 돌아보면, 

나도 조금 제대로 된 사람이 되어 있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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