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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지이 Oct 08. 2019

아기는 세상을 통째로 깨물고 싶어 해

너는 온전하고 완전한 존재니까



사과를 씻어 큼직한 한 조각을 베어낸다. 껍질을 깎고, 먹기 좋게 썰어서 줄 아기의 분량이다. 엄마가 소꿉놀이를 하듯 칼로 사과를 조각내는 동안, 아기는 껍질이 그대로인 붉은 사과 덩이를 집어 든다. 그리고 입을 크게 벌려, 깨문다.  



"안 돼! 깎아야 돼!"



말릴 새가 없다. 아기의 입술 언저리는 이미 달콤한 과육으로 흥건하다. 작은 두 손이 들기엔 사과는 거대하고 무거워 보이지만, 아기의 입은 거침없이 사과 표면을 향해 돌격한다. 금방 껍질과 속살이 함께 물어뜯겨 너덜너덜해진 사과. 그래도 아기는 멈추지 않는다. 꼭지 부분까지 집어삼키려고 입을 벌린다. 야성미가 넘친다.



그렇게 아기 사과 한 덩이를 정복한다. 대신에, 접시에 가지런히 담긴 작은 사과 조각은 엄마 몫이 된다. 덕분에 오늘의 다과는 꽤 교양 있다. 포크로 작은 조각을 찍어 얌전히 입에 집어넣으면서 나는 생각한다.



아기 통째로 깨물고 싶은 게 비단 사과뿐일까.








온.



'온'은 입 밖에 소리 내기만 해도 마음이 충만해지는 말이다. 온 가족, 온 세상, 온 힘, 온통... '온'은 '전부의 또는 모두의'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길지 않게, 거창하지 않게  모든 것을 아우르는 힘을 가다.


 

아기는 예전부터 '온'을 좋아했다. 뭐든지 통째로 기를 원했다. 온 휴지, 온 물티슈는 다 그의 것이었다. 한 장성에 안 차, 티슈 한 상자, 물티슈 한 팩의 내용물을 전부 뽑아내야 직성이 풀렸다. 온 장난감과 온 책도 다 그의 것이었다. 블록은 바구니째로 전부 뒤집어엎었고, 책장의 꽂힌 전집은 모조리 꺼내서 바닥에 흩뜨려놓았다. 식빵도 한 조각 꺼내 주면, 엄마도 모르는 사이 봉지낚아채 달랑달랑 들고 방으로 내뺐다. 다 쓰는 것도, 다 가지고 노는 것도, 다 읽는 것도, 다 먹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자기 손아귀에 두어야 만족스러운 듯했다. 수습은 모두 엄마 책임이었다.



  


엄마는 적당한 양과 적당한 크기를 정하는 습관이 있었다. 아기 머리를 묶을 때 필요한 고무 밴드는 두세 개니, 딱 그것만 주고 싶었다. 왜 고무밴드 더미는 매번 바닥에 우수수 쏟아져 색색의 동그라미가 가득한 추상화를 그려야 나, 수십 개의 고무밴드를 일일이 주워 담으며 생각했다. 아기는 아기답게, 자기 크기의 알맞은 양의 세상만 향유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아기는 자지 않겠다고 버틸 때도 그랬다. 엄마, 아빠가 밤 12시에 잠든다고, 자신도 12시까지의 시간을 즐길 권리를 주장하는 아기 앞에서, 나는 임의의 기준을 정해 딱 그만큼의 자원만 제공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아이에게 맞게, 수준별로, 계적으로. 이것은 내게 만연한 교사 직업병 징후였다.



"이 정도면 충분해. 그게 널 위한 거야."



아기를 위한 거라고 하면, 귀찮은 육아의 순간을 모면하려던 핑계가 제법 멋지게 포장됐다. 음식물을 잘게 써는 것도 다 음식물이 아기 목에 걸리지 않게 하려는 거였다. 아기는 큰 덩어리를 욕심껏 입 한가득 집어넣다가 도저히 씹어 삼키지 못해 그대로 뱉어 때가 많았. 한입 크기로 썰고, 포크로 찍어 입에 쏙 넣는 건 얼마나 깔끔하고 안전한가. 아기가 과육을 질질 흘리거나, 부스러기 여기저기 떨구는 게 싫은 엄마의 마음과 아기 필요가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가.



하지만 아기는 엄마가 프로그래밍한 육아 현장에서 번번이 버그를 꿈꿨다. 아빠와 함께 생활용품점에 간 날이었다. 그곳엔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아기는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지만, 반드시 어른이 손을 잡아줘야 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계단을 혼자 오르내리게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서너 계단을 올라간 아기가 갑자기 잡은 내 손을 뿌리치는 거였다. 엄마 손을 잡지 않고 가겠다는 의도가 분명했다.



"혼자 올라갈 거야? 그래, 조심해서 올라가!"



평소 스스로 하겠다는 아기의 의지를 장려하는 편이었다. 불안하지만 애써 담담한 척 아기의 손을 슬며시 놨다. 대신에 아기가 넘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도와줄 수 있도록 아기 등 뒤에 바짝 붙어 다. 그런데 아기가 이상했다. 원하는 대로 손을 놔줬는데도 계속 짜증. 알아들을 수 없는 말 하며 고한 의지를 담아 으로 계단 아래쪽을 가리켰다.



"엄마, 저기로 내려가라고?"



혹시 하는 마음으로 나는 계단 한 칸을 내려가 보았다. 아기의 얼굴이 갑자기 환해지는 걸 보니, 정답을 찾은 게 틀림없었다. 계단 아래에 도착하자, 아기는 아주 만족스러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뒤에 밀착되어 있던 짐스러운 존재를 멀리 떼어놓은 것 홀가분해하는 미소였다.



그리고 아기는 혼자 '온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계단 손잡이조차 잡지 않은 아기는  넘어질 듯 아슬아슬 휘청거렸고, 그때마다 엄마와 아빠는 곧 뛰어 올라갈 태세 하며 몸을 움찔거렸다. 아기는 혼자서 균형 잡는 게 쉽지 않다는 걸 금방 파악했다. 대수롭지 않은 듯 엎드리더니 네발로 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계단 끝까지 아주 안정적으로 말이다. 사람들은 이 귀여운 네발짐승을 의아한 눈으로 보며 지나갔다. 눈치 볼 새도 없었다. 우리는 아기가 계단을 다 올라간 걸 확인하자마자 부리나케 달려 올라가 아기를 안아 들었다.



"잘했어. 잘했어!"



칭찬이 안도의 한숨 소리와 섞여 푹푹 새어 나왔다. 이에 반해 아기의 표정은 환희로 가득했다. 부모의 마지못한 칭찬 때문인지, 아니면 내적 성취감 때문인지 몰랐다. 거실 매트에 물통을 엎질렀을 때, 빨래 바구니를 뒤집었을 때 같은 표정이었다. 그는 엄마의 보호와 감시 안에 있던 세상이 헝클어지고, 전복되고, 일그러지고, 깨지고, 흐트러질 때마다 짜릿함을 즐기 건지도 몰랐다. 내 맘대로 가지고 놀 수 있는 게 세상이라는 걸 깨닫게 되면, 사람은 저렇게 득의양양 해지는 걸까.








한때 나는 아기 간식으로 단호박을 자주 쪘다. 단호박은 참 신기했다. 처음에는 칼끝도 디밀기 어려울 정도로 단단하다가, 푹 찌고 나면 양갱처럼 부드러워졌다. 연한 속살도 그렇지만, 거북이 등껍질처럼 딱딱해 보이던 껍질도 마찬가지였다. 그 맛은 얼마나 달콤한지. 특히 껍질 부분은 잘 익은 밤을 먹을 때와 비슷한 맛과 식감이 느껴졌다.



아기는 사과와 마찬가지로 단호박도 째로 먹으려 했다. 아기가 커다란 단호박 덩어리를 집어 들었을 때, 나는 문득 흰 줄무늬와 반점이 있는 짙은 녹색의 울퉁불퉁한 껍질 지구의 지표면처럼 느껴졌다. 아기의 작은 입이 둥근 단호박을 베어 물었을 때, 나는 아주 손쉽게 허물어지는 지구를 봤다. 이가 몇 개 없어도 상관없었다. 험상궂은 형태의 지표면은 아기 입안에서 아주 쉽게, 아주 달콤하게 으스러졌다.



지금까지 나는 아기를 울리지 않은 것, 아기를 괴롭히지 않은 것, 아기를 더럽히지 않는 것, 아기를 위험에 몰아넣지 않는 것을 아기를 위한 길이라 믿었다. 모든 불안 요소가 제거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건, 아기의 불안이 아니라 엄마의 불안이었다.



뭐든지 꼭꼭 씹으면 삼킬 수 있다고 생각하면, 누구나 대범해 것 같. 세상은 크고, 자신은 작다는 인식에서 벗어난다면, 아기 높은 계단을 혼자 오르는 것처럼 세상에 맞서는 용기를 얻게 될 것이다. 아기는 내게 말해 준다. 모든 도전이 내 수준에 맞는 건 아니라고. 하지만 가끔은 부딪힘을 통해 운 좋게 세상이 의외로 말랑하고 부드러웠다는 걸 깨닫게 될 거라고. 세상은 사실 잘 찐 단호박 같은 건지도 모다. 언젠가 지구를 통째로 깨부수는 용기에 대한 보상처럼 달콤함이 찾아올 것이다. 그걸 깨닫게 해 준 아기는 정말 ''전하다. 그리고 완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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