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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지이 Sep 24. 2019

아기 변기에 빵이 들어간 이유

이야기가 되는 건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요즘은 아기 변기도 어른 것의 축소형으로 나온다. 작 동글동글하고 반짝반짝하다. 그 모양이 귀여워 일찌감치 들여서 거실  몇 달째. 아기는 아직 배변을 가리지 못하고, 그 물건도 아직 제대로 된 변기 역할을 못하고 있다.



그래서  물건의 정체성은 아직도 깨끗하고 새하얀 장난감이다. 처음에 아기는 변기를 탈 것의 일종으로 간주했다. 거꾸로 앉아서 "빠빵!" 소리를 내며 끌었고, 물 내리는 버튼을 눌러 녹음된 물소리를 경적처럼 울리며 다녔다. 나는 아기의 상상력에 장단을 맞춰주려고, 종이로 핸들을 만들어 붙였다. 아기가 변기에 앉는 건, 짧은 극이 막을 올린다는 신호였다.



때로 아기변기에 앉 <엄마, 나 응가할래>라는 책을 읽었다. 한 아이가 변기에 앉아 일을 보는 과정이 실감 나게 그려진 그림책이다. 아기가 변기 위에서 힘을 주는 장면이 나올 때 나는 얼굴이 시뻘게질 정도로 끙끙거리는 흉내를 냈고, 아기도 그 흉내에 자진해서 동참했다. 인상을 찌푸리고 어깨를 움츠리며 부들부들 떠는 아기의 응가 연기는 별점 5점짜리였다.



김은수 글 신가영 그림 <엄마, 나 응가 할래>중에서



하지만 변기를 장난감 정도로 여기다 보니, 실제 배변 훈련 기약 없이 미뤄졌다. 잦은 시뮬레이션이 실전에서의 성과로 연결되 않았다. 엉덩이 통풍을 위해 기저귀를 벗겨놓을 때마다 쉬야와 응가는 변기에 하는 거라 알려줘도, 아기가 실례하는 건 늘 엉뚱한 장소에서였다. 어린이집 선생님은 두 돌이면 충분히 가릴 수 있다고 조언했지만, 기저귀 떼는 건 언제든 할 수 있 조급마음 없이 편히 지냈다. 



그런데 엄마의 느긋한 태세를 눈치챈 건지, 아기는 자꾸 이상한 사건을 일으키기 시작했. 어느 날부턴가 아기 변기 앞에 물을 쏟은 흔적이 자주 목격됐다. 오줌인가 싶어, 아기의 행적, 쏟은 물의 색과 냄새 등을 철저히 수사지만 오줌은 아니었다. 물을 쏟을 곳은 많고 많은데, 하필이면 왜 항상 변기 앞에 물을 쏟는 걸까. 수상하기 이를 데 없지만, 현장을 목격하지 못한 나는 어렴풋한 심증만 가질 뿐이었다.



어떤 날은 변기에 기이한 모양의 물건이 들어 있는 걸 보게 됐다. 아기가 소꿉놀이할 때 가지고 놀던 꽈배기 모양의 장난감이었다. 얼핏 보면 응가로 보이기 딱 좋았다. 왜 변기에 들어있었을까? 많고 많은 물건 중에 하필이면 왜 응가와 가장 닮은 물건을 골라서 변기 속에 쏙 넣었을까. 아기는 시침 뚝 떼고 다른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붙들고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 일도 결국 아리송한 미제 사건으로 남았.





추측하건대, 아기는 일종의 실험 했 것 같다. 쉬야를 닮 물을 쏟, 응가를 닮은 빵을 변기에 넣으며, 변기 사용법을 연습하고 있었던 거다. 아기는 배변과 변기를 부단히 연관시키는 자기 주도적 학습자였, 제 삶에 주어진 수수께끼를 놓지 않고 진지하게 매달리는 연구자였다. 아니, 삶의 진리를 밝히려는 구도자라고 해도, 아기의 연령대에서는 아깝지 않은 수사였다.



나는 본디 변기의 역할을 하는 변기보다, 탐구의 대상이 되는 변기가 훨씬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세상 모든 아기언젠가는 다 해낼 배변 성공 스토리보다는 변기 속에 똥 대신 빵을 들어가는 에피소드가 더 미있다. 그래서 나는 배변 훈련이 완료된 시점이 아닌, 배변 훈련이 진행 중인 지금 시점에 이 글을 쓰게 됐다. 물론 처음 변기 제대로 사용할 순간의 환희는 평생 기억에 남겠지만, 우리 부부가 깔깔거리 오래 두고 회자할 이야깃거리는 바로 '변기 속에 든 빵'이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난 마지막 회를 못 본 드라마가 다. 웰메이드 드라마여도, 이상하게 마지막 회는 뻔하게 느껴질 때가 다. 예상한 마지막 회는 지루하고, 뻔함을 극복하려 예상을 비트는 마지막 회는 개연성이 떨어져 뒷맛이 나빴다.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는 더 그랬다. 서로의 마음을 조금씩 알콩달콩 키우다가, 같은 마음을 확인하는 결정적인 순간까지 미진진하지만, 정작 연애가 시작된 이후부터는 식상한 느낌이 들었다. 연애의 시작 전은 그 모양이 각기 다른데, 연애 시작되면 그 모양이 다 비슷비슷해지 때문인 듯했다.



정해진 목표, 정해진 결말이라는 , 내용이 빈약하기 짝이 없다. 목표를 달성했다는 사실은 써봤자 한 문장밖에 되지 않다. 실상 풍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건,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일어나는 과정, 누구도 예상치 못 에피소드들이다. 과정은 단출한 적이 한 번도 다. 늘 창의적이고 재기 발랄해서, 이야기 되고, 소설 되고, 드라마 다. 



개인의 역사도 실수 속에서 가장 강렬한 흔적을 남기는 건지 모르겠다. 먼 훗날 내게 오래 남을 이야기 결국 과정에 관한 것이라면, 철없고, 어설프고, 미흡한 지금 나의 이야기 제법 귀하게 여겨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변기에 장난감 빵이 넣었던 실없는 시절아기의 생애를 웃으며 기록하게 듯, 숱한 실수와 부끄러운 기억으로 점철된 나날조차 재미난 농담으로 내 나이의 팔 할을 차지하게 되 바란다. 그게 포기하지 않고 글을 쓰게 하는 용기의 원천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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