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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지이 Jan 12. 2019

자기 자신과의 대결; 과거 죽음 XX

특수학급 C군 이야기




 완전히 새하얬다. 특수학급에 들고 온 C군의 2학년 교과서는 새 책과도 같았다. 새 학년이 시작된 뒤 특수학급에 오지 않았던 2주 동안 C군은 교실에서 무엇을 한 걸까. 무엇을 했는지는 몰라도, 무엇을 하지 않았는지는 자명했다. 그는 공부를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C군의 수학 실력은 이미 내가 알았다. 그가 가진 잠재력이면 2학년 1학기 수학 정도는 쉽게 따라갈 수 있었다. 아무리 수업을 듣지 않는다 해도 어느 정도는 풀 수 있는 문제도 있었다. 그런 문제를 손도 대지 않았다는 건 학습 동기가 전무하다는 거였다. C군은 늘 무기력했고, 학습에 흥미가 없었다. 교과서의 구조가 C군의 눈에는 영 복잡하고 혼란스럽게 보였을 것이고, 일정한 과제를 오랫동안 주의 집중하는 것을 참지 못했을 것이다. 때로 그는 완벽주의자처럼 한 문제라도 틀리는 걸 참지 못해 아예 답을 쓰지 않기도 했다.


 가장 큰 문제는 C군의 심한 저항 때문에 누구도 그를 강하게 압박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아무도 손 쓸 도리가 없어진 지점에 C군에 대한 모든 책임이 특수교사인 나에게 뚝 떨어졌다. 나는 아이를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었다.


 C군은 유치원은 다니다가 쫓겨나서 못 다녔지만, 한글은 학교 입학하기 전에 혼자 깨쳤다고 했다. 확실히 타고난 지능이 좋은 아이였다. 하지만 처음에 C군은 글씨를 쓰는 것, 숫자를 쓰는 것조차 귀찮아 거부했다. 연필을 세게 쥐지 못해 글씨는 늘 희미했고, 리을을 거울에 비춘 것처럼 거꾸로 쓸 때가 많았고, 미음의 모양이 엉성해서 늘 이응과 비슷해 보였다. 나는 지필 학습의 비중을 줄이고, 그 시간을 놀이와 게임 시간으로 채웠다. 학습 목표를 이루었는지 확인하려면 문답을 하면 그만이었다. 굳이 싫다는 쓰기를 자주 시키지 않았다.

    

 하지만 덧셈과 뺄셈의 연산 단원을 가르칠 순서가 되자 지필 학습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C군은 이미 덧셈과 뺄셈이 무언지 알고 있었고, 손가락으로 헤아려 덧셈과 뺄셈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속도가 너무 느렸다. 속도를 향상하려면 단순 반복적인 문제 풀이를 해야 하는데, C군은 학습지를 오래 붙들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일단 시작해보기로 했다. 받아올림이 없는 두 자릿수 숫자끼리의 덧셈부터였다.


 하얀 종이에 빼곡하게 적힌 숫자들을 더하거나 빼거나 곱하거나 나눠야 하는 학습지나 문제집을 풀어보지 않고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기계적 계산법만 익히는 수학 교육 방법이라 비난을 받지만, 난 그런 문제를 지겹게 푸는 과정이 평생 한 번쯤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연습은 필요했다. 더군다나 느리게 배우는 학생에게는 연습이 더 많이 필요했다. 잘 정리된 일련의 순서대로 순조롭게 진행하기만 한다면, 계산 연습도 항상 지루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마라토너가 달리기의 극치에서 느끼는 쾌감인 러너스 하이(runner`s high)처럼 나름의 성취감과 짜릿함을 맛보며 계산에 몰두하는 아이들도 많이 봤다. 러너스 하이를 느끼기도 전에 달리기에 싫증이 나지 않게 하는 게 가장 중요한 관건이었다.


 나는 C군과 K군에게 두 개의 모래시계를 내밀었다. 하나는 하얀색, 하나는 분홍이었다. 두 개의 모래시계는 크기가 같아 보이지만, 모래가 떨어지는 속도가 미세하게 달랐다. 하얀색 모래가 다 떨어지는 데 2분, 분홍색 모래가 다 떨어지는 데 3분가량이 소요되었다. 

"우리, 모래시계의 모래가 다 떨어질 때까지 덧셈 문제를 몇 개나 풀 수 있는지 알아보자!"  

 공부를 할 때 자주 딴생각에 빠지는 C군과 같은 경우, 시간제한을 두면 더 집중하게 되 자신을 재촉하게 되어

덧셈을 하는 더 빠른 방법을 스스로 찾게 되리라 생각했다. 학습장애인 K군도 계산 속도가 꽤 느린 터라 같은 목표로 둘을 함께 지도하면 괜찮을 것 같았다.


 다행히 모래시계의 등장은 아이들의 흥미를 끌었. 덧셈이 게임처럼 느껴졌고, 지겨워 보이던 문제집이 정복의 대상이 된 듯했다. 저는 문제집에다 "1번 도전 (     )개"라고 적었다. 마음의 준비가 되면 원하는 시간에 스스로 모래시계를 뒤집고 문제를 풀기 시작하라고 했.  


 눈을 꼭 감은 채로, 입으로는 주문같은 것을 외며 요란한 워밍업을 한 C군은 큰 결심이라도 한 듯 하얀색 모래시계를 뒤집고 황급히 문제집에 달려들었다. 모래가 떨어지는 게 눈에 보이니까 마음이 조급해졌다. C군은 모래가 빨리 떨어진다며 짜증을 내기도 하고, 4 더하기 4가 뭔지 모르겠다며 투덜거리기도 하고, 친구가 푸는 것에 적당히 간섭도 하면서 덧셈 문제를 풀어갔다. 그리고 첫 번째 도전을 끝냈다. C군이 푼 문제는 9문제다. 내 예상보다 좋은 성적이었다.


 하지만 C군의 눈엔 영 불만족스러운 성적이었던 모양이다. 분홍색 모래시계를 뒤집고 시작한 K군이 10문제를 넘게 푼 것을 확인한 C군은 흥분해서 날뛰기 시작했다.

"왜 나는 9문제 밖에 못 푸는 거냐고! 이거 엉터리잖아~~~!!!"

 C군은 K군에게 졌다는 생각에 화를 내면서 문제집을 원망하고, 문제집을 제공한 선생님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평소처럼 "그냥 이거 안 해야겠다! 나 안 해!"라며 수업을 거부할 위기 상황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모래시계는 서로 다른 두 종류였다. 나는 같은 수준의 같은 문제집을 가지고 같은 출발에서 출발하면 C군과 K군의 경쟁 구도가 될 것은 예상하였. 그래서 일부러 서로 다른 모래시계를 준 것이다.

"K군은 분홍색 모래시계잖아. 분홍색 모래시계는 시간이 길어! 그래서 K군이 더 많은 문제를 풀 수 있었던 거야."

 저는 모래시계 들춰서 모래시계 바닥 면에 적어놓은 시간을 확인시켜 주었다.  

"오늘은 C군과 K군의 대결을 하는 게 아니야."

 나는 자못 비장하게 말했다.

"오늘은 '자기 자신과의 대결'을 하는 거야."
"자기 자신과의 대결이요?"   

 C군이 되물었다. 그때 C군의 눈이 살짝 빛나는 게 보였다.

"그래, 자기 자신과의 대결. 이제 9문제를 풀었던 과거의 C군과 대결을 하는 거야. 다시 모래시계를 뒤집어서 문제를 풀고 과거의 C군을 이기는 거야!"
"아!"
"과거의 C군, 내가 대결을 요청한다! 내가 상대해주지!"

 저는 짐짓 만화주인공 같은 목소리를 내면서 분위기를 고조시켜 보았. 공부도 만화나 게임처럼 재미있는 것처럼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으하하 대결이다!!!!!!!!!!!!"

 C군은 대결을 앞둔 무사처럼 기개가 대단했다. 그리고 바로 모래시계를 뒤집으며 두 번째 도전을 시작했. 이번에 그는 12문제를 풀었다.

 두 번째 도전에서 C군이 더 좋은 성적을 얻어 내리란 걸 이미 알고 있었다. 보통 같은 난이도의 문제를 두 번 풀면 연습효과가 있기 때문에 향상되는 것이 당연했다. 성공은 예견된 것이었다. 하지만 C군은 놀라워하고 있었다. 

"이거 봐! 과거의 C군은 9문제를 풀었는데 현재의 C군은 12문제를 풀었어. 과거의 C군을 현재의 C군이 이긴 거야!"
"으하하하 내가 이겼지!"

 C군은 과거의 나와의 대결 놀이에 흠뻑 빠져 승리를 자축하고 있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모양이었다.

"그럼 과거의 C군은 어디 갔어요?"
"과거의 C군은 사라졌지. 이제 현재의 C군만 남은 거야. 덧셈을 못 하던 C군은 사라졌어."

다시 C군의 문제집에 "3번 도전 (    )개"라고 적다.

"그럼 3번 도전은 미래의 C군인가?"
"그래. 이제 미래의 C군이 도전을 할 거야. 미래의 C군은 지금보다 더 많은 문제를 풀 거야. 그럼 미래의 C군의 현재의 C군이 되는 거지."

 C군은 뭔가 새로운 세상을 만난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개념이 이렇게 실제로 와 닿는 것이 처음이라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세 번째 도전은 두 번째 도전과 같은 성적이 나오고 말았다. 성적이 떨어지지 않은 것으로도 다행이지만, C군은 이 정도 성적으로도 도전에서 실패했다며 좌절할지도 몰랐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아이의 눈치를 살피는데 C군은 이상하리만큼 멀쩡했다. C군은 아까 일러준 과거의 나, 현재의 나, 미래의 나에 대한 생각에 빠져서 성적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그저 금방까지 "미래의 나"였던 내가 순식간의 "현재의 나"가 되고, 다시 "과거의 나"가 된다는 사실에 몰두하고 있는 듯했다.


 나는 이것이 비단 공부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어졌다.

"공부 못하는 C군도 다 과거로 사라졌어. 마찬가지로 화를 못 참는 C군도 다 과거로 사라지는 거야. 그리고 이제 공부 잘하는 C군과 화를 잘 참는 C군만 현재에 남는 거지."

 나는 과거의 C군에 대해 말하면서 화를 내는 행동에 대해서도 은근슬쩍 일반화해 보았다. 어제의 나보다 조금 나은 내가 되었을 때, 그것은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이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칭찬받을 만한 거라는 사실가르쳐주고 싶었다. 나는 아이가 시간은 흘러갈수록 자신은 점점 발전하고 나아지고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되길 바랐다. 그 말을 들은 C군은 갑자기 뭔가 생각났는지 문제집 한쪽에 이렇게 적다.

'과거 죽음 XX'


 처음에는 XX가 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의심했지만, 윗부분에 작고 앙증맞게 그려놓은 모양으로 보아 욕은 아닌 것 같았다. 아마도 귀여운 만화나 게임 캐릭터 같은 것이 기절했을 때 눈 모양이 엑스자가 되는 모양을 따온 게 아닌가 싶다. '과거 죽음'이라는 아이의 메모는 유머러스했지만, 어두웠던 과거를 진짜 지워버리고 싶은 아이의 소망이 담겨있는 게 아닌가 싶어 눈이 뜨끈해졌다.

 

"선생님, 나는 왜 이러죠? 나는 왜 맨날 까먹죠?"
"글씨가 왜 거꾸로 써져!"
"자꾸 마음속에서 악마가 나쁜 말을 해요."

 C군이 평소에 하는 말만 들어도 알 수 있듯, C군은 세상 누구보다 치열하게 자기와 싸움을 하면서 살아가는 아이였다. 선생님 얼굴에 침을 뱉고, 억지로 토를 하고, 울면서 소리 지르고 욕한 날 밤에 선생님 만큼이나 잠을 이루지 못하고 혼잣말을 하면서 새벽 두세 시까지 뒤척이던 C군이었다. 다음날, "선생님은 속상하고 무서웠어. 화가 나서 그런 걸 알지만, 선생님은 C군이 더 참아야 한다고 생각해."라며 다정하게 건넨 말에 눈시울이 붉어지던 그런 C군이었다.


 그는 얼마나 자기의 과거를 죽이고 싶을까. 그는 얼마나 자기 자신을 이기고 싶을까. 자기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과거 죽음 XX"라는 주문의 위력 때문이었을. C군은 마지막 도전에서 16개라는 최고기록을 경신했다. 문제를 푸는 동안 잡담을 하지도 않았고,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지도 않았다. 손가락셈을 하지 않아야 속도가 빨라지는 것을 눈치채고, 후반에는 거의 암산으로 풀어냈다. 최선을 다한 결과다. C군은 첫 번째 도전에 비해 2배 정도 좋아진 성적을 거둬 자신과의 대결에서 완벽하게 승리한 것이다.



 
 세상의 모든 상대평가가 절대평가로 대체되면 어떨까? 상대평가를 없애는 게 어렵다면, 세상에 모든 성적우수상을 , 모두 성적발전상으로 교체으면 좋겠다. 1등을 할 능력을 갖고 태어난 사람이 1등을 하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인. 50점을 받을 능력을 갖고 태어난 사람이 60점을 받는 것이 정말 박수 쳐줘야 할 일이 아닐.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사람의 의지와 노력을 인정해주고,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보고 가산된 평가를 해주면 어떨까. 그러면 승자와 패자가 경계가 지금처럼 엄혹하진 않을 것이다. 모두가 조금씩 성장하는 세상이 될 것이다.

 나는 모두가 매일매일 자기 수준의 작은 목표를 성취하면서 그 최선을 칭찬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서 모두의 삶에 주어지는 모래시계는 각각 다른 시간, 각각 다른 색깔이어야 한다. 기준 자체가 다르기에 서로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모두가 한 목표를 바라보지 않는 세상에서는, 서로를 비교할 필요가 없는 세상에서는, 아무도 불행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모두 성공일 것이다.


 아이는 학교에서 자기만 실패한다고 느끼지만, 사실 아이보다 더 많이 실패하는 게 교사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실패할 때마다, C군이 매일 느끼는 무력감과 우울감을 조금씩 경험하곤 했다. 하지만 내 삶에도 '연습효과'라는 것이 있어서 "과거의 나"보다 "현재의 나"가, "현재의 나"보다 "미래의 나"가 더 나을 게 틀림없다. 인생은 앞으로 더 좋아질 일만 남았다. 나 자신도 믿지 못하는 진리를 누군가에게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아서 도 믿어보려고 다. 과거의 나를 물리쳐 싸우는 용기를 가져보기 위해 나도 주문을 외워야겠다.



"과거죽음 XX"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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