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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지이 Jan 13. 2019

풍선은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한다.

특수학급 C군 이야기



내 교실에는 항상 풍선이 있다. 한두 개씩은 꼭 불어놓는다. 정해진 장소도 없이 교실 어딘가에서 항상 나뒹군다. 풍선이 터지거나 바람이 빠져서 작아지면 새 풍선을 불어서 그 자리를 채워놓는다. 간혹 풍선 터지는 소리에 공포를 느끼는 아이도 있지만 질긴 펄 고급 풍선을 몇 번 가지고 놀다 보면 쉽게 터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안심하게 된다. 욕심내서 크게 불지 않는다면 더 탄탄하고 안전하다.

풍선은 좋은 점이 많다. 기본적으로 풍선은 아이들을 움직이게 한다. 몸이 불편한 지체 장애 아이도, 마음이 불편한 정서 장애 아이도 풍선 앞에선 움직인다. 둥실 떠오르는 풍선에 손 한 번 뻗지 않는 얼음 심장을 가진 아이는 본 일이 없다. 손만 뻗는 게 아니다. 멀리 있다면 몸도 던진다. 풍선이 바닥에 떨어지면 큰일이라도 날 듯 필사적이다. 그리고 그렇게 풍선을 구해내면 큰일이라도 한 것처럼 으쓱해 한다.

풍선은 특수학급 아이들을 영웅으로 만든다. 둥실둥실 떠올랐던 풍선은 휠체어를 탄 아이의 이마나 턱, 어깨나 팔에 우연히 와서 부딪히기도 한다. 휠체어를 탄 아이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지만 그 순간만큼은 바닥에 떨어지는 풍선을 구조한 영웅이 된다. 풍선은 연약한 존재라서 우리 아이들처럼 연약한 사람의 손으로도 구조될 수 있다. 풍선은 연약해서 연약한 아이들이 사랑하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태생적으로 크고 둥근 것을 좋아한다. 아이들은 크고 둥근 공도 좋아하지만 나는 주로 공 대신에 풍선을 준다. 실내에서 공을 가지고 놀면 위험한 게 한둘이 아니다. 아무리 말랑한 스펀지 공일지라도 던지면 '누군가' 맞든지 '무언가' 맞든지 한다. '누군가' 맞으면 달래줘야 하고 '무언가' 맞으면 부서진 걸 고치거나 정리해야 한다. 안 그래도 다음 수업 준비에 바빠서 화장실 갈 새도 없는 쉬는 시간이다. 그 시간에 아이들끼리 놀다가 발생한 사건 사고까지 수습하는 건 힘에 부치는 일이다.

게다가 공은 속도가 너무 빠르다. 제대로 못 던졌을 때와 제대로 못 받았을 때 공은 아이들을 두 번 실망하게 한다. 특히 또래 친구들이 좋아하는 피구 놀이를 할 때 공을 다루는 기술을 갖지 못한 것에 절망한다. 안 그래도 마음이 아픈데 위협적으로 날아드는 공에 한 번 세게 맞으면, 맞은 부위가 아프지 않아도 서러워서 눈물이 난다. 이에 반해 풍선은 맞아도 아프지 않다. 바닥에 떨어져도 실패한 느낌이 덜 하다.

물론, 풍선을 치는 것 같은 단순한 동작을 하는 것에도 꽤 복잡한 인지 과정이 필요하다. 보통 사람들은 즉각적, 자동으로 거치는 과정이지만 특수학급 아이들은 한 단계, 한 단계씩 겨우겨우 수행한다. 풍선 치기를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1. 풍선이 시야에서 사라졌다는 걸 눈치챈다.

2. 풍선을 찾기 위해 고개를 좌우로 돌린다.

3. 풍선을 찾기 위해 고개를 든다.

4. 머리 위에 있는 풍선을 발견한다.

5. 풍선에 손을 뻗는다.

6. 풍선을 친다.


하지만 다행이다. 던져 올려진 풍선은 참을성이 많아 금방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고 공중에서 아이를 기다려준다. 풍선이 준 시간적 여유 덕분에  풍선 치기의 성공 확률은 높아진다. 결국엔 바닥으로 떨어지겠지만 그 추락조차 안전하게 느껴질 만큼 풍선의 속도는 느리다. 그리고 그 속도는 특수학급 아이들과 닮았다. 


반에서 풍선을 가장 좋아하 C군이었다. 좋아하는 색이 초록이라 초록 풍선을 불어주었더니 인격을 가진 존재인양 사랑해주었다. 유성 사인펜으로 직접 눈을 그려 넣었고 매듭을 지은 풍선 주둥이는 입이라서 "풍"과 같은 소리를 낸다고 했다. 그래서 그 초록 풍선의 이름은 '풍풍이'가 됐다. C군은 하루에도 몇 차례 풍풍이와 얼굴을 비벼댔다. 가끔은 풍풍이가 하는 말을 전하려고 풍풍이를 들고 나에게 찾아왔다. 대부분은 풍풍이의 입을 빌려 대신 전하고 싶은 C군의 말이었다.

"풍풍아, 너도 피노키오가 꿀잼이었니? 풍~ 풍~"
"풍풍아, 너도 글씨 쓰기가 싫었니? 풍~ 풍~"

풍풍이가 전하는 말을 들으면 C군의 생각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지난번에는 <픽셀>이라는 영화를 보는데 한 영화 캐릭터가 풍풍이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 와서 인터넷 검색으로 그 캐릭터를 찾아 C군에게 보여주었다. C군은 기뻐하며 풍풍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풍풍아, 네가 영화 픽셀에 나왔구나. 풍~ 풍~  난 네가 영화에 나와서 기뻐. 풍~ 풍~"

풍풍이는 주둥이를 쭉쭉 늘리며 이렇게 화답했다.

"나도 기뻐. 풍~ 풍~"


어느 날이었다. K군과 C군이 함께 공부하는 국어 시간이었다. 수업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데  필통을 만지작거리는 C군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C군 필통은 보통의 필통에서, 연필꽂이와 같은 형태로 바꿀 수 있는 '변신필통'이었다. 필통에서 연필꽂이로 변신하려면 들어있던 연필을 빼고 필통을 반으로 접어야 하는데, C군은 연필이 잔뜩 들어있는 접으려 하니 '변신'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왜 이렇게 복잡해! 왜 이렇게 복잡하냐고!"

C군은 계속 신경질을 냈다. 나는 필통을 '변신'시키는 시범을 보여주었지만 이미 흥분해버린 C군은 뭔가를 배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나는 분노가 고조되는 흐름을 끊으려고

"필통이 너를 화나게 하지? 잠깐 잊을 수 있게 여기 숨겨 놓자!"

라고 말한 뒤 사용할 연필 한 자루만 빼놓고  필통을 사물함에 넣어두었다. 하지만 분이 금방 가시지 않았던 C군은 책상에 엎드려 계속 씩씩거렸다. 연필로 뭔가를 쓰는 것 같기도 했다. 조금 진정되어 보이기에 다가가 보니 책상에 이런 낙서가 있었다.
'꺼져 선생님'
선생님에게 자기 분풀이를 한 흔적이었다.

1학년 말에 특수학급에 입급되어 2학년을 나와 함께 보내며 많이 얌전해진 C군. 폭력적인 행동은 이제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욕설도 많이 줄었다. 특히, 교사를 향한 공격성이 많이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이제 다 됐다고 생각한 건, 속단인 걸까. C군은 내 눈치를 보더니 황급히 낙서를 지웠지만 이미 늦었다. 선생님도 이미 몹시 화가 많이 나 버렸기 때문이었다.

"C군은 필통 변신시키는 게 어려워서 화가 났지? 그래서 선생님은 변신시키는 방법을 가르쳐 준 거야. 그런데 C군은 선생님에게 꺼지라고 낙서를 했어. 그건 아주 잘못한 거야. "
"귀찮아요. 왜 자꾸 얘기해요?"

C군의 말투에는 반항기가 가득했다.

"그래? 그럼 선생님 이제 아무 말도 안 할게."

나는 입을 꽉 다물고 움직이지 않은 채 C군 앞에 한동안 서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C군은 조바심을 느끼는 것 같았다.

"선생님 얘기해요. 왜 말 안 해요?"
"네가 말하지 말라고 했잖아. "
"아니에요. 얘기해요. 얘기해요. "

말하지 말라고 했다가 또 말하라고 졸라대는 C군. 그리고 화풀이는 선생님에게서 K군에게로 옮겨갔다.

"K군 때문에 레고 망가졌잖아. K군 아주 엉망이네!"  

평소에는 망가져도 아무렇지 않아 하던 블록 작품에 대해 새삼스럽게 화를 내고는 C군이었다. 못 들은 척 참던 K군도 각종 인신공격성 말에 발끈하고 말았다. 수업은 계속 덜컥거다.

"C군, 그렇게 계속 화를 내면 진정될 때까지 뒤에 가서 앉아있을 수밖에 없어. "
"제발요, 선생님. 저 가만히 두세요. "
". . . . . . "

나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심호흡을 시작했다. 내 부정적 감정이 C군에게 전달되면 C군의 감정도 함께 폭주하게 될 것이었다.

"왜 공부 안 해요? "
"가만히 두라면서?"
"공부해요. 빨리 공부해요. "  
". . . . . . "  

더는 안 되겠다 싶었다. 나는 C군에게 교실 뒤 의자에 가서 10분 동안 앉아 있으라고 했다. C군은 눈 뚝뚝 흘리며 생각하는 의자에 가 앉았다. 원망의 눈빛이라기보다는 혼란스러움과 슬픔의 눈빛이었다. 교실 뒤 타임아웃의 자리로 가는 건 실패를 자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걸 본인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10분이 지나고 C군은 다행히 차분해졌다. 주어진 시간이 끝나고 돌아온 C군은 순순히 자기 잘못을 시인했다. 책상에 낙서한 것도, 친구에게 욕을 한 것도 전부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눈이 붉었다. 나는 이제 분노로 붉어진 눈과 슬픔으로 붉어진 눈을 구별할 수 있었다. 이번엔 후자였다. C군이 안쓰러웠다. 자기 안의 충동성에 또 지고 말았다고 느끼겠지. 그건 아주 큰 패배감일 거야. 그때 내 눈에 띈 것이 풍선 풍풍이었다. 나는 풍풍이를 데려와 C군에게 말을 걸었다.

"C군아 울지 마. 풍~ 풍~ 내가 위로해줄게. 풍~ 풍~"

나는 C군을 위로해주기 위해풍풍이가 오물거리며 말하는 것처럼 풍선 주둥이를 앞으로 쭉 내밀었다. 대부분은 풍풍이의 입을 빌려 대신 전하고 싶은 선생님의 말이었다. C군의 안색은 금세 밝아졌다. C군은 풍풍이를 소중히 품에 안아 들었다. 그리고 교실 뒤에서 풍풍이를 연신 공중으로 띄우며

"고마워. 풍~ 고마워. 풍~"

을 외쳤다. 기분이 좋아진 C군은 평소와 같은 유쾌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나머지 공부도 가볍고 즐겁게 끝냈다. 전에는 불쾌한 감정에 사로잡히면 그게 1시간이고 2시간이고 이어지곤 했었는데 감정을 떨쳐버리는 시간이 많이 줄어든 것으로 보아 꽤 발전한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밝은 모습이었다. 공부가 끝난 후 자기 학급으로 돌아가려고 교실문 앞에 서기 전까진 말이다.

C군이 갑자기 멈춰 섰다. 뭔가가 생각난 듯했다. 그는 티셔츠 뒤에 달려있는 모자를 뒤집어써 얼굴을 가렸다. C군이 모자를 쓴다는 건, 그가 울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그는 눈물이 날 때 그 눈물을 감추기 위해 꼭 모자를 쓰곤 했다.

"C군아 왜 우니?"

혼난 이후로 시간도 많이 흘렀고 기분 좋게 공부도 끝냈는데 어떻게 된 거지? 혼난 것이 갑자기 서러워져서 눈물이 난 걸까. 나는 의아한 마음으로 C군을 붙잡았다.

"왜 울어?"
". . . . . . "
"왜? 갑자기 속상한 마음이 들었어?"

눈이 붉어진 그가 말했다.

"감동받아서요. "
"감동?"
"풍풍이가 위로해줘서 감동받았어요. "
"?"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C군은 나에게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공손히 인사를 했다. 그리고 본인 교실로 돌아갔다. 평소 선생님에게 불만이 있으면 인사도 안 하고 문을 박차고 나가는 아이였다. 나에게 잔뜩 혼이 났음에도 이렇게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다니. . . 정말 풍풍이의 위로 덕분에 선생님을 용서할 수 있게 된 걸까.


문득 영화 <캐스트 어웨이>가 떠올랐다. 무인도에 표류하게 된 주인공은 우연히 주운 공에 얼굴을 그려 넣고 '윌슨'이라고 이름 붙인 후, 그와 대화하며  외롭고 두려운 무인도 생활을 이겨낼 힘을 얻었다. 아마 C군에게 풍풍이도 '윌슨'과 같은 의미였던 모양이다. 외로운 무인도 같은 학교생활에서 풍풍이는 위로를 주고, 감동을 주는 친구였을 것이다.

애석하게도 풍선은 약한 존재라서 영원하지 않다. 금방 터지지 않는 질긴 풍선이라도 결국엔 바람이 빠져 말랑말랑해지고 나중에는 쭈글쭈글한 모습으로 쪼그라든다. C군의 친구 풍풍이도 서서히 바람이 빠지면서 몇 차례 목숨을 잃었다. 나는 예정된 이별이 슬프지 않도록 다시 초록 풍선을 불어주었고, 풍풍이 2세, 풍풍이 3세, 풍풍이 4세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짧은 생애였지만, 그 풍선 하나의 그 짧은 생애가 우리 아이들에겐 참 소중했다.

풍선은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한다. 그 이유는 아마도 선을 만지며 자신의 마음도 만져볼 기회를 얻기 때문인 것 같다. 풍선은 바람이 빠질수록 촉감이 더 다정해진다. 약할수록 더 부드럽다. 그래서 나는 세상의 모든 풍선이 터지지 말고 서서히 바람이 빠지면 좋겠다. 뻥 터져서 사람을 놀라게 하지 말고 잠잠히, 천천히, 딱딱한 마음을 말랑하게 만들어 주면 좋겠다. 모난 마음을 둥글게 둥글게 만들어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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